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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줄어 고통스러운 요즘 젊은이들을 흔히 '88만 원 세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88만 원은커녕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조차 잡기 힘든 이들이 젊은 기초생활수급권자들이다. 생계비에 보태려고 조금이라도 일하면 소득이 생겼다고, 기초생활수급권자 특별전형으로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면 자활사업을 못 나갔다고 수급비를 삭감당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평범한 대학생활도 힘든, '88만 원 세대도 부러운' 그들의 이야기를 10월 17일 세계빈곤퇴치의 날을 맞이하여 연속으로 소개한다. [편집자말]
[기사 수정: 17일 오전 10시 35분]

희귀난치성질환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박진영씨. 그는 급여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수급비를 삭감당했다. 박씨는 "일해도 수급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희귀난치성질환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박진영씨. 그는 급여로는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가 수급비를 삭감당했다. 박씨는 "일해도 수급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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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제 휴대폰에는 고양이 사진이 있어요. 보여 드릴까요?"

박진영(가명·27·남)씨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려 사진을 찾았다. 지난 4월부터 키우고 있는 고양이 '달래'는 그의 "제일 친한 친구"다. 희귀난치성 질환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진영씨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기 어렵다. 조금만 스트레스가 늘어도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숨도 제대로 못 쉰다. 증상이 심해지면 아예 기절해버린다.

전라남도의 한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부모님은 진영씨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그는 2006년 서울로 주소를 옮기고 단독세대주로 변경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다.

생활비는 고등학교 때 장애등급 3급을 받은 후 월 3만 원씩 나오는 장애수당에 수급비 42만 원을 더한 돈이 전부다. 올 4월부터 12월까지만 여기에 지역 교회의 후원금 5만 원이 추가됐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비용은 의료급여로 해결한다. 다행히 그는 본인부담금이 없는 1종 의료급여 수급자다.

"생활이 빠듯하냐고요? 그런 정도가 아니라 매달 마이너스(적자)예요. 감당이 안 돼요. 쌀이 있어도 반찬 살 돈이 부담스러워서 아예 굶을 때도 많아요. 동사무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반찬을 지원해주는데 그것도 3일쯤이면 다 먹죠. 그럼 편의점에서 도시락 사 먹고. 요즘 20대가 '88만 원 세대'라는데, 저는 그 돈 받으면 60만 원 저축해도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병원비 때문에 지금도 10만 원씩은 저축하려고 하는데…."

'매달 적자'이지만... 아르바이트만 해도 수급비 깎여

2011년 10월까지 진영씨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의 반지하 월세방에서 살았다. 지병이 있는데다 습기가 잘 차고 햇빛이 안 들어오는 반지하에 살다 보니 호흡기까지 나빠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보험금을 해지한 돈으로 그는 1.5층짜리 전세를 구했다. 유전병이 아닌데도 그와 똑같은 모야모야병을 앓던 어머니는 2009년 뇌출혈로 세상을 떴다.

수유동 집세는 매월 15만 원이었다. 나머지 돈을 공과금과 인터넷·휴대폰요금 등에 쓰고 나면 한 달 살아내기 버거웠다. 병 때문에 체온 관리가 중요해서 냉난방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편이었다. 고민 끝에 진영씨는 종로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보통 사람처럼 일할 수는 없어서 일손이 필요할 때 한두 번씩 야간 근무를 하는 식이었다. 2011년 2~6월, 9~11월 틈틈이 일해서 번 돈은 모두 167만5300원이었다.

지난해 12월 동 주민센터에서 우편물이 날아왔다. 일용근로소득 100만 원이 있으니 2012년부터 수급금액이 17만5240원으로 줄어든다는 내용이었다. 일용근로소득을 신고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던 진영씨는 당황스러웠다. 그는 복지부와 서울시에 민원을 넣었다.

"(조정됐는지) 1~3월 수급비가 깎여서 33만 원 정도만 나왔어요. 안 그래도 쪼들렸는데 더 쪼들리니까 암담했죠. 우울증도 더 심해져서… 살기가 싫어지더라고요."

수소문 끝에 재학증명서를 내면 수급비를 원래대로 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진영씨는 경기도 ㄱ전문대학 컴퓨터게임개발과를 졸업 후 복지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어 2008년부터 같은 학교 사회복지과에 다니고 있다. 건강 문제로 지난해는 학교를 쉬었고, 올 3월 복학했다.

복학하자마자 동 주민센터에 재학증명서를 내 수급금액을 회복했지만, 문제는 그가 학교를 그만뒀다는 점이다. 등록금 180만 원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평범한 학교생활이 어렵다 보니 성적도 좋지 않아 학자금 대출 자격이 없었다. 진영씨는 결국 3월 말쯤 자퇴서를 제출했다. 주민센터에는 아직 알리지 않았다. 그는 행여나 학교를 그만둔 게 수급자격에 영향을 줄까 봐 걱정했다.

연애도 버섯농사도 하고 싶은 20대 청년 "기초수급자도 사람"

박진영씨는 지난해 편의점에서 잠시 아르바이트한 것이 근로소득으로 잡혀 지난 1~3월 수급비 일부가 삭감됐다.
 박진영씨는 지난해 편의점에서 잠시 아르바이트한 것이 근로소득으로 잡혀 지난 1~3월 수급비 일부가 삭감됐다.
ⓒ 박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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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1년에 5~6번씩 쓰러지는 진영씨다. 올해도 한 차례 정신을 잃었다가 지인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모야모야병은 뇌에 혈류를 전달하는 주요동맥이 이유 없이 좁아지거나 막혀 뇌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이 때문에 진영씨는 주변 환경에 예민하다. 기자와 만난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도 조금만 담배냄새가 나면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연애와 꿈을 말하며 들뜬 모습은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았다. 진영씨는 요즘 동네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가씨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 10 킬로그램가량 체중을 줄이기 위해 주민자치센터 헬스장에 다니고 있다. 몇 차례 실연당한 경험과 자신의 병, 경제 사정 등이 마음에 걸리긴 한다. 하지만 '명절 잘 보냈냐'는 그녀의 사소한 말에도 가슴이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동충하초나 영지버섯 농사를 짓고 싶은 꿈도 있다. 버섯 재배에 필요한 원균을 길러 제조하는 '버섯종균기능사' 자격증도 준비할 계획이다. 일을 배우기 위해 내년 3월쯤 찾아갈 경상북도 안동의 버섯농장도 알아 놨다. 그러나 서울을 벗어나면 치료받기 힘들고, 일해서 소득이 생기면 수급비가 줄어든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진영씨처럼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청년(20~39세)은 2011년 15만 9123명으로 전체 수급자의 11.5%였다.

"일을 하더라도 수급을 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여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죠."


태그:#기초생활보장, #빈곤, #빈곤청년,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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