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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여름을 '피서의 계절'이라 했는가. 방학 동안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용돈에 보태고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여름은 '알바의 계절'이다. 편의점, 마트, 과외에서부터 시작해서 공장, 택배하역, 엑스트라 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청춘들은 오늘도 땀을 흘린다. 여름방학을 맞이해 땀 냄새 물씬 나거나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알바 체험기를 소개한다. [편집자말]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황새를 보려면 숲속을 거쳐 이 표지판을 찾으면 된다.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황새를 보려면 숲속을 거쳐 이 표지판을 찾으면 된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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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황새 밥 주는 아르바이트도 있어?"

우리 학교에 황새에게 밥주는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말할 때 다른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냥 '학교 근로'의 일종일 뿐인데 말이다.

충북 청원에 있는 한국교원대에는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가 있다. 센터는 황새 129마리의 밥 주는 일을 도울 사람을 학생들 중에서 선발한다. 황새 밥 주는 일은 학내 행정부나 기관에서 근로 장학생들이 일손을 돕는 것과 같다.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가 한국교원대학교 제3대학 소속 연구센터이기 때문이다.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는 학교에서도 깊숙한 곳에 있다. 한국교원대는 도시에 있는 다른 대학들과는 다르게 유난히 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황새 연구소도 학내에서 비교적 숲이 무성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학생들이 주로 수업을 듣는 건물들을 지나 학군단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내가 지금 학교에 있는지 숲 속에 있는지 슬슬 헷갈린다 싶을 때쯤 연구소가 나타난다. 만약 길을 잘못 들어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는 의문이 든다면, 어디서 "딱딱딱" 소리가 나지 않는지 귀 기울여 본다. 그럼 그 쪽이 바로 한국황새복원센터다. 그 소리는 황새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소리다.

"와, 황새 진짜 크네."

1학년 때 입학 후 무작정 학교 탐방에 나섰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도중 우연히 황새를 처음 봤다. 황새 사육장 앞에 쪼그려 앉으면 나와 황새는 눈높이가 같았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처럼, 다리가 매우 길고 가늘었다. 처음 황새 사육장을 구경했을 때는 그냥 '학교에서 황새를 연구한다더라' 정도만 알고 있었다. 황새는 국제자연보존 연맹과 국제조류보호협회가 정한 멸종위기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황새를 멸종위기 야생동식물1급과 천연기념물(199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심심할 때 구경하러 갈 만큼 우리학교에선 쉽게 볼 수 있는 새지만, 황새는 알고 보니 '귀하신 몸'이었다.

129마리 황새 밥 주는 '알바'... "황새 날아가면 큰일 나요"

황새들의 주식으로 공급하는 전갱이다.
 황새들의 주식으로 공급하는 전갱이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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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 사는 황새는 육식성이라 뱀을 잡아먹기도 해. 죽은 물고기는 먹지 않아. 여기서는 많은 황새들에게 매일매일 공급하기 위해 수급 사정상 전갱이를 주식으로 주지. 산 미꾸라지는 어미가 먹고 토해주니까 어미랑 새끼가 같이 있는 사육장에 주고."

현만수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 사육실무관은 가끔 아픈 황새를 위해 특식으로 병아리를 밥으로 주기도 한다. 병아리의 부리에 미국에서 직수입한 영양제를 넣어 주는 것이 황새의 '보양식'인 셈이다.

워낙 황새가 많다 보니 밥 준비하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모두 129 마리가 한 사육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육장에 황새의 특성에 맞게 나누어 들어가 있다. 예를 들면 아직 둥지에서 내려오지 못한 어린 새끼와 어미는 한 사육장에 있다. 부부나 가족단위의 황새들도 한방을 쓴다. 다른 황새랑 자주 다투거나 몸이 아픈 황새는 독방을 쓴다. 황새들 특성에 따라 이렇게 먹이 양과 종류를 구분지어 따로따로 양동이에 담는다. 이 작업은 근로생들이 아닌, 황새들의 상태를 오랜 기간 관찰하고 관리해온 사육실무관 현만수씨가 담당한다.

둥지 위 새끼황새. 새끼 황새는 65일 동안 둥지 위에서 어미가 토해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자란다. 65일 동안 새끼 황새들은 둥지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둥지 위 새끼황새. 새끼 황새는 65일 동안 둥지 위에서 어미가 토해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자란다. 65일 동안 새끼 황새들은 둥지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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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잘 닫고 들어가. 잘못해서 황새 날아가면 큰일 나."

초보자인 나에게 사육실무관 아저씨는 거듭 당부했다. 나는 전갱이가 담긴 양동이와 크고 넓적한 세숫대야를 들고 사육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당부한 대로 얼른 문을 닫았다. 양동이에 담긴 전갱이를 세숫대야에 쏟고는, 사육장 내 연못에서 물을 조금 퍼 세숫대야에 넣었다. 황새들이 먹이에 대한 불타는 욕망 때문에 나를 쪼거나 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황새들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았다.

