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8 20:14최종 업데이트 24.03.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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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KBS 본관 ⓒ 연합뉴스


지난 11일 언론중재위원회에서는 KBS 기자들이 KBS를 상대로 청구한 정정보도 요청에 대한 심리가 열렸다. 정정보도를 청구한 대상은 지난해 11월 14일 <뉴스9> 앵커리포트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이다. 당시 박민 KBS 사장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처가 땅 의혹' 기사 등 4건이 "불공정 편파 보도"라며 사과하기도 했다.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당시 오세훈 후보의 처가 땅 의혹을 보도한 KBS 기자들이 자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요청한 이례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날 언론중재위의 결론은 '조정 불성립'이었다. 양측의 입장차가 커서 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오세훈 후보의 의혹을 취재한 송명희 기자에게 언론중재위의 결론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16일 전화로 진행됐다. 

- 지난 11일 언론중재위 심리 과정은 어떠했나요?

"언론중재위에 출석해 40분 정도 이야기한 것 같아요. 중재부는 양쪽의 얘기를 다 듣고서 '양쪽의 입장 차가 너무 크다, 조정 합의의 가능성이 없다'라고 판단했고, 저희도 회사 측 답변 들으면서 같은 판단을 했기 때문에 중재부의 결정을 수용했습니다.

심리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갔는데 심리가 진행될수록 서로 수준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취재팀은 저널리즘, 취재의 엄밀성을 놓고 이야기하는데 회사(KBS)는 인상 비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정기일 사흘 전에 회사 측 답변서를 받았거든요. 답변서를 보고 난 뒤에는 어느 정도 이런 결론을 예상했습니다."

- 언론중재위에서 중재될 것이란 기대도 있었나요?

"그렇죠. 왜 언론중재위로 가게 됐냐면 이 문제가 사내에서 해결이 안 됐습니다. KBS기자협회에 보도편성위원회가 있고, KBS본부노조에 공정방송위원회가 있어요. 이런 사안들을 가지고 보도본부 수뇌부 혹은 사측과 견해를 나누고 필요할 경우 후속 조치나 대안을 찾는 기구죠.

이 보도에 대해 사내에서 문제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각 단체에서 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기자협회의 보도편성위원회 개최 요구는 보도본부 책임자 측이 거부해 열리지 않았고, 노조 공정방송위원회는 어렵게 열리긴 했는데 사측이 문제 없다는 주장을 계속한 거죠. 때문에 저희는 제3의 기관에 조정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요. 결론이 그렇게 나서 안타깝습니다."

"입장 표명이니까 정정보도 청구 대상 아니라고 주장"
 

2023년 11월 14일 KBS <뉴스9>에서 박장범 앵커는 ‘오세훈 처가 땅 의혹 보도’를 “이른바 ‘생태탕 보도’”라고 칭하며 “단시일 내에 진실 규명이 어려운 사안을 선거 기간에 보도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말했다. ⓒ KBS

   
- 정정보도 청구에 대한 KBS의 주장은 무엇인가요?

"회사 쪽 표현으로는 해당 보도가 '보도'가 아닌 회사의 '입장 표명'입니다. 보도가 아닌 의견이기 때문에 정정보도나 언론중재위 중재를 청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지난해 11월 14일 KBS <뉴스9>에 방송된 이 보도는 앵커가 모두 설명하는 '앵커리포트' 형식이었고 제목은 '보도 공정성 훼손 대표적인 사례들은?'입니다. 바로 앞에 선행 보도가 있었는데 당일 박민 KBS 사장의 대국민 기자회견 인용 보도입니다. 그 뒤에 바로 붙여서 박장범 앵커리포트로 나간 거죠.

전체 길이가 4분 9초인데, 앞선 보도에서 박민 사장이 언급한 공정성 훼손 보도 사례 4건을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3분 39초간, 이 안에 취재팀 보도를 언급하고 마지막 30초에 앞으로 이런 보도를 하지 않겠다는 식의 표현을 담았습니다. 저는 인용 보도에 이은 해설 보도라고 생각합니다.

백번 양보해 회사의 주장대로 '입장 표명'이라 해도, 회사의 입장을 그렇게 정리한 데는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의견이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걸 이야기해도 되고, 당사자가 있는데 입장이나 반론을 듣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죠. 근거 제시도 없이 공정성 훼손 사례로 규정해서 보도해 놓고 정정을 청구하니 이건 입장 표명이니까 정정보도 청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저널리스트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 왜 그렇게 이야기한 걸까요?

