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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교육감 시대'가 열렸다. 6·4 지방선거에서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선거 결과를 두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혁신학교'로 상징되는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앵그리맘'의 표심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혁신학교를 처음 도입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 혁신학교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수도권 진보 교육감 당선자, 교육평론가, 혁신학교 교장, 혁신학교 졸업생 등에 대한 연쇄 인터뷰를 통해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할 교육 개혁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서길원 보평초등학교 교장이 18일 오후 학교에서 기자와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서길원 보평초등학교 교장이 18일 오후 학교에서 기자와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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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교 학생의 80%가 전학생이다. 타지에서 온 학부모들은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비싼 전셋값을 기꺼이 지불한다. 안 그래도 비싼 이곳의 전셋값은 몰려드는 학부모들 때문에 더욱 뛰었다. 특히 최고 학군의 강남 엄마들도 아이의 손을 잡고 이 학교 문을 두드린다. 사립학교보다 좋은 공립학교로 입소문이 퍼진 지 오래다.

경기도 성남시 동판교로에 있는 보평초등학교 얘기다. 보평초는 혁신학교 열풍의 진원지다. 이 학교는 2009년 9월 개교하면서 혁신학교 1호로 지정됐다. 보평초가 혁신학교의 상징 모델이 된 데에는 한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보평초 개교와 함께 부임한 서길원(54) 교장이다. 그는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과 함께 혁신학교를 만들었고, 보평초에서 큰 성과를 만들어냈다.

성과는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지난 2001년 동료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폐교 위기의 남한산초등학교를 살려낸 그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학생 중심의 학교'를 모토로 내걸어, 학생·학부모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당시 남한산초 모델은 큰 주목을 받았지만, 넓게 확산되지 못했다.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의 모델이 도시의 큰 학교에 어울리지 않았던 탓이다.

서 교장은 도전하기로 했다. 판교신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보평초를 무너진 공교육의 대안으로 만들기로 했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개교 당시 9명의 교사 중 서 교장과 뜻이 맞는 이는 단 한 명이었다. 그는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인격적·윤리적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장이 매일 아침 등교 시간에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존댓말을 쓰면서 솔선수범했다. 담임교사는 교실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도록 했다.

서 교장은 교사의 행정업무 부담을 대폭 줄여, 교사들이 가르침에 전념하도록 했다. 담임교사들이 아침에 컴퓨터 앞에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대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서 교장은 "아침 30분이 학교를 바꿨다"면서 "다른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 아이들이 이곳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다, 학교가 힐링센터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교사간의 협력'도 강조했다. 보평초를 1·2학년, 3·4학년, 5·6학년을 묶어 미니스쿨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따라 나누면서, 미니스쿨별로 교사들의 협력을 유도하려 했다. 서 교장은 "이 과정에서 교사들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면서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보평초의 어떤 담임교사를 만나도 안심했다, 보평초는 학부모들의 신뢰를 얻었고 이후 좋은 학교라는 입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서 교장의 다음 목표는 보평초의 성공 모델을 경기도 전역에 전파하는 것이다. 이미 보평초 모델의 확산은 시작됐다. 판교신도시의 10개 초등학교 중 9곳에서 교사들이 아침 인사를 하며 아이들을 맞이한다. 그는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 혁신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다음은 기자와 서길원 교장의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오후 보평초에서 진행됐다.

"학생 중심의 학교를 만들려고 했다"

- 무너진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학교를 만들자고 생각한 것은 언제인가.
"경기도 성남·여주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바꿔보려 했지만, 좌절을 겪었다. 교장과 뜻이 맞지 않거나 공문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방향을 바꿔 작은 학교부터 대안적 모델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2000년 학생 숫자 26명으로 폐교 위기에 처한 남한산초를 살리기 위한 학부모들의 노력을 접했고, 2001년 1월 남한산초에 자원했다.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에 나섰다."

