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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력을 동원해서 준비물품 반입을 저지하는 본부 측
 경찰력을 동원해서 준비물품 반입을 저지하는 본부 측
ⓒ 손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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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점거 하려고 사다리를 반입하는 것 아니냐."
"점거 여부는 내일 총회에서 결정되는 것이지 지금 정해진 게 아니다."

서울대 학생총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5월 30일. 학생총회 무대 설치를 위해 총학생회가 학교 안으로 반입하려던 사다리를 본부가 청원경찰을 동원해 물리력으로 저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본부 측은 "우리도 우리의 직장과 터전을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학생들을 막아섰고 이에 오준규 서울대 총학생회장(법학 08)은 "(본부의 물리력 동원이) 아무런 근거도 없고, 학칙의 규정에도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정당한 학생총회 개최를 위해 사다리 반입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관리과는 학생들을 믿을 수 없다며, 5월 31일 학생총회 당일날 무대 설치 때 돌려주겠다는 말만 남기고는 사다리를 압수해 갔다. 서울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010년 12월 1분 만에 날치기 통과된 서울대 법인화법. 대학이 국립에서 법인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대학의 주인이라는 학생이 낄 자리는 애초에 없었다.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자리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비상총회 그리고 대학 본부점거는 지난해 여름 서울대를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면서 본부점거는 끝이 났고 학생들은 물러갔다.

학생들이 나간 자리에서 서울대 법인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됐다. 법인화되기 전 마무리 단계에서 학내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개최한 공청회는 졸속으로 진행됐다. 본부 측에서 뽑은 학생대표 2명만이 공청회에 참가했으며 그마저도 발언기회가 없는 한낱 관람객에 불과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28일 서울대는 국립대학법인이 되고 말았고 법인화가 되자마자 학생들이 우려했던 일들은 현실이 되었다. 졸속적인 등록금 결정,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그들만의 이사회, 총장직선제 폐지, 장학금 전면 개편.

이처럼 서울대 법인화의 실체가 드러나자 학생들은 다시금 우리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감대는 4월 재선거를 통해 법인화에 대한 '학생총회'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운 총학생회 선출로 이어졌고 5·31 학생총회 추진에까지 이르렀다.

"총회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학교는 우리 요구 알아야 한다"

학생총회에 참여하기 위해 아크로(서울대 중앙도서관 앞 계단광장)에 모인 학생들
 학생총회에 참여하기 위해 아크로(서울대 중앙도서관 앞 계단광장)에 모인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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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총회 당일인 5월 31일, 오후 5시 반부터 학생총회가 열릴 아크로(서울대 중앙도서관 앞 계단광장)에는 무대가 설치되고 각 과·반 별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희망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총회 참석자가 지난해에 비해 많이 모자라 보였다. 지난해와는 달리 이번에는 듬성듬성 빈 곳이 보였다. 입장 진행을 맡고 있던 김태형(08학번) 학우는 "지난해 비상총회 성사 당시와 입장 수 추이를 비교해봤을 때 이번 학생총회는 절망적이다"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드러냈다. 결국 학생총회는 총회 성사 기준 정족수 1658명 중 892명이 참석해 무산됐다.

학생총회는 무산되었지만 오준규 총학생회장은 "총회가 성사되지 않았지만 학교는 우리의 요구를 알아야 한다"며 본부점거는 못하더라도 행정관에 들어가 요구안을 전달하자고 발언했다. 이에 학생들은 요구안 전달을 위해 서울대 행정관으로 몰려가 이번 총회에서 의결하려고 했던 요구사항을 본부 측에 전달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본부 앞에는 청원경찰과 본부 측 직원들이 문 앞을 막고 있었으며, 출입문 또한 쇠빗장과 쇠사슬로 단단히 닫혀 있었다. 총학생회 측은 "점거가 아니라 요구안을 전달하고 나오겠다"는 뜻을 계속해서 피력했지만 본부는 묵묵부답이었다. 학생총회가 성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본부 앞에 선 학생들은 그들의 주장을 외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학생총회에 참석한 900여 명의 학생들은 본부 앞에서 정리 집회를 열어 자유발언하는 시간을 가진 뒤 총학생회가를 부르는 것을 끝으로 자진해산할 수밖에는 없었다. 학생들이 자진해산하자, 이전까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멀리서 학생들을 쳐다보던 본부 측 사람들은 환한 얼굴로 총학생회장에게 다가와 격려의 말들을 건넸다. 이전까지는 나와서 얘기하자고 해도 안 나오던 이들이었지만, 학생총회가 끝나자 총학생회장에게 먼저 말을 걸고 악수도 건넸다. 이렇게 2012년 5.31 학생총회는 끝났다.

