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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공쳤다. 6시까진 지하철에 올랐어야 했는데 지금은 늦어서 다른 사람들이 다 쓸어가버렸다."

15일 오전 7시 20분 2호선과 5호선의 환승역인 영등포구청역에서 만난 김아무개(66)씨의 마대자루는 비어 있었다. 어느새 승강장에는 출근길 직장인들로 가득찼다. 김씨는 그냥 두 차례 지하철을 보냈다. 세번째 지하철에 올라탔지만 여전히 그가 움직이기엔 지하철 안이 너무 비좁았다.

선반 위에 놓인 무가지들이 눈에 띄었지만 김씨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김씨는 "요새 눈치가 심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요즈음 김씨의 하루 평균 '성과'는 20㎏ 정도. 이것도 처음 무가지 수거에 나섰던 1년 전에 비하면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무가지를 거둬가는 사람 수도 늘었지만 최근 수거함이 생기면서 선반 위에 무가지를 놓아두고 내리는 사람도 조금씩 줄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씨는 하루 5천원 내외의 수입을 포기할 수 없어 수거함이나 쓰레기통도 뒤진다.

"요샌 확실히 선반 위에 있는 무가지 수는 줄었다. 그래서 더 우리끼리 싸우는 거야. 그게 싫어서 세 정거장마다 한 번씩 내려서 개표구에 있는 수거함에 있는 걸 꺼내가지."

서울메트로의 고육지책 '대시민 캠페인'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등은 지난 9월 30일부터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하철 내 선반에 무가지를 올려놓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스티커를 부착했다.
 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등은 지난 9월 30일부터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지하철 내 선반에 무가지를 올려놓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스티커를 부착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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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해 지하철에 버려진 무가지를 거둬가는 노인들의 모습은 이제 흔한 일이 돼 버렸다. 처음에는 그들을 안쓰러워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노인들의 수가 급증하면서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 서울도시철도공사(지하철 5~8호선)는 승객들 불편을 줄이기 위해 '무료신문 수거인 인증제도', 차내단속반·서비스지원단 등을 이용한 계도 및 단속을 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특히 '무료신문 수거인 인증제도'의 경우, 인증받은 노인들에게 출근시간대 외 수거를 명시해 다른 노인들이 출근시간 대에 더 몰려드는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서울메트로 등은 지난 9월 30일부터 '무료신문 수거함에 버리기' 등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선반 위에는 "다 보신 신문은 선반 위에 올려놓지 말고 대합실 수거함에 넣어달라"는 스티커들이 붙여졌고 대합실 게시판 곳곳마다 "당신의 신문은 아직도 승차 중입니까"라고 되묻는 포스터가 자리 잡았다. 또 이와 함께 지난 8월 117개 역의 승강장 계단 입구나 개표구 등에 수거함 345개를 설치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수거 노인에 대해 하루 평균 1건 이상의 민원이 접수된다"며 "언뜻 보면 적은 숫자이지만 하루 접수 민원이 평균 5건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분들이 생계 때문에 무가지 수거에 나서는 건 알지만, 고객들의 불편 호소가 계속되기 때문에 대책을 마련했고, 대책이 별로 소용이 없자 결국 고객에게 협조를 호소하는 방법을 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내놓은 고육지책인 셈이다.

승객들 "생계 어려운 노인들 안타깝지만..."

출근 지하철에서 무료신문을 보는 시민들
 출근 지하철에서 무료신문을 보는 시민들
ⓒ 안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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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들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나선 노인들에 대해 동정적 입장이었다. 하지만 일부는 노인들의 무리한 수거행위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들은 또한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의 대처가 미흡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아무개(29)씨는 "안 그래도 혼잡한 출근시간대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사람들을 밀쳐가며 무가지를 수거하는 게 보기 좋지 않았지만, 그 분들 사정이 안 좋으시니 이해하려 노력했다"며 "그 분들은 수거함에서 무가지를 수거하고 지하철 안의 승객들은 조금이라도 편하게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희중(32. 회사원)씨는 "사실 노인들이 생계가 어려워서 이른 아침부터 무리하게 일하는 것 아니겠냐"며 "이해하지만 그동안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단지 무가지를 거둬가는 분들의 일거리를 줄인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또 "캠페인이 잘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가지 회사나 지하철 쪽에서 그 분들을 위한 배려를 좀 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박아무개(30)씨는 "캠페인만으로는 무가지 수거 노인의 수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씨는 "단속을 해도 줄어들지 않는데 시민들의 협조에만 근거해서 지하철에 버려지는 무가지 수가 줄어들겠냐"며 "사실상 지하철공사가 (무가지 수거 노인에 대해) 손을 놓은 것이다"고 냉소했다.

무가지 수거 노인들 "남세스럽긴 해도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

황아무개(60. 남)씨는 "승객들이 민원을 거는 게 이해가 간다"며 "물론 나도 이런 일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 이거라도 해야 하니깐 나선 거다"고 말했다.
 황아무개(60. 남)씨는 "승객들이 민원을 거는 게 이해가 간다"며 "물론 나도 이런 일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 이거라도 해야 하니깐 나선 거다"고 말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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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에 대한 무가지 수거 노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우울했다. 캠페인 진행의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생계를 위해 나선 자신들에게 너무 각박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15일 오전 2호선 전철 안에서 만난 황아무개(60·남)씨는 "승객들이 민원을 거는 게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물론 나도 이런 일을 하는 게 부끄럽다. 딸보다 어린 여학생이 빤히 쳐다볼 땐 더 그렇다. 하지만 이거라도 해야 하니깐 나선 거다. 요새는 값도 떨어져서 더 많이 거둬야 한다."

황씨가 이날 오전 5시 30분부터 거둬들인 무가지 양은 대략 50㎏ 정도. 요새는 고물상에서 무가지 1㎏ 당 200원씩 값을 쳐준다고 했다. 1백원도 하지 않던 2년 전보단 나아졌지만 지난달까지 240원까지 받던 폐지값이 내려가고 난 뒤 경쟁이 더 심해졌다고 했다. 

"나도 웬만해선 사람 많은 차는 안 타는데 어디 마음대로 되겠나. 오늘 거둬야 할 양도 못 거두면 혼잡해도 타서 가져가곤 한다. 남세스럽긴 해도 다른 사람들도 먹고 살려고 하는데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나."

4개월 전까지 리어카를 끌고 파지 수거를 하다가 지하철 무가지 수거에 나선 이아무개(72)씨도  "커피값이라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까"라며 "단속해도 안 되니깐 캠페인을 하는 것 아니겠냐"고 씁쓸해했다.

"내가 리어카를 끌고 하루 300리를 걸어 다녔다. 이 나이 먹고 할 일이 없어 그 험한 일을 했는데 이제 힘에 부쳐서 할 수가 없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처지도 비슷할 거다. 가방 들고 타서 몇십장 거둬가 커피값이라도 하려는 노인들의 수가 (우리보다) 10배는 많을 텐데…. 무가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사람 수는 안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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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가지 수거, #지하철,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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