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4 14:12최종 업데이트 24.03.14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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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월 8일 자 <동아일보> 기사. 이승만은 당시 연두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윤석열이 대통령인지 이승만이 대통령인지 헷갈릴 정도로, 윤석열 정권의 이승만 미화가 대단하다. 이승만의 공적을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외치고 있다. 일말이라도 주저함이 있는 사람들은 '이승만의 공과'라는 표현을 쓴다. '과'도 있지만 '공'도 적지 않다는 식으로 이승만을 띄우고 있다.

그런데 이승만의 공을 외치는 사람들은 그의 진짜 공은 절대 말하지 않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 공이라지만, 이는 한반도의 전쟁 발발을 억제하는 작용뿐 아니라 평화 정착을 억제하는 작용도 함께 낳았다. 한민족을 분열시키는 작용까지 수행했음은 물론이다.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1951년 9월 8일 체결한 미일안전보장조약과 이승만이 1953년 10월 1일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동아시아 냉전을 확산시키고 대륙과 해양의 교류를 저해했다. 이는 한민족을 떼어놓는 것에서 더 나아가 영구적으로 갈라놓을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두 개의 방위조약에 기초한 이 시스템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증진에 기여하지 못했다. 싸움도 막고 평화도 증진시키는 것이 상책이라고 한다면, 이 시스템은 하책에 불과했다.

1949년의 농지개혁도 이승만의 공이라지만, 이것은 한국 대중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전체 국민의 68%가 농업 인구인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농지개혁이 시행됐다면, 국민 대다수의 빈부격차가 진작에 해소됐어야 마땅하다.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유상분배에 입각한 농지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유상으로 인수하고도 생계를 이어나갈 능력이 있다면 모르지만, 겨우겨우 살아가는 소작농들에게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조치였다. 1949년 당시의 보수세력이 친일청산은 악착같이 저지하면서도 농지개혁만큼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이것이 기득권 구조에 영향을 줄 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선언, 의미 있는 이유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농지개혁 말고, 정말로 박수를 칠 만한 일들이 이승만 집권기에 있었다. 이승만의 공을 말하거나 공과를 말하고자 한다면 이것들을 거론해야 마땅하다.

정부수립 사흘 뒤인 1948년 8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중요한 선언을 했다. 일본이 대마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달 20일 자 <국제신문> 1면 중간에 실린 AP통신 기사에 따르면, 이승만은 일본제국주의로 인한 고난과 강대국 침략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을 거론한 뒤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는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동도(同島)는 상도(上島) 급(及) 하도(下島의 이도(二島)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것인데 수백년 일본이 탈취한 것이다."

상도 및 하도의 두 섬으로 된 대마도의 반환을 요구하겠다는 이 선언은 그 시대 사람들이 수긍할 만한 것이었다. 대마도는 이승만이 태어나기 6년 전인 1869년에 일본 땅이 됐다. 정한론적 사고방식을 가진 정치세력이 메이지유신을 일으켜 일본을 지배하게 된 이듬해의 일이다.

대마도는 혈통 상으로는 일본에 가까웠지만, 1869년 이전에는 조선의 속국인 동시에 일본의 속국이었다. 역사학에서 양속(兩屬)으로 지칭되는 이런 상태는 중국과 일본 양쪽의 속국인 유구왕국(오키나와)과, 조선과 명나라 양쪽에 사대한 조선 전기의 여진족에도 존재했다.

대마도 지배자는 조선에 와서는 대마도주의 책봉을 받아 가고 일본에 가서는 대만번주의 책봉을 받았다. 그러면서 조·일 양쪽에 조공을 하고, 조공보다 훨씬 많은 회사(回賜)를 받아 갔다. 이 때문에 조선은 무역적자를 많이 봤지만, 대마도를 속국으로 둔 일은 왜구 등의 해적 문제를 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일본은 동아시아 도서 지역을 공략했다. 1874년에는 대만을 침공하고 1875년에는 강화도를 도발하고 1879년에는 유구왕국을 강점했다. 이런 일이 있기 전인 1869년에 대마도가 넘어갔다. 형식상으로는 자발적인 듯했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일본 권력을 잡은 하급 무사(사무라이)들의 대외팽창 열기가 낳은 첫 번째 산물이 대마도 편입이었다.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양쪽의 속국이었지만, 대마도를 실제로 관리한 주체는 그곳 정권이었다. 조선이 명나라나 청나라에 사대하면서도 독립성을 유지한 것처럼, 대마도 역시 그랬다. 그래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할 권리는 한국에도 없고 일본에도 없었다. 그래서 이승만이 언급한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하라'는 표현과 '대마도가 수백 년간 일본에 탈취됐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승만의 선언은 대마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일본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이 인류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그로 인해 변경된 현상이 원래대로 회복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승만은 그해 9월 9일과 이듬해 1월 9일에도 동일한 선언을 했다. 1951년 7월 9일에 미국은 이 주장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됐을 정도로 그의 주장이 일본에 부담이 됐던 것이다. 그가 거듭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일본제국주의의 청산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런 국민 여론을 반영해,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도 싫어하는 요구를 했다는 것은 '공'이라 할 만하다.

이승만의 '공'을 언급할 수 없는 윤석열 정부의 처지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인 독도. ⓒ 조정훈

 
일제의 대외 침략은 동아시아 도서 지역의 영유권을 바꿔놓았다. 대마도·오키나와·대만에 더해 독도도 그런 영향을 받았다. 대마도가 일본 땅이 아님을 밝힌 이승만은 독도에 대해서는 훨씬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한국전쟁 중인 1952년 1월 18일 그는 해상 경계선을 독도 동쪽에 긋는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선포했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분명히 하는 조치였다.

이때부터 일본 정부가 습관적으로 되풀이하게 된 것이 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공개 망언이 평화선 선포를 계기로 해마다 반복됐다. 선포 열흘 뒤에 발행된 <동아일보> 2면 중간은 "독도는 확실히 일본의 영토로서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정식 항의가 일본 외무성에서 나왔다고 보도했다. 독도 망언이 이때부터 공식화됐을 정도로 이승만의 조치는 일본에 충격을 줬다.

일본은 그해 7월 26일에 독도를 미군에 빌려주겠다며 미군과 협정을 체결했고, 9월 15일에 미군은 독도를 폭격했다. 1948년에 이은 두 번째 폭격이었다. 1948년에는 정부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일본에서 많았다. 이처럼 독도에 관한 움직임이 일본에서 나올 때마다 미국은 한국이 영유하는 독도에 폭격을 하곤 했다.

독도와 대마도에 대한 이승만의 조치들은 일본제국주의의 동아시아 침략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도서 지역들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다. 물론 독도에 대한 조치는 한국의 영토주권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사적 의의도 띠지만, 역사상 최악의 방식으로 인류를 착취한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사를 뛰어넘는다.

물론 그런 공로가 있다고 해서 이승만 정권의 민간인 학살, 친일청산 방해, 탈헌법적 장기집권이 희석되지는 않는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국민들을 학살하고 국민들의 열망을 저해한 '과'는 그 어떤 '공'으로도 덮이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공을 언급하자면 제국주의 청산의 요구에 부응하는 독도와 대마도에 관한 것을 들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승만의 공과를 비교 형량하자고 하면서도 그런 공은 언급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언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승만의 진짜 '공'은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도 싫어하는 것이다. 그것을 거론하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두 번 다시 초청되기도 힘들 것이고, 일본 총리와 러브샷을 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 18일 금요일 메릴랜드주 서몬트 인근의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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