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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공주 학생들이 5일 오후 2시부터 공주시내를 피켓을 들고 행진할 계획을 잡고 있는 포스터를 김도현 학생이 만들었다.
 세종·공주 학생들이 5일 오후 2시부터 공주시내를 피켓을 들고 행진할 계획을 잡고 있는 포스터를 김도현 학생이 만들었다.
ⓒ 김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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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제2차 민중총궐기의 날, '학생 총궐기 대회'도 열린다. 전국 중·고등학생들은 이날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를 행진한다. 길거리 서명 운동을 벌이고 학생 선언문도 낭독한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 쓰러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시민들까지도 정조준했다. 학생이니까 눈 감고 귀 닫고 그냥 공부만 하라면…"

정치적으로 보수 색채가 뚜렷한 충남 공주에서 학생 총궐기 대회를 준비하는 공주여고 1학년 김도현(17) 학생의 말이다.   
  
"현재 국정 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매우 소수다. 대표적으로 가까운 북한이 국정 체제다. 베트남은 얼마 전까지 국정 체제였다가 유엔에서 국정교과서 폐지를 권고하자 검정으로 전환했다. 역사 교과서를 하나로 만들면 지금처럼 여러 교과서가 서로 견제하지도 못하고 정권에 악용되기도 쉽다." 

같은 학교 서은영(17) 학생의 말이다.

"물대포 쏘는 모습에 분노 치밀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학생 총궐기를 계획하고 있는 공주여고 1학년 서은영(왼쪽)과 김도현 학생을 충남 공주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학생 총궐기를 계획하고 있는 공주여고 1학년 서은영(왼쪽)과 김도현 학생을 충남 공주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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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두 학생을 만났다. 오는 5일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이 서울,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등 각지에서 같은 시각에 피켓 시위를 준비한다. 이들은 공주와 세종 지역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 둘은 같은 학교에 다녔지만 이번 집회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 자기소개를 해달라.
도현: "경제학자, 경제윤리학자를 꿈꾼다. 외동딸로 어머니와 둘이서 산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운동 삼아 집에서 자전거만 탄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영어 단어를 외고 10분간 걸어서 학교에 간다. 학교에서 강제로 방과 후 프로그램 중 하나는 해야 한다고 해서 국어만 한다.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 공부한다."

은영: "열심히 합기도를 배운다. 꿈은 여경이다. 경찰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우리 주변과 친구들을 지키는 경찰이 되고 싶다. 할머니랑 부모님, 여동생 등 3대가 같이 살고 있다. 7시에 일어나서 20분간 걸어서 학교에 간다. 도현이처럼 저도 야자(야간자습)나 학원에 다니지 않고 합기도만 배우고 있다."

- 사회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나?
도현 : "중학교 3학년부터 그렇게 됐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한다. 팟캐스트와 밤샘토론을 듣고 보면서 나도 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민중총궐기에도 참여하고 싶었는데, 학생 신분이라 서울에 가지 못했다. 그런데 커뮤니티를 통해 지역에서도 학생총궐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사는 공주에서 준비하는 학생이 누군지 관련 정보를 찾다가 한 친구가 트위터 계정 주인이 자신의 친구라는 말을 해줘서 은영이를 만났다."

은영 : "정치에 관심 없었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한다. SNS를 하면서 민중총궐기 소식을 접했다. 경찰 과잉 진압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약자에게 물대포를 쏘면서 억압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었다. 학생 총궐기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공주와 세종의 학생을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SNS를 시작했다. 처음엔 겁도 조금 났는데, 도현이를 만나서 용기를 얻었다."

"정부가 지금까지 약속을 지킨 게 있는가"

윤리학자를 꿈꾸는 김도현(17) 학생은 웃음이 많고 대화에 능숙해 보였다. 소신 있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당돌함이 묻어났다.
 윤리학자를 꿈꾸는 김도현(17) 학생은 웃음이 많고 대화에 능숙해 보였다. 소신 있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당돌함이 묻어났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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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는 어떻게 진행되나?
도현 :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피켓과 현수막 등을 들고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3~4시쯤에는 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세월호 진상 촉구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이와 관련한 구호를 외친 뒤에 학생선언문을 낭독할 계획이다."

