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2 17:19최종 업데이트 24.05.2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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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국가적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부처 신설을 위한 입법에 국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촉구했다. 사진은 10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 연합뉴스


저출산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며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극복을 위해 무려 280조 원 넘게 지출했고, 2022년 한해만도 52조 원(출생아 1인당 2.1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각 지자체도 출산장려금, 주택, 육아 등 다양한 지원을 마련하고 있으며 부영그룹은 직원 자녀 출산 1명당 1억 원의 장려금까지 지급해 큰 뉴스거리가 되었다.

내가 몸담은 기독교계에서도 내로라하는 교회들이 신자의 출산 지원 장려금, 양육 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으로 의미 있는 반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별로 없다.


괜한 호들갑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현실은 실제로 매우 심각하다. 전문 통계 이전에 우리 자신이 주변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나만 해도, 1958~1973년생(50대 초반~60대 중반)인 본가와 처가 형제자매(9명)는 모두 결혼해 각각 1~3명의 자녀(18명)를 두었지만, 1979~1999년생(20대 후반~40대 초반)인 자녀와 조카들(18명)은 1명만 결혼해 1명의 딸을 두었을 뿐 다른 이들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았다. 통계로 봐도 2022년 35세인 1988년생의 비혼율이 남자 72.9%, 여자 52.1%에 달한다.

지금의 저출산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일본의 경우 2040년 지자체의 절반이 소멸될 것이고, 지금도 인구의 100%가 75세 이상인 심각한 고령 마을이 250~300개에 달한다. 중국도 2100년에는 인구의 절반이 감소할 것이다. 5~10년 이내에 인구 감소가 확실시되는 나라는 태국, 대만, 이탈리아, 레바논, 쿠바다. 유럽의 견인차 독일 역시 대규모 이민자가 아니면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할 것이다(<축소되는 세계>, 앨런 말라흐, 사이, 2024년).

그러나 우리나라에 견주면 이런 비교가 무색하다. 2021년 현재 전 세계 합계출산율이 1960년대의 절반인 2.3명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58명이지만, 우리나라는 2018년 1명 이하가 된 후 해마다 떨어져 2023년은 0.72명이다. OECD 국가 중 1명 이하는 한국이 유일하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한국의 이러한 인구축소 상황이 마치 14세기 유럽 흑사병 수준과 비교될 정도라고 했다.

인구는 시대마다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하는 건데, 저출산이 뭐가 그리 큰 문제인가? 어느 정도의 편차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회가 선순환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구가 있다. 그게 유지되지 못하면 경제와 사회 전반의 활력이 떨어져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하지 못한다. 세계적으로 그게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만 해도 관공서, 학교, 병원, 주거단지 규모, 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인력 등이 모두 인구성장기에 맞춰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해서, 이미 만들어 놓은 도시 인프라가 거기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없다. 마치 10만 명이 관람할 수 있게 설계된 대형 스타디움에 언젠가부터 늘 500명만 들어온다면 그 시설은 운영할수록 오히려 낭비인 것과 같다.

인구가 줄어드니 자연히 국가 수입은 줄어들겠지만, 반대로 고령층은 늘어 사회복지 수요는 더욱 늘어간다. 현재 5100만 명대인 우리나라의 인구는 50년 뒤 3600만 명대로 줄고 그중 절반은 노인이 될 전망이다. 빈집이 늘고 도시 곳곳이 슬럼화될 것이다.

결국 수십 년 후 저출산의 부담은 지금 젊은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사회적 부양자는 많은데 정작 자신은 수입도 변변치 않고, 게다가 가족 등 1차 관계망도 부실하여 외롭게 혼자 사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왜 결혼과 출산을 꺼릴까
 

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월 28일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한 관계자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국가도, 지자체도, 기업도, 사회 각 기관도 저출산 탈출을 위해 지금 막대한 재정과 혜택을 쏟아붓는데도 젊은이들은 왜 결혼과 출산을 꺼릴까?

첫째는 당연히 청년층의 숨 막히는 생존경쟁과 개선은커녕 더욱 암담한 미래불안 때문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금수저를 쥐고 나지 않는 한 비정규직을 벗어나기 어렵고, 모든 경제, 사회적 지표가 지금 부모 세대보다 미래 자기 세대가 더 어려울 것이 예측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을 쌓아도 한번 낙오되면 재기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크다. 주거, 일자리, 복지, 교육에서 매 순간 벌어지는 극단적 경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남성은 여전히 결혼 후 가족부양의 책임을 크게 느끼고, 여성은 겨우 일자리를 얻어도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되었을 때 인생에서 낙오된다는 불안이 크다.

물론 젊은이들도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의 미래를 염려한다. 그러나 당장 답 없음을 생각하면 미래를 염려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고, 혼자 벌어 혼자 쓰며 혼자 사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여전히 적대적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여성의 깊은 좌절감이다. 남녀 모두에게 출산을 권하지만, 사실 임신도, 출산도 여성만의 일이다. 육아의 숭고함을 말하지만, '집에서 노는 여자, 밥이나 하는 아줌마' 등 전업주부에 대한 폄하와 환멸은 낯설지 않다. 또 이제는 일하는 여성도 워킹맘이라 부르며 우대하는 것 같으나, 사회적 현실은 이와 달라, 출산 후 경력단절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결혼 뒤 여성이 일하더라도 여전히 가사노동의 80% 이상을 맡는다. 또 여성이 일하면 결혼 또는 아이로 인한 노동시장에서의 불이익도 크다… 결혼한 시점 이후 임금이 30%가량 떨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 '결혼‧출산 페널티' 큰 노동시장 바꾸지 않으면 저출생 극복 어렵다, 이철희 교수 인터뷰, 13일 자 <한겨레>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여성가족부 폐지가 지지율 올리는 도깨비방망이로 인식한다. 채용 면접 때 여성의 페미니스트 검증까지 서슴지 않는 기업도 있다. 툭하면 여성은 사회적 무임승차 인력으로 몰아 '군대 가라'고 압박도 한다. 그러므로 여성의 역할, 지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회적 존중 없이 여성에게 출산을 기대하긴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닌 내가 해법과 대책을 명쾌하게 낼 수는 없다. 그러나 개념은 분명해야 한다. 출산과 양육은 제품생산과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생명과 인생 이야기다. 그러므로 새마을 운동식 단기 해법으로 반전을 추구하면 안 된다.

당장 '아이 낳으면 얼마 준다'는 식의 문제로만 만들지 말고, 한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학교 가고, 일하며 자아를 성취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 전체의 생애주기를 국가적, 사회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일자리, 육아와 가정생활, 주거와 교육, 보건과 건강의 사회 개편이 있어야함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일자리와 주거 문제의 획기적인 개선이 없으면, 당장 얼마 준다는 식의 지원 노력은 큰 반응을 얻기 힘들 것이다.

통계만 나열하며 몰아붙이기보다 젊은이의 마음 얻을 진정성 있는 노력이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위태롭다.

"저출산 정책은 다른 것과 달리 사람의 마음을 얻는 정책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건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될 수 없는 일이다." - 이철희 교수, 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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