경계심 때문에 애매한 거리를 유지한 채 다가오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내가 사육장을 나간 다음에도 조금 적극적인 황새들만 와서 먹기 시작했고, 몇몇 황새들은 아직도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우왕좌왕하면서 먹이를 먹지 않았다. 내가 다른 사육장으로 이동하자 그제야 다가와서 열심히 기다란 부리를 움직이며 전갱이를 먹었다. 내가 다시 가까이 다가가자 또 다시 우왕좌왕하면서 멀리 떨어졌다.

주말에만 하는 알바, "다른 근로에 비하면 '꿀'이죠"

내가 밥 주고 있는 동안 황새들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내가 밥 주고 있는 동안 황새들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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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밥은 하루에 한 번만 주는 거예요?"
"두 번 주면 밥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는 정도 주는 것이 먹이 신선도를 유지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지. 먹이가 물고기라 금방 부패하기도 하고, 특히 여름이라 더 그렇지."

황새 밥은 오후 3~4시에 준다. 근로하는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만 와서 먹이 주는 일을 돕는다. 생선 비린내가 나고, 주말에 와서 일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꺼릴 수도 있는 일이다.

"다른 근로에 비하면 '꿀'이죠.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하고 가면 되고, 재미도 있으니까요. 새끼 황새가 점점 커가는 것도 지켜볼 수 있고요. 가끔 황새들이 귀엽기도 해요."

1년 넘게 황새 밥 주기 근로를 하고 있다는 이민주(22)씨가 이렇게 답했다. 일주일에 한 번 들를 때마다 한 시간 가량 일하고 한 달에 15만 원 받는다는 점도 매력이다. 민주씨는 1년째 하고 있다 보니 황새 사육장 소식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저쪽 사육장에 있는 황새들은 먹을 것에 집착하는 애들이에요. 밥 주러 들어갈 때 보시면 다른 사육장이랑 분위기가 다를 거예요."

확실히 다른 사육장의 황새들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황새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금방이라도 먹이에 달려들 듯 '전투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내가 세숫대야에 먹이를 들이붓고 있는 동안에도 가까이 와서 금방이라도 먹으려고 했다. 황새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서 오히려 내가 더 놀랐다. 그 큰 날개를 퍼덕퍼덕 휘두르며 다가오는 황새한테 이러다 얻어맞겠단 생각이 들어서, 얼른 전갱이를 들이붓고 도망치듯 사육장을 나왔다.

밥 먹으러 달려오는 황새. 적극적인 황새는 밥을 주면 바로 이렇게 달려온다.
 밥 먹으러 달려오는 황새. 적극적인 황새는 밥을 주면 바로 이렇게 달려온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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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 혼자 있는 황새는 30년 넘게 살았대요. 황새 수명이 20년 정도라던데, 엄청 오래 산 거죠."

황새 '옹'은 다른 황새들에 비해 털이 많이 부스스하고 부리가 녹슨 철처럼 낡아보였다. '옹'은 다른 황새들보다 유난히 예민했다. 사람이 다가가자 구석에 머리를 처박고는 필사적으로 도망가고 싶어했다. 다른 황새들은 그저 경계할 뿐이었지만, '옹'은 내가 사육장에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를 느낀 것 같았다. '옹'이 살고 있는 사육장 벽에는 다른 사육장에는 없는, 뭔가 벅벅 긁은 듯한 흔적이 있었다. '옹'에게 밥을 주고 다른 사육장도 모두 돌고 돌아온 후에도 '옹'의 밥그릇 속 전갱이는 거의 그대로였다. 내가 사육장 앞에 다시 나타나자 '옹'은 또 다시 공포에 휩싸인 듯했다.

황새 '옹'. 나이가 좀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 예민하고 겁이 많다.
 황새 '옹'. 나이가 좀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 예민하고 겁이 많다.
ⓒ 차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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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성격이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대요. 지난 겨울에는 밥을 안 먹어서 거의 죽을 뻔 했다고 하더라고요."

황새 밥 주는 일은, 황새들이 다 먹고 빈 세숫대야를 사육장에서 도로 꺼내와 씻어 놓는 일까지 해야 마무리된다. 모든 사육장을 다 돌고 오면 처음에 먹이를 줬던 사육장의 세숫대야는 이미 빈 그릇이 되어있다. 빈 그릇을 사육장 안의 흐르는 연못에 씻은 후, 사육장 밖에 걸어 말려놓으면 된다. 잘못해서 그릇 안에 고인 생선 물이 몸에 튀면 비린내가 난다는 것이 흠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날 충북 청원군 오후 3시의 날씨는 32도였다. '꿀알바'라고는 하지만, 더운 여름날 그늘도 없는 사육장에 비린내 나는 생선을 양동이에 담아 나르는 일이 그저 '꿀'일 수는 없었다. 오히려 '황새 밥주기' 근로가 꿀인 이유는, 천연기념물인 황새를 질릴 정도로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새들이 알을 낳고, 먹이를 신나게 먹으며, 가끔 다른 황새와 치고 박고 싸우는 일상적인 삶을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볼 수 있다는 것, 나름 매력적이다. 히스테리를 부리는 최고령 황새를 관찰하는 것도 황새 근로학생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다.

덧붙이는 글 | 차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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