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6 13:28최종 업데이트 24.02.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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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4일 KBS 박민 사장이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지난 16일 <한겨레>는 "한국방송(KBS) 기자가 자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박민 KBS 사장은 취임 직후인 11월 1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당시 있었던 오세훈 후보 의혹 보도에 대해 불공정 보도라고 사과하고 같은 날 KBS <뉴스9>에서도 앵커가 사과했다.

그런데 해당 취재팀이 "충분한 사실확인 과정을 거친 검증 리포트에 불공정 낙인을 찍은 허위 주장"이라며 바로잡기 위해 나선 것이다. 기자가 자사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한 이유를 듣기 위해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당시 취재팀 이끌었던 최문호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최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왜 불공정 보도라고 했는지 박민 사장이 얘기해야"
   
- KBS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조정 신청서를 언론중재위에 낸 배경은 무엇인가요?

"박민 사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뉴스9>에 보도가 나간 후 동료 기자들, 기자협회, 노조 등이 사과 회견이나 사과 방송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제기를 했거든요. 그 이후 사측이 내놓은 답변을 보면 수긍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거죠.


저도 기사를 통해서 보니 '사회적 숙의 과정을 거쳐서 이미 결론이 난 사건'이라는 주장이 있던데 무슨 숙의 과정을 거쳤다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나 했을 때 공식적으로, 제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취재기자들이 협의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신청을 낸 거죠."

- 자사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심경이 어때요?

"이례적이죠. 전에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동료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거니까 쉽지 않은 결정이죠. 또 기사를 누가 작성했는지 아직 저는 모르지만 결국 그 사람들하고 대면해야 되고 서로 따져야 하는 과정이 있을 거잖아요. 좀 안타깝죠."
 

최문호 KBS 기자 ⓒ 최문호

 
- 정정보도 청구 사실이 알려지고 주위 반응은 어떤가요?

"조용합니다. 정정보도 신청을 하고 사내 게시판에 신청 사실을 올렸습니다. 올린 글을 사람들이 많이 봤고 거기에 대해 찬반 의견 표명을 하잖아요. 이후 사측이 직접적으로 저희에게 물어보거나 이런 건 없습니다. 다만 몇몇 동료 기자들로부터 '끝까지 잘해봐라,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주겠다'는 격려들은 좀 있었죠."

- 왜 내부 총질하냐는 비판은 없었나요?

"내부 총질은 저 사람들이 먼저 한 거예요. 자기들이 공식적으로 저희에게 낙인을 찍은 거잖아요. 해서는 안 될 폭력을 휘두른 거죠. 저는 박민 사장의 일방적 사과나 사과 보도가 굉장히 무도한 폭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거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는 게 어떻게 내부 총질이에요? 성립이 안 되는 주장이죠."

- 박민 사장의 지난해 사과는 어떻게 보셨어요?

"박민이라는 사람이 사장으로 왔을 때 굉장히 생소했어요. 다만 궁금했던 건 기자로서, 언론인으로서 박민의 저널리즘 수준이었어요. 다른 영역에서 오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하니까요. 언젠가는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기자회견 내용을 보고 '뭐지?' 했죠. 황당한 거잖아요.

무슨 발표를 하거나 기사를 쓸 때 상대방한테 물어보거나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은 기본의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과정도 없이 '이렇게 막 가나? 이게 언론인으로서 박민의 수준인가?' 그런 생각들을 일단 했습니다.

중요한 건 박민 사장이 먼저 사과하고 뉴스는 그걸 그대로 받아서 보도한 거잖아요. 중재위든 앞으로의 진행 어떤 과정이 어떻게 되든 결국 박민 사장이 얘기를 해야 되는 거예요. 왜 해당 보도를 불공정 보도라고 기자회견을 했는지, 어떤 기준에서 그렇게 했는지 박민 사장이 얘기해야 하죠."

"저널리즘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방송"

- 처음에 어이가 없지 않았나요?

"그렇죠. '생태탕 보도'라고 나오잖아요.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서 아 이 사람들은 당시 KBS가 어떤 보도를 했는지 또 우리가 어떤 보도를 어떤 제목으로 며칠부터 언제까지 했는지 안 봤다는 거죠.

당시 KBS가 한 달 가까이 낸 보도에서 '생태탕'이라는 단어는 오세훈 후보 처가 땅에서 경작했던 분의 인터뷰에 딱 한 번 나와요. 그분이 인터뷰에서 '내가 그 땅에 맥문동이라는 작물도 심고 여러 가지 작물을 심어서 농사를 지었다'고 말하거든요. 또 '측량이 끝난 후에는 식당에 가서 생태탕을 먹었다'라고 기억하시거든요.

그러면 그 보도는 맥문동 보도인가요, 생태탕 보도인가요? 그런 조사도 없이, 읽어보지도 않고 공식적으로 생태탕 보도라고 규정한 거잖아요. 이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한 거라서 이걸 바로잡는 건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거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2023년 11월 14일 KBS <뉴스9>에서 박장범 앵커는 ‘오세훈 처가 땅 의혹 보도’를 “이른바 ‘생태탕 보도’”라고 칭하며 “단시일 내에 진실 규명이 어려운 사안을 선거 기간에 보도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말했다. ⓒ KBS


- 박장범 <뉴스9> 앵커는 "단시일 내에 진실 규명이 어려운 사안을 선거 기간에 보도해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고 말했는데.

"9시에 뉴스가 나간다고 당일 저녁에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뉴스를 봤는데 이게 뭔 말인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날 다시 봤는데 참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사를 읽은 박장범 앵커는 이게 무슨 말인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나 하는 거죠.