"정정보도 청구 자체를 기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조정 과정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죠."

-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의 사과와 박장범 앵커의 '앵커 리포트'는 어떻게 보셨어요?

"지난 <오마이뉴스> 인터뷰('오세훈 보도 문제 없었다'...KBS에 정정보도 청구한 KBS 기자 https://omn.kr/27jgq)에서 당시 정치부장인 최문호 기자가 큰 틀과 문제점을 설명했으니 저는 취재기자 입장에서 말씀을 드려볼게요. 그 보도가 나간다는 사실을 <뉴스9> 시작하기 1시간 반쯤 전에 알았는데, 실제로 그 보도를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KBS 메인 뉴스 앵커가 뒤에 화면에 제 얼굴을 띄워놓고 공정성을 훼손한 보도 사례라면서 사과하고, 직전 뉴스에서 박민 신임 사장이 그 보도를 언급하면서 사과했으니까요.

보도가 나오고 나서 저를 걱정하는 전화를 많이 받았죠. 그래서 기자가 기사를 입력하고 데스크가 승인 내는 저희 보도 정보시스템을 살펴봤는데 보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된 건지 누가 쓰고 승인한 건지 정말 아무런 정보가 남아있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기사도요. 보도 직전까지 누구도 기사를 쓴 저에게 물어보지 않았거든요. 어이가 없었어요."

- 모욕적이지 않았나요?

"모욕적이었죠. 2021년 보도 와중에 국민의힘과 보수 시민단체에서 취재팀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어요. 사내 다른 노조에서도 그 고발 취지와 같은 주장을 해왔고, 최근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났죠. 그 과정에서 회사가 법률대응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뉴스 플랫폼에서 이 뉴스는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를 한 거예요.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할 때는 더더욱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는 더 명확해야 되는 거죠. 그런데 그 근거를 지금까지도 못 들었습니다.

보도 당시에 저는 선거 과정에서 취재기자로서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검증 보도를 했고, 당시 함께한 동료들이 유능한 기자들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정석으로 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정파성이라는 의심이 있었고 고발됐지만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문제 제기가 있다고 해서 사건의 흐름이 있고 맥락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취재를 안 해야 하나요?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저는 더 정파적이라고 보는데 회사는 그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언론인으로서 선거 과정에서 그런 판단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 자체가 더 문제라고 봅니다."

"'생태탕 보도' 지칭, 보도의 전체 맥락 부정하고 싶은 것"
 

2023년 11월 14일 KBS 박민 사장(왼쪽 세번째)이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이춘호 전략기획실장, 김동윤 편성본부장, 장한식 보도본부장, 임세형 제작1본부장, 조봉호 경영본부장과 함께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권우성

 
- KBS에서는 이른바 '생태탕 보도'라고 규정하며 문제 삼는 것인가요?

"취재팀이 당시에 했던 오세훈 후보 검증 보도가 모두 10건이에요. 10건 중에서 1건에 생태탕 얘기가 한 번 나옵니다. 오세훈 후보가 내곡동 개발에 관여했고 처가가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는 공개적인 의혹 제기가 있어서 취재를 시작한 건데 오세훈 후보가 당초 KBS 뉴스에 출연해서 한 반박은 확인하니 사실이 아니었어요.

이게 수차례 반복됐던 거죠. 그렇게 되니 오세훈이라는 시장 후보가 공직 후보자로서 과연 도덕성을 갖췄고 신뢰할 수 있느냐를 검증하는 보도로 전환이 된 거예요. 말하자면 오 후보의 반복된 거짓말이 상황을 증폭시킨 거죠.

그 과정에서 서울시가 내곡동 개발 용역에 착수하기 직전에 오세훈 후보 처가에서 그 땅의 경계를 측량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게다가 해당 부지의 존재 여부도 몰랐었다고 주장하던 오세훈 후보가 경계측량을 하던 날 현장에 있었다는 목격자 증언이 나온 거예요. 그 증언의 신빙성을 교차 검증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생태탕을 먹었다는 발언이 있었죠. 그때 생태탕이라는 단어가 나왔던 겁니다. 그 이후에 '생태탕 보도'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죠."

- 의도는 뭘까요?

"이 네이밍이 보도의 전체 맥락을 부정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오세훈 후보에 대한 도덕성 신뢰성 검증이라는 걸 축소시키고 싶은 거죠.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네이밍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경우는 그래서 악의적입니다. 회사도 '생태탕 보도'라고 지칭했는데 마찬가지로 그 보도의 전체 맥락을 부정하고 싶은 거라고 봅니다."