-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먼저 무엇부터 바꿨나.
"교사편의주의를 깨보려 했다. 학생 중심의 학교로 바꾸자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저도 전교조에서 활동했지만, 전교조는 행정 업무와 관련한 민주성을 강조하면서 교장 중심의 비민주적·비교육적 시스템을 깨는 데 노력했다. 또한 교사들은 학교의 변화보다는 내 교실의 참교육만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서로 협력해 학교를 어떻게 더욱 교육적인 공간으로 바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남한산초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
"교사들의 자율과 자치를 중시했다. 교사들은 회의에서 행정 업무가 아닌,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그 과정에서 '80분 수업 30분 휴식'의 블록수업 아이디어가 나왔다. 체험학습과 같은 야외활동수업 때 40분의 수업 시간은 짧다. 또한 학교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을 늘리고, 학교 주변을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었다. 곧 학부모 사이에서 남한산초가 경쟁 교육의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학교라는 명성이 얻었다. 남한산초는 '새로운 학교 운동', 나아가 혁신학교의 씨앗이 됐다."

- 하지만 남한산초의 모델은 크게 확산되지 못했다.
"남한산초의 변화 이후, 전국에서 새로운 학교들이 하나씩 생겼다. 각 시·도에 1~2개가량 생겼다. 대부분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였고, 더 확산되지 못했다. 이들 학교의 모델이 도시에 있는 큰 학교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를 데려오는 일도 어려웠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굉장한 헌신성과 자발성이 요구된다. 교사들은 이러한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어렵다고 생각했다."

- 2006년 3월 인사발령으로 남한산초를 나왔다.
"이후 경기도에서 새로운 교육을 갈망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했다. 2006년 9월 '스쿨디자인21'(현 '새로운 학교 경기네트워크')을 만들어, 새로운 학교 운동가를 양성했다. 뜻을 함께 하는 교사들이 많은 경기도 양평을 학교 혁신의 전초 기지로 만들기로 했다. 이후 양평의 학교 4곳이 혁신학교로 바뀌었다. 새로운 학교 모델을 확산시키기 위해 꾸준히 자료를 만들고 준비를 했다."

-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만나 혁신학교를 만들었다.
"2009년 4월 첫 직선제였던 경기도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김상곤 당시 후보는 학교 개혁 대안으로 남한산초의 사례를 꼽았다. 이들 학교를 혁신학교라고 이름붙였다. 김상곤 후보가 자문을 요청했고, 여기에 응했다. 사실 그가 당선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김상곤 전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기회가 왔다."

- 첫 혁신학교 교장이 됐다.
"혁신학교의 도시학교 모델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혁신학교는 남한산초와 양평 조현초밖에 없었다. 중산층이 많이 사는 도시 지역에서 혁신학교가 성공한다면, 혁신학교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판교신도시는 경기도의 중심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 않나. 2009년 9월에 개교하는 보평초 교장공모제에 지원했고, 9:1의 경쟁률을 뚫고 교장으로 부임했다."

- 쉬운 도전은 아니었겠다.
"남한산초에는 새로운 교육을 희망하는 학부모들이 온다. 하지만 이곳은 아파트에 당첨돼서 온 학부모들이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육청 발령에 따라 이 학교로 왔다. 개교 당시 교사 9명 중에서 단 한 명의 교사만 저와 뜻이 같았다. 제가 가는 길이 혁신학교였다. 초보운전이었던 셈이다. 교사들의 윤리적인 실천을 중시했다. 구체적으로 아이들을 인격적·윤리적으로 대하고 존중하는 태도와 교사간의 협력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강조했다."

"문제아가 정서적 안정감 되찾는 곳.. 학교가 힐링센터"

지난 2월 보평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등교한 한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자료사진).
 지난 2월 보평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등교한 한 아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자료사진).
ⓒ 보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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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 존중하는 태도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
"아침마다 교문에서 '사랑한다, 어서 와라'라면서 인사하면서 학생들을 맞이한다. 담임교사들은 교실 앞에서 학생을 맞이한다. 교사들로 하여금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했다. 교사들이 행정 업무 때문에 컴퓨터를 켜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도록 했다. 아침 30분이 학교를 바꿨다. 이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문제아'들이 많이 온다. 이 아이들은 이곳에 와서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다. 또한 학교 폭력도 사라졌다. 힐링캠프는 필요 없다. 학교가 힐링센터다."

