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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정경대 학생회는 6월 1일 대자보를 통해 이만우 교수의 의정활동으로 인한 수업권 침해에 대한 입장, 남은 기간 후속 대책, 거취문제에 대한 해명을 이 교수에게 요구했다.
 고대 정경대 학생회는 6월 1일 대자보를 통해 이만우 교수의 의정활동으로 인한 수업권 침해에 대한 입장, 남은 기간 후속 대책, 거취문제에 대한 해명을 이 교수에게 요구했다.
ⓒ 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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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경제이론 벌써 종강한대!"

경제학과에 다니는 친구의 이야기다. 한참 과제다 퀴즈다 바쁜 시기에 뜬금없이 종강이라니. 이유를 물어보니 19대 국회 개원 때문이란다.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한 경제학과 이만우 교수가 국회 입성 때문에 더는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친구는 당장 수업이 없으니 좋긴 한데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4·11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한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이만우 교수가 19대 국회 개원을 이유로 재정학 수업은 5월 29일, 미시경제이론 수업은 5월 31일을 끝으로 종강했다. 고려대학교 학사일정대로라면 시험기간을 빼고서라도 6월 둘째 주까지는 수업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치참여 교수를 뜻하는 '폴리페서(Polifessor)'. 이들이 정치참여를 이유로 자신의 본업인 강의에 소홀하여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다.  

한 학기 수업의 4분의 1 휴강... 해당 교수 "다 가르쳤다"

친구가 듣는 미시경제이론은 일주일에 두 번씩 16주간 진행되는 수업이다. 2주 이른 종강 이외에도, 교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개강을 남들보다 1주일 늦은 3월 15일에 했다. 교수의 임플란트 시술을 이유로 했던 1주일간의 휴강까지 합하면 이번 학기에만 총 4주간 아예 수업이 없었던 셈이다. 16주 수업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공식 수업일수의 4분의 1이 '휴강'이다.

3월 말 이만우 교수가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직후,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는 이 교수에게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 문제에 대한 질의서를 발송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만우 교수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수강생들의 불편함이나 피해가 없도록 강의를 계속할 계획이에요. 6월 초순까지는 강의를 계속하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이며, 충실한 의정활동을 통해서 학우들에게 보답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던 교수의 약속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요새 내 수업에 대해서 정경대 학생회가 대자보를 붙였던데, 정작 내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은 불만이 없을 것 같아요.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기 때문에 종강하는 겁니다."

미시경제이론 수업 종강 날,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한 이야기이다. 이 말은 사실일까? 해당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견해를 직접 들어봤다.

"처음부터 일찍 종강할 생각이셨는지 진도를 너무 빠르게 나가시는 바람에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이론적인 부분에서도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강의 내용에서 가끔은 편향된 시각을 보여주실 때가 있는데, 그런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봐요. 그렇지만 이런 식의 겸직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에요.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교수로서 매우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학문에서 '다 가르쳤다'라는 것이 과연 쉽게 가능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했다. 그리고 학기 초에 교수가 미리 이런 사정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했는지 묻자, "전혀 몰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강 자체가 남들보다 1주일 늦은 3월 15일이었으니 사실 수강신청 정정기간도 지난 이후였다.

학생들은 이러한 교육권 침해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말할 곳이 없다고 했다. 종강 이후에 실시되는 강의평가에 쓰려고 해도 이미 다음 학기에는 수업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4주간 수업 하지 않아도 '월급'은 그대로

이만우 교수가 학기 초에 올려 놓았던 미시경제이론 강의계획서. 16주 기준으로 강의 계획이 짜여져 있다.
 이만우 교수가 학기 초에 올려 놓았던 미시경제이론 강의계획서. 16주 기준으로 강의 계획이 짜여져 있다.
ⓒ 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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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종강을 하면 강의료를 적게 받는 것일까? 궁금증이 일어 고려대학교 교무처에 직접 전화를 걸어 물었다. 교무처 관계자는 "이만우 교수의 경우 휴강을 한다고 해서 더 적은 강의료를 받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시간당 '강의료'를 받는 '강사'와는 다르게, '전임 교수'는 매달 '급여'를 받는 것이므로 조기종강을 해도 월급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교수가 4주간 휴강을 해도 학교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25퍼센트를 할인해 주지 않았다.

문제는 조기 종강만이 아니다. 고려대학교 정경대 학생회는 학내 대자보를 통해 종강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도 교수의 해명을 요구했다. 남은 기말고사와 성적발표, 앞으로의 거취문제에 대한 확답을 요구한 것이다. 교수가 대학에 있지 않으면서도 교수직을 유지한다면, 대학가의 고질적인 문제이자 민감한 사안인 '폴리페서' 논란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만우 교수는 지난 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런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미 학생들과도 다 이야기가 된 상태인데, 내가 국회 일정에 맞춰서 진도를 빠르게 나갔어요. 의원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홀한 부분이 있을까봐 수업을 '인텐시브'하게 진행했고,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알거예요. 과제물 같은 것을 옛날보다 더 많이 내 줘서 수업을 따라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했어요."

이 교수는 기말고사나 성적 관련 업무도 본인이 직접 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앞으로의 거취를 묻는 질문에는 6월 1일부터 학교에 휴직계를 낸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경대 학생회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정해진 수업일수가 있는데 그것을 채우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폴리페서 방지법'

사실 '폴리페서' 논란이 새롭게 대두되는 것은 아니다. 18대 총선 당시에도 몇몇 교수들이 휴직을 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진행하는 등 학생들의 교육권 침해가 큰 논란이 됐었다. '폴리페서 방지법'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폐해를 근절하기 위해 18대 국회에서 여야는 교수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 교수직을 자동 사퇴하거나 선거운동에 들어가기 전 휴직을 의무화하는 '폴리페서 방지법'에 공감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통과되지 못한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대학교수가 정치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문제"라며 "학교 차원에서 교수가 정치에 참여할 생각이 있다면 처음부터 수업을 맡지 못하도록 해 학생들의 수업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 팀장은 "고려대학교와 해당 교수는 학생들에게 사과하고 등록금 일부를 해당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진출을 앞두고도 휴직계를 내지 않고 무리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폴리페서'들의 모습을 보면 학생에 대한 책임감 보다는 '보험'으로 교수직을 걸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태그:#폴리페서, #이만우 교수, #새누리당 비례대표, #수업권 침해, #대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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