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3 12:10최종 업데이트 23.06.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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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택가격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면서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져 나오고 있다. 우선 원리금 부담이 커지면서, 금융 연체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집값 하락보다는 금리 상승이 직접적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집값이 하락하는 시기에 대출금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진다. IMF의 경고처럼 경기가 침체하고 일자리라도 감소하기 시작하면, 연체는 더 늘어날 것이다.

부동산 개발에 돈을 댄 금융권(특히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증권사, 보험사 등)도 위태롭게 됐다. 항상 그렇듯 집값이 상승하면 너도나도 집을 짓겠다며 땅을 파고, 금융권은 거기에 돈을 댄다. 그렇게 여기저기 주택 건설은 시작했는데, 갑자기 분양이 어렵게 됐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분양이 안 되면 금융권은 그간 댄 대출을 회수하려 들 것이다.


이미 큰돈을 들여 땅을 팠는데 분양이 되지 않으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만기 연장하거나 상환할 수 없다. 금융권에 부실이 쌓이면 더 큰 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대출에서 (일부) 돈을 떼이고, 그에 따른 파산 위험을 피하고자 엉뚱한 곳에서 대출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멀쩡한 기업과 개인도 도산할 수 있다.

가령 3년 전에 3년 만기로 대출을 받아 상업용 부동산을 구매했는데, 금융기관이 예상치 않게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담보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 싼 가격에라도 급히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고, 그 여파로 주변 부동산 가격은 더 하락하고, 담보 가치가 하락하니 금융기관은 대출금을 더 회수하려 들며 악순환이 시작된다.

이런 현상을 유동성 경색이라고 부른다. 가능성 없는 시나리오일까?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해 말 소위 '레고랜드 사태'라는 이름으로 이를 살짝 경험했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거품의 끝자락(2020년 이후)에는 항상 가장 많은 돈이 투입되고, 거품이 꺼지면서 이 부채가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역사적으로 이 패턴이 반복됐다.

정부가 키운 전세 사기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이다! 정부와 국회는 대책 마련하라! -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행진’이 3월 8일 오후 서울역앞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구간에서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 주거권네트워크, 빈곤사회연대, 민달팽이유니온,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부동산 거품 붕괴가 낳은 가장 슬픈 결과는 전세 사기다. 전세 사기 피해자 여럿이 이미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솔직히 화가 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세 사기 피해의 가해자는 사기꾼만이 아니다. 정부도 공범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몇 년 동안 하락하다, 2014년부터 주택가격이 점차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평범한 시민의 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올랐다.

주택가격이 상승한 가장 큰 원인은 '주택의 자산화'였다. 누구나 집이 필요한데 가격은 끊임없이 올라가니 너도나도 사려고 덤볐다. 이제 집은 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는 자산이라고 모두가 믿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주택자만이 아니다. 대출이든 '영끌'이든 뭐든, 방법만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집을 사려고 했다. 이것이 거품을 만들었다. 공급부족 논리가 이 추세를 부추긴 핵심 내러티브로 기능했다. 모두가 사려고 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공급이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집값이 너무 오르자 집 없는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에 정부의 대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드는 '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가격을 통제하겠다는 의도였다. 또 하나는 집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늘려주는 정책이었다. 특히 전세금 대출을 늘렸다.

두 정책 모두 실패로 판명됐다. 우선 가격 통제는 애초에 불가능한 정책 옵션이다. 이건 자본주의 시장의 본성이다. 모두가 사려고 하는 자산의 가격을 어떻게 잡겠다는 말인가.

집 없는 사람은 주거비가 너무 비싸졌다는 사실뿐 아니라 집을 사지 못 하게 하는 정책에도 분노했다. 그들은 정부가 자신들은 부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 하게 한다고 화를 냈다.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은 집값을 억누르려는 정권을 못마땅해했다. 가격을 통제하려는 정책은 효과도 없었고, 집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에게 비난받았다.

집값을 잡지 못하면서, 그나마 집 없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내놓은 정책이 전세 대출 확대였다. 하지만 이는 집값만 더 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전세금을 더 많이 더 쉽게 대출할 수 있게 되자, 집주인들은 맘놓고 전세값을 올렸다. 저금리 상황도 이어졌으니 세입자도 수긍했다.