두 가지잖아요. 하나는 단시일 내에 진실 규명이 어려운 사안이었다는 겁니다. 오세훈 후보의 KBS 인터뷰를 계기로 취재가 시작된 건데 선거 한 달쯤 전이에요. 처음 시작한 게 얼마나 빨라야 단시일이 아닌 거예요?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얼마큼 취재를 엄밀하게 했고 언론 윤리를 지켰는지, 또 그 결과물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지 등의 판단이잖아요. 그런 판단도 없이 '어려운 취재였다, 그래서 불공정하다'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두 번째,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얘기하잖아요. 아마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당시에 KBS 정치부가 민주당과 유착해 이 보도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의심은 그분들 자유지만 그렇게 공식적으로 얘기하려면 뭔가 근거를 제시했어야 되는 거잖아요. 보도 내용이 국민의힘에는 불리하고 민주당에 유리하기 때문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하는데 선거에서 후보자를 검증하는 건 언론의 책임이잖아요.

제가 정치부장으로 갔을 때 부원들에게 '정치 보도는 시민들의 정치지식을 증가시켜서 정치참여를 높이는 게 목표여야 한다, 기존의 정쟁 중심 보도에서 탈피해서 정치인들이 수행해야 할 책무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반대를 무릅쓰고 정치부를 두 파트로, 정쟁 보도를 하는 정당팀과 정치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의제팀으로 나눈 거고, 의제팀이 정책에 관련한 취재를 쭉 해온 거거든요. 선거 국면에서 후보 검증은 정치 보도에서 중요한 역할이잖아요. 그게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 그래서 그게 불공정하다? 본인도 그 얘기를 왜 하는지를 모르고 했다고 저는 생각해요."

- 어떻게 취재가 이루어졌고 어떤 게 문제인지를 먼저 알아보고 사과하더라도 해야지 않나요?

"그렇죠. 예를 들면 보도 목록이 있잖아요. 이거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썼어? 반론은 충분히 받았어? 물어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럼, 저희가 이거는 언제 생성된 정부 문서를 기반으로 했고, 이거는 서울시의 어떤 문서를 기반으로 한 거고,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희가 기록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근데 덥석 기자회견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단시간이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했고 그래서 불공정 보도다? 그런 저널리즘이 어디 있어요. 박민 사장의 수준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널리즘의 기본도 지키지 않은 방송이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2023년 11월 14일 KBS 박민 사장이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검찰 조사에서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불공정 보도?"

- 서울중앙지검에서 해당 보도에 대해 수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면서요?

"이건 명확히 하고 싶어요. 제일 중요한 게 그 취재 자체가 얼마나 진실성을 갖췄는지입니다. 지금까지 당시 일련의 보도에 대해 어떠한 문제점 또는 작은 하자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선거 보도 과정에 국민의힘이 고발했어요. 사장을 비롯해 부장인 저, 그리고 일선 취재기자까지 포함됐어요. 명예훼손, 선거법 위반 등 걸 수 있는 항목들은 다 걸어서 검찰에 고발했어요.

검찰이 몇 달 동안 조사했어요. 당사자를 다 불러 조사하고 검찰이 내린 결론은 'KBS가 취재한 사람들의 증언들은 일관되고 진실성이 있어 보인다, 반대로 오세훈 후보 측의 주장은 일관되지 않다'는 취지였어요. 취재 과정이 저널리즘적으로 문제없고 사후에 당사자 고발로 인한 조사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왜 불공정한 보도인가요."

- 당시 취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어떤 이슈가 터지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 또 반론 제기하는 사람의 의견을 적당하게 배분해 당사자의 입장을 전달하는 방식이 정치 보도 관행 중 하나예요. 저는 그 관행을 깨고 싶었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정당팀하고 의제팀이 있었고, 의제팀이 검증 취재를 맡았습니다.

의제팀에서 당시 검증을 맡았던 취재기자들은 탐사보도 경험이 많이 있었던 기자들이에요. 오랜 탐사보도 경험이 있어서 이런 취재를 얼마나 조심하고 엄밀하게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사람들이에요. 본능적으로 굉장히 조심해서 취재한 거죠.

당시 보도 보면 다 문서를 근거로 한 거고 증언도 복수로 취재했어요. 다음에 현장에 가서 확인하고. 취재 엄밀성을 위해서 기자들이 한 3일 동안 회사에 안 들어온 적도 있어요. 현장에서 하나라도 더 확인해야 되기 때문에요 그렇게 해서 막판까지 취재가 이루어진 거예요."

- 취재 당시 정파적이라는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나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죠.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회유, 협박, 고발까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취재팀에 첫 번째 내린 지침이 있었어요.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모두 취재 대상이다. 다만 민주당 쪽에서 나한테 직접이든 아니면 다른 간부를 통해서든 무슨 보도가 나가는지, 또 언제 보도가 나가는지를 물어오면 그날부로 이 취재는 접는다'라는 거였어요. 정파적으로 오해될 수 있는 것은 철저히 차단했어요.

제가 듣기에는 나중에 민주당이 물어보고 싶어도 못 물어봤어요. 우리가 아무것도 답변을 해주지 않으니까요. 근데 그걸 박민 사장은 민주당과 정파적으로 유착된 것처럼 만들려고 하는 거죠. 특정 집단에 대한 유불리를 바탕으로 공정을 논하면 그건 저널리즘이 아니죠."

- 앞으로 중재위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일단 3월 11일로 조정 기일이 잡혔어요. 회사의 입장이 나올 거고, 그 결과에 따라 차후 대응을 생각해 봐야죠. 공식적으로 바로잡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우선 생태탕 보도라는 악의적 프레임부터 고쳐나갈 겁니다. 생태탕 보도가 아니라는 게 정정보도 문안 내용 중 하나예요."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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