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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로네거리 조선일보 사옥
 서울 세종로네거리 조선일보 사옥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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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미디어오늘>의 6일 보도(조선일보 기자들 "월급에서 자존심 나온다")에 따르면, <조선일보> 기자들이 2일 회사 측에 기본급 6% 인상을 요구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노조는 노보를 통해 "조합원들은 인상안 6%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등 격정적인 요구를 쏟아냈다"며 "6% 인상안은 물가상승률과 경쟁지와의 임금격차 유지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기자들 또한 노동자이기 때문에, 회사 측에 임금인상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노조는 노보를 통해 "월급에서 자존심이 나온다", "회사가 통 크게 인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전해졌다. "경쟁사보다 5~10% 더 받는 것 같긴 한데, 우리 회사 근무시간이 길기 때문에 시간당 임금은 20% 정도 적은 것 같다"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맞다. 월급에서 자존심이 나온다는 말은 어쩌면 일부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헌데 그들의 말을 빌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는 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너무도 많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생활임금 수준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 계약직·비정규직 노동자.

하지만 그동안 <조선일보>에서는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노동자들의 편에 선 보도를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서도, 파업에 관해서도, 노조의 임금인상에 관해서도 모두 재계의 편에 서서 해석한 것이 그동안 <조선일보>가 보여준 행보다.

"현대차 비정규직들에게 한 사람당 4억 원이 넘는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그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의 노조는 자기의 기본 권리조차 챙기지 못하던 과거의 약자(弱者)가 아니다. 도리어 불법, 탈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과시해 기업을 괴롭히고 경제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다."(<조선일보> 2013년 12월 21일 <[사설] 경영진 非理, 노조 불법 파업, 모두 엄벌하는 게 옳다>)

"예산 삭감, 인력 조정 같은 구조조정이 예고되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정작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거꾸로 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7일 울산 본사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참석 대의원 155명이 파업을 결의하고 23~26일 조합원 1만8000여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키로 한 것이다. 노조원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파업이 이뤄지면 이 회사의 '19년 연속 무파업(無罷業)' 기록은 깨지게 된다."(<조선일보> 2014년 9월 22일 <거꾸로 가는 現重 노조>)

대기업 임금인상엔 '귀족노조' 딱지

노조의 파업과 임금인상 요구을 비판한 <조선일보> 사설
 노조의 파업과 임금인상 요구을 비판한 <조선일보> 사설
ⓒ 조선닷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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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2013년 임금·단체협약 협상 결렬에 따른 현대자동차의 파업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며 "현대차 노조는 자신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영화가 천년만년 이어질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2013년 철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 노조 파업을 두고는 "철밥통·기득권 지키기 파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대기업 노조에게 '귀족노조'라는 표현까지 썼던 게 <조선일보>다. 그런데 언론계에서 지상파 방송3사를 제외하고 <조선일보>만 한 대기업이 또 있던가.

"월급에서 자존심 나온다"는 <조선일보> 기자들은 진짜 언론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파업을 벌인 방송사 노조를 두고는 '언론 귀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조선일보>는 2009년, 미디어법 저지를 위해 파업을 벌인 MBC 노조를 향해 "언론 귀족들이 봉급쟁이가 추위를 타는 이 경제의 겨울에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방송 독점체제가 해체돼 밥그릇이 작아질까 봐 언론 자유 운운하는 방패로 얼굴을 가리고 파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등 신문에 걸맞은 대우를 해달라"는 <조선일보> 기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조선일보>의 '파업은 곧 악'이라는 식의 보도와 그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오버랩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일보> 사측은 "매년 매출이 줄어들어 인상이 어렵다"며 임금동결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조선일보> 노조가 밝힌 2013년 조합원 평균임금은 약 6240만 원이다. 2012년 기본급은 동결됐으며 2013년에는 평균임금이 4% 인상됐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노조의 한 조합원은 노보를 통해 "다른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받으면서도 우리보다 월급이 많다"며 "박탈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좋다. 취재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는 그들로서는, 현재 월급이 많이 부족한 수준이라 느낄 수 있다. 물가도 매년 오르는데, 임금인상을 꼭 이뤄내 그들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고 나서, 다른 노동자의 임금문제에 관해서도 꼭 함께해주고 응원해주길 기원한다. 이 사회에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고,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투쟁에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기자들의 당연한 권리 요구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귀족노조'라는 프레임으로 역비판 받지 않도록.


태그:#조선일보, #미디어오늘,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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