전세가 오르자 갭투자가 쉬워졌고, 실제로 늘어났다. 갭투자로 사려는 사람이 많아지니 집값은 더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이 부족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누구나 집을 사려는 상황'이기에 상대적으로 공급이 부족했던 것이지, 절대량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전세금 대출이 증가하면서 전세보증보험도 더 포괄적으로 확대했다. 전세금을 떼일 염려를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기꾼들이 이를 활용했다. 터무니없는 전세값을 부르고, 주저하는 세입자에게는 전세 보증금 보험에 가입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며 꼬드겼다. 이미 모든 집값이 올라 있으니 가난한 서민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전세금 보증 보험이 있으니, 작은 안도감이라도 가졌으리라.
 
주택이 주식처럼


달팽이는 껍질로,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은 가죽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껍질과 가죽으로 비바람을 피하고, 거친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인간에게는 집이 그런 보호막이다.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그래서 주거를 보장하는 일은 생존을 위한 최소를 제공하는 일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항상 이 중차대한 의무를 시장에 맡기려 했다. 공익적 차원에서 정부가 직접 집을 제공하기보다는 시장에서 해결하길 바랐다. 지난 정부를 예로 들면, 정권 초기부터 '다주택자'가 집을 많이 사서 임대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시행했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을 대폭 늘린 정책이 그것이다.

집값과 주거비가 과도하게 오르면 임시방편으로만 대응하려 했다. 그 이전 정부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역대 정부의 주택 정책은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400년 자본주의 역사에서 어떤 재화를 시장에 던져놓고 가격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다. 가격 통제가 성공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재산권(소유권)을 통제하는 방법인데,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주택은 금융화됐다. 매입 자금 대부분은 대출로 충당되고, 거의 모든 매매는 미래 매매차익(자본이득이라 부른다)을 고려한다. 이는 소위 실거주 목적 매매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한다. 실제 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더라도 미래 가격이 오르길 바란다. 실거주 목적과 투자 혹은 투기 거래의 구분이 무의미한 이유다. 이제 집이 거래되는 방식과 그 가격은 주식이나 채권 등 일반 자산과 차이가 없다.

대안은 있다
 

서울 도심에 밀집해 있는 아파트의 모습들. ⓒ 이희훈

 
금융화된 자산의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발상은 미련한 생각이다. 개인들끼리 가격을 협상하고 사고팔겠다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나. 그렇다고 정부가 주거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지향점을 달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책은 '가격안정'을 목표로 했다. 이제부터는 '주거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 논리가 지배하지 않는 공공주택을 대량으로 마련해야 한다. 시장 가격이 요동칠 때 무주택자는 여기로 피신할 수 있다. 무주택 가구의 수만큼 많았으면 좋겠다.

주택이 금융화되고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거래될 때, 그것이 싫은 사람은 공공주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설비만큼 사용 한도에 걸쳐 분납하는 주택을 공급하면 된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택지를 개발하고 거기에 집을 짓는다고 가정하자. 정부는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원가로 공급할 수 있다.

주택 원가에서 토지비와 건설비가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평당 1천만 원을 가정하자(평당 원가 1천만 원짜리 집은 절대 나쁜 집이 아니다). 33평 기준 원가 3.3억 원짜리 주택의 경우 건설비는 1억 6,500만 원이다. 건물 사용 연수를 40년으로, 금리를 연 2%로 가정하면 건물 임대료는 월 약 50만 원이다.

여기에 토지비에 대한 이자가 발생할 수 있다. 2% 금리를 적용하면 월세에 약 27.5만 원이 추가된다. 대안적으로, 토지 유지비는 정부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토지 가격이 연 2% 이상 오르면 이를 상쇄할 수 있다. 또한 주택과 토지에 부과하는 각종 조세를 활용해 현금흐름을 원활히 할 수도 있다.

참고로, 정부가 보유한 다양한 기금을 활용하면 연 1% 금리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만약 1% 금리가 가능하다면, 건물 사용 연한인 40년 동안 월세 41.7만 원에 임대가 가능하다. 토지비에 대한 이자는 월 13.8만 원이다(더 자세한 토론은 '대장동 논란,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하나' https://omn.kr/1vceo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건물 사용 연수 40년 기준, 금리별 월 임대료 ⓒ 전용복

 
잊지 말자. 이 전략은 정부 재정을 '추가'로 투입하자는 말이 아니다(개인적으로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두 거주자가 부담한다. 정부는 당장 주택 건설자금을 단기로 조달하고, 장기로 회수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서 장기로 운용(예컨대, 30년 장기 주택담보대출)하는 일은 일개 은행도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다. 정부가 못할 리 없다.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공공주택이 충분했더라면, 전세 사기를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정부도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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