- '생태탕 보도'로 규정한 건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인가요?

"맞습니다. 악의적이고 선정적이죠. 이 보도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네이밍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이를 보도한 KBS가, 보도의 전체적인 맥락을 다 알고 있는 KBS가, '생태탕 보도'라는 네이밍을 쓰고 그 의도에 동조하면서 사과한다?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죠. 바꿔 말하면 '오세훈 내곡동 의혹 검증 보도'에 이러한 네이밍을 굳이 옮겨쓰는 것 자체가 지금의 회사 역시 이 보도 전체의 맥락을 부정하고 싶은 거라고 봐요.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언론중재위 답변서에서 회사는 '보도 공정성 훼손 사례' 보도가 생태탕이 언급된 그 한 건 보도에 대한 입장 표명이라고 주장하면서 취재팀이 신청인 자격이 없다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정말 궁색하잖아요. 해당 보도 한 건만 놓고 보면 맥락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인데 어떻게 뉴스를 통해서 공정성 훼손이라고 언급하고 사과를 하는 것인지. 게다가 노조 공정방송위원회에서 회사는 전체적인 '오세훈 내곡동 처가 땅 의혹' 검증 보도를 전제하고 답변과 입장을 이야기하거든요. 언론중재위에서 입장을 바꾼 거죠. 비겁하게 보였습니다."

"판단과 결정의 원칙은 저널리즘이어야"
 

송명희 KBS 기자 ⓒ 송명희


- 취재팀 입장에 대해 KBS는 언론중재위 답변서에서 "사실적 주장의 측면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취재팀 보도가) 단시일 내에 진실 규명이 어려운 사안을 선거 기간에 보도하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보도 이후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을 수 있었던 기사라는 점에는 허위 사실이 없다"라고 주장했던데 어떻게 보세요?

"현업 기자로서 회사의 답변서를 봤을 때 이 자체로 대단히 모순인 겁니다. 왜냐하면 2021년에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냈을 때 이유서를 보면 저희가 보도했던 게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죠.

그러니까 오세훈 후보가 내곡동에 갔냐 안 갔냐에서 간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도 했지만 두 개가 더 있어요. '낙선의 목적이나 비방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도 결론을 이미 냈습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저희 취재팀을 고발해 검찰이 수사하고 결론을 내기까지 회사는 이 보도가 법률적으로도, 저널리즘 원칙에 비춰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방어했습니다. 법무실의 법률 전문가들이 대리했고 무혐의 결론이 났죠.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보도는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뉴스에서 낙인찍고 사과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했을 때 회사와 회사 법무실이 어떤 논리를 주장할지 궁금했습니다. 법률가가 같은 사안을 두고 상충되는 주장을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언론중재위 심리에 회사 법무실이 대리하지 않고 외부 법무법인에서 나왔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언론중재위에서 조정 불성립 결정이 났기 때문에 취재팀 동료들과 상의하고 있습니다. 아마 소송으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인 억울함, 안타까움도 물론 있고요. 이런 경우 끝까지 진실을 다투는 것이 KBS 저널리즘을 살리는 길이라고 판단합니다."

- 고민도 있지 않을까요?

"고민 많습니다. KBS <뉴스9>이 보도했는데, KBS <뉴스9>이 이를 근거도 없이 부인하고, 취재팀이 항의하고, 자사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하고, 소송 검토하는 상황을 시청자들이 어떻게 보실지 생각하면 많이 죄송하고 걱정됩니다. 뉴스라는 게 신뢰가 근간이 돼야 하는 것인데 그게 무너지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다투는 것이 맞아요. KBS 저널리즘의 원칙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이고 저널리즘에 부합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보나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웃음). 이 취재 보도를 함께한 취재팀 동료들은 모두 훌륭한 탐사 기자들입니다. 배운대로 하던대로 열심히 해야죠."

- 보도를 후회한 적은 없나요?

"후회한 적 없습니다. 오히려 당시에 정파성 의심, 비난, 고발, 이런 외부 상황을 의식하고 멈췄더라면 지금 후회하고 있을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 주세요.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저널리스트입니다. 좋은 저널리스트이고 싶고요. 그래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보도, 검찰 수사, 조정 신청, 앞으로 있을 소송까지 모든 과정에서 판단과 결정의 원칙은 저널리즘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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