은영: "역할 분담을 했다. 기획서나 학생선언문은 도현이가 쓰고 저는 총무를 맡는다. 또 발로 뛰는 일을 맡아서 한다." 

- 학생 신분으로 어렵지 않았는지?
은영: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다. 체육관 관장님도 어른들이 학생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SNS상에서 참여 의사를 밝히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힘을 얻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당함에 항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내 목소리를 낸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이 온다면 이 또한 문제다."

- 국정교과서를 왜 반대하나?
도현: "역사 평가는 시대마다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광해군만 해도 그렇다. 하나의 획일적 역사관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역사관을 배워야 한다. 지금 정권을 쥔 대통령의 아버지는 독재자였다. 다시 교과서를 쓸 때 어떻게 쓸까? 역사 왜곡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기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는 관심이 없다. 자기 생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은영: "정부의 주장은 10번 정권이 바뀌어도 중립을 유지할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정부가 지금까지 제대로 약속을 지킨 것도 없고, 말이 자꾸 달라져서 못 믿겠다는 친구들이 많다. 정권이 '국정 교과서'를 조금이라도 악용하면 문제가 되고 친일 미화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민 대신 '이곳'을 바꾸겠다는 학생들
주변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꿈꾸는 서은영(17)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소신만은 뚜렷했다.
 주변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경찰을 꿈꾸는 서은영(17)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소신만은 뚜렷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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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있다면?
은영: "'불확실성',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이게 맞는 길인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도현: "힘들었다기보다는 재미있고 행복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제대로 낼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 이번 집회로 얻고 싶은 게 무엇인가.
도현: "학생들이 학생 신분을 핑계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생의 관점에서 정치에 참여했으면 한다. 교육 정책을 보면 저희에게 맞지 않는 정책을 하다가 갑자기 취소해 버리는 것도 있다. 이런 것을 보면 지금까지 (정책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결정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살고 싶어서라도 건전한 정치 참여가 뒤따라야 한다."

은영: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고, 정책 판단을 해보면서 어른들에게도 확실하게 우리의 의견을 말하고 싶다. 동생들도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 아직도 머뭇거리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도현: "지금 살아가는 이곳이 너희가 원하는 곳인가 묻고 싶다. 집회를 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달라지도록 용기를 주고 생각을 모은다면 변화가 올 것으로 믿는다."

은영: "포스터를 만드는 것을 보던 친구가 '우리랑 아무런 상관없는 일 아니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가 사는 곳이기 때문에 부당함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무관심하면 휘둘릴 수밖에 없다. 20, 30대 젊은 층의 투표율도 높아지고 있다. 무관심하지 않고, 귀를 열고 똑바로 바라봤으면 한다."

-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현: "솔직히 대한민국에 살기 싫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도 먹고살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철학이나 윤리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철학과를 꿈꿨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철학과 윤리를 전공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서 독일로 유학 가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스스로 만든 개념이 있다. 나도 행복해야 하겠지만, 주변의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내가 독일로 유학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은영: "'민족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IMF 경제 위기를 빨리 이긴 민족성,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의 대한민국을 좋아한다. 그런데 요즘 정치가 마음에 안 든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는데 정치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자살률은 높고 출산율은 낮고 행복도도 낮다. 사람이 살기엔 부적합한 곳이다.

남들은 이민을 말하는데 저는 (이곳을)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이 되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여성의 인권이 낮기 때문이다.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면 가해자인 남자들의 처벌도 약하고 경찰도 별 도움을 못 준다. 피해자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가해자를 덮어주면서 피해자를 벼랑으로 떨어트리는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생도 여자이고 나도 여자이기에 경찰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을 바꾸고 싶다. 세상을 다 바꾸지는 못하지만 한 발자국씩 바꾸고 싶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태그:#학생총궐기, #공주세종, #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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