"다른 학생들 좌절할까 걱정" - "학교 측 대화 의지 의심"

이번 학생총회에서 서울대 학생들은 지난해 본부점거와는 달리 어떠한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학생총회 자체가 성사되지 않아 준비한 안건들은 의결시키지도 못했고, 본부에 요구안을 제출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이번 학생총회는 실패한 것일까.

겉으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재선거를 통해 간신히 당선된 총학생회가 내건 첫 번째 공약인 학생총회가 보기 좋게 실패했으니, 앞으로 총학생회가 추진하는 사업들은 동력을 많이 잃을 것이다. 학생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을 수 있다. 총회에 참석한 이현승(10학번, 사회학과)학생은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총학생회가 당선 이후 학생총회에 전력을 쏟아 부은 만큼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다른 학생들도 많이 좌절할까봐 걱정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본부는 이미 추진되고 있는 법인화를 더더욱 학생 눈치 안 보고 빠르게 진행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총회를 준비하면서 학생들이 얻은 수확에 대한 목소리도 있었다. 학생들이 이번 학생총회를 통해 법인화가 실제로 추진된 뒤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졌고, 이는 ▲ 재정회계투명화 ▲ 등록금 공동결정 ▲ 평의원회 의결권 ▲ 총장직선제 부활 ▲ 국립대 재전환 ▲ 자치공간 확충 ▲ 서울대 대학원 성폭행 사건 적극 해결 ▲ 장학금 지급 기준 현실화 등의 10대 '국립서울대 학생권리선언 종합요구안'으로 의제화 되었다는 것이다. 김훈녕(08학번, 사회교육과) 학생은 "비록 이번 총회에서는 의결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법인화의 문제점들을 학생들 스스로가 시정하려고 노력할 때 이런 의제들은 문제 해결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라며 이번 총회가 아무런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학생총회를 통해 법인화를 추진하는 본부의 자세에 진정성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학 본부는 지난해 본부 점거 이후로는 그래도 형식적으로나마 공청회도 열고, 대화협의체라는 것을 만들어 학생들과 소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학생총회를 겪으며 많은 학생들은 본부가 학생들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태경(11학번, 영어영문학과) 학생은 "학생들이 본부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나 '논의'를 할 수 없는 불균형적인 구조 하에서 학생들이 힘을 낼 수 있는 수단은 학생총회 뿐"이라며 "그럼에도 본부는 학생총회를 막기 위해 청원 경찰을 부르고, 정문에서 행사 물품을 막고, 학생총회 홍보 현수막을 없애는 행위를 하고 가져간 행사물품을 학생총회 시작할 때 돌려주겠다는 약속도 어겼다"며 본부의 자세를 비판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정철영 서울대 학생처장은 "오늘은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대신 그는 본부 측에서 주도하는 "대화협의체 소위원회에서 충분히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지윤(08학번, 인류학과) 학생은 "제도적으로 불평등한 학생과 본부 측 관계에서 학생 측이 주도한 대화공간은 거부하고, 본부 측이 주도한 대화공간만을 고집하는 것은 진정으로 학생들과 대화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며 본부 측의 대화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총회 실패로 모든 게 끝나는 것 아니다"

쇠창살과 쇠사슬로 굳게 잠긴 서울대 본부 정문
 쇠창살과 쇠사슬로 굳게 잠긴 서울대 본부 정문
ⓒ 손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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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번 학생총회가 학생총회 정족수인 1700여 명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9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는 분위기도 있었다. 실제 학생총회가 성사되지 않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침체되기 보다는 활기찼으며 늦은 시각까지 많은 학생들이 이탈하지 않고 남아 마무리를 함께 했다. 학생들은 학생총회 성사 여부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윤희진(11학번, 자연대) 학생은 "이번 총회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우리가 주도하고 우리가 결정해 학생 자치의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강조하며 "사실 이전까지 서울대에서 열린 많은 집회에서 100명을 넘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90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모였다는 것은 비록 학생총회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라며 희망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인문대 학생회장 염동혁(08학번, 국사학과) 학생도 "총회 성사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이번의 실패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라며 "오늘 모인 많은 학생들이 이번 학생총회를 통해 느낀 학생 권리와 학생 자치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간직해 간다면 오늘 모인 900명의 숫자가 다음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서울대학교 5.31 학생총회는 끝났다. 겉으로 봤을 때 이번 학생총회는 성사되지 못했고,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서울대 학생들의 '학생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노력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손태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학생총회, #본부점거, #서울대 법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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