- 교사간의 협력은 어떻게 이끌어냈나.
"교사 문화를 바꾸기에 앞서 시스템을 먼저 바꿨다. 지금의 학교는 아이들 교육이 아닌 행정 업무가 중심이다. 교장은 공문서 관리, 학생 관리, 교사 관리를 하는 관리자다. 이건 아니라고 봤다. 공문서·학생·교사를 관리·통제하는 시스템에서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행정업무도 줄인 정도가 아니라 대폭 날렸다. 학교는 1·2학년, 3·4학년, 5·6학년 등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따라 3개의 미니스쿨로 나눴다. 또한 교사들이 미니스쿨별로 협력을 할 수 있도록 팀별 체제를 만들었다."

- '3무 3행' 도입이 화제다. 교사·학부모·학생이 학교에서 하지 말아야할 세 가지와 해야 할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교사는 금품·물품·향응을 제공받아서는 안 되고, 학생에게 체벌을 가해서도 안 된다. 수업에 태만해서도 안 된다.
"교회에 가면 십계명이 있고, 목사와 장로들이 가장 잘 지킨다. 학교에서도 교사가 아이들에게 규칙을 지키라고 강요하기보다 교사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 교사는 전문성을 의미하지만, 선생(先生)은 윤리성의 개념이다. 먼저 선생이 되고, 교사가 돼야 한다. 3류 교사는 가르친다. 칠판 앞에 서 있는 사람이다. 2류 교사는 설명한다. 아이들 곁에 교사다. 일류 교사는 몸으로 먼저 보여준다. 보평초 교사들은 일류를 추구하고 있다."

- 보평초는 어떻게 변했나.
"교사들은 보평초에 오면 힘들어한다. 다른 곳에서 10~20년 교직 생활을 해도, 여기 오면 신규 교사가 된다. 교사들이 팀별 체제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자신의 학급만을 잘 이끌어선 안 된다. 교사들은 이러한 협력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문제 교사도 훌륭한 교사로 바뀐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가 어떤 담임교사를 만나든 안심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보평초는 좋은 학교라는 입소문이 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음악·미술·체육 영역에서 1인 1예기를 갖추도록 하는 '아뜰리에 수업'도 반응이 좋았다."

- 보평초 인근의 집값이 올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학생 다수가 서울강남권에서 전학 왔다. 자신의 집은 전세로 돌리고, 이곳에 전세를 얻은 부모들이 많다. 인근의 보평중학교도 혁신학교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이곳에 오면 10년가량 아이들을 마음 놓고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아쉬운 점도 있다. 선생·교장 등 모든 구성원들이 행복해야 진정한 혁신학교다. 이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혁신학교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것도 바뀌어야 한다."

- 6·4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됐다. 선거 결과를 두고 혁신학교로 상징되는 공교육 개혁에 대한 국민의 바람이 담겼다는 분석이 많다.
"남한산초의 변화는 소수 학부모의 바람에서 시작됐다. 폐교 위기의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들이 몰리는 학교로 바뀌었다. 이후 새로운 교육을 갈망하는 학부모들이 늘었다. 과거에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소수만 자식 교육을 위해 시골에 있는 새로운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의 혁신학교에 학부모들이 몰린다. 판교신도시에 있는 10개의 초등학교 중에서 9개 학교에서 교사들이 아침인사를 한다. 보평초의 모델이 확산된 것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이미 이뤄졌다."

- 혁신학교를 두고 '전교조 학교'라는 비판이 있다.
"혁신 학교를 정치적 프레임으로 보면 안 된다. 혁신학교는 교육의 본질을 찾는 학교다. 공립학교는 형평성 전제로 한다. 혁신학교는 왜곡된 공립학교의 가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가치를 강조하지 않았다. '붉은 학교' 등의 비판은 정치꾼의 이야기일 뿐이다.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교사 중에는 전교조가 아닌 교사도 많다. 또한 전교조가 잘하면, 오히려 격려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 이재정 경기교육감 인수위원회 혁신분과 위원장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수위에서 전체의 80%에 달하는 일반학교에 어떻게 혁신을 전파할 수 있을지 발전적 방향을 찾고 있다. 이는 이재정 교육감 당선인의 임기 4년 동안의 핵심 과제다. 경기교육청 인원을 1/3로 줄이고, 각 학교에 대한 간섭을 줄이면 혁신의 전파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재정 당선인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다. 교육청 간부들에게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고 묻는다. 일반학교의 혁신은 충분히 가능하다."


태그:#선대식 기자의 행복한 학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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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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