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시사회 후기이며 <도가니>는 9월 22일 개봉합니다. 이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입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입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민수입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아이의 영정사진을 든 남자가 세상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물대포에 쓰러져도, 곤봉에 머리가 짓눌려도, 전경에 끌려가면서도 남자는 멈추지 않습니다. 투쟁도, 선동도 아닙니다. 이 아이가 여느 아이처럼 소중한 아이였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러나 품에서 떨어진 아이의 사진은 전경의 군홧발에 산산조각이 납니다. 지난 2005년 '광주인화학교'에서 자행된 장애인 성폭력 사건을 재조명한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입니다.
재단 이사장의 아들들과 교직원 10여 명이 유치원부터 고등학생까지 12명 이상의 장애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유린하고, 재판에 회부된 4명을 포함해 가해자 중 일부는 복직한 반면, 성폭행 대책위원회에 참여한 교사 5명은 파면 당하고, 진술이 어려운 학생들에다가 사건 이전의 졸업생까지 포함하면 실제 피해자 수가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곳, 광주인화학교 사건의 개요입니다.
'그리스도 정신에 입각한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하고 자주 자활 근면 활동하는 자활인 육성'을 설립이념으로 하는 학교. 그 뜻대로라면 천상의 합창이 울려 퍼져야 마땅하지만 악마의 손아귀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아이들의 순결한 육체와 영혼을 갈가리 찢어발겨 버립니다. 영화는 그 '지옥의 도가니'를 정공법으로 조명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분노와 함께 잊었던 진실을 기억할 것을 요구합니다. 짐승들 품에 진실을 안겨 줄 수는 없으니까.
안개가 짙게 내려앉은 산길을 운전하던 남자가 고라니를 치고, 그 시간 소년은 달려드는 열차를 피하지 않고 산산조각 납니다. 두 죽음이 교차하는 섬뜩한 오프닝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합니다. 그 남자가 도착한 곳은 무진시 청각장애인 학교 자애학원. 미술교사로 부임한 인호(공유)는 교장과 그의 쌍둥이 동생인 행정실장에게 인사를 합니다.
첫 수업시간.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손놀림에 따라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날뿐,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교실엔 무거운 침묵만 흐릅니다. 수업이 끝나고 불 꺼진 학교를 나서려는 순간, 어디선가 들리는 먹먹한 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멈춰 세웁니다. 소리가 되지 못해서일까, 온 몸을 버둥거리는 듯한 비명소리를 쫓아 인호는 어둠 속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침묵의 카르텔'은 치밀했고 결속은 단단했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을 잇는 것은 안개에 잠긴 무진시(가상도시지만, 옛적에 광주를 무진으로도 불렀다)입니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연상시키듯 무진시는 어둠의 끄트머리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에 갇혀 있습니다. 그 안개는 예사 안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야를 가리는 장막입니다. 진실로 하여금 침묵을 강요하는 카르텔입니다. 거짓과 폭력으로 진실을 질식시키는 기득권자들의 협잡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입니다.
자상하고 인자한 자애학원 교장은 이 협잡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청소년선도위원에 무진교회 장로인 그는 무진시를 비롯해 서울까지 손이 닿는 유력인사입니다. 그의 동생은 형 대신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해결사 노릇을 자처합니다. 부임 첫 날, 교장실 밖에서 인호에게 노골적으로 학교발전기금 '작은 것 다섯 장'을 요구하는 것도 그입니다.
이들 형제에겐 수족처럼 움직이는 하수인이 여럿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교무실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변태성욕 보육교사 박 선생. 함께 근무하는 교사들은 애써 시선을 돌립니다. 지하 세탁실에서 연두의 머리카락을 난도질한 후 세탁기에 집어넣고 돌리는 것을 '훈육'이라고 주장하는 생활지도 여교사. 그녀는 자애학원 설립자의 수양딸이자 교장의 애인입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하는 학교 수위 등.
병원으로 옮겨진 연두가 무진인권운동센터 간사 유진(정유미)에게 이들의 성폭행과 학대를 폭로하면서 지옥의 시간들은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연두와 함께 유리가 증언을 합니다. 심야의 학교에서 인호가 들은 비명소리가 유리의 성폭행 현장을 목격한 연두가 뒤쫓아 간 교장에게 폭행을 당하기 직전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음도 밝혀집니다. 교장은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죽여 버릴 거"라며 수화와 함께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합니다.
유진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교육청. 하지만 장학사는 "방과 후 사건은 시청 소관"이라며 정중히 사양합니다. 경찰서에서는 교장의 '인권'을 들먹이며 일언지하에 자릅니다. 서울의 방송국에서 취재 연락이 오고, 동생과 함께 박 선생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민수의 증언이 TV 전파를 탑니다(2005년 11월 1일 MBC <피디수첩>이 보도한 '은폐된 진실,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 고발'을 가리킨다). 오프닝에서 열차에 몸이 부서졌던 소년은, 민수의 동생이었습니다.
법원 앞에서 목청껏 찬송가를 부르는 무진교회 신도들을 지나 영화는 법정으로 시퀀스를 이동합니다. 이후 영화는 법정 드라마를 외피로 한국사회 기득권세력의 '침묵의 카르텔'을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전관예우의 실례를 증명해 보이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 권위주의 법원의 상징이 되어버린 판사, 인술이 실종된 의료계를 대변하는 의사, 제자에게 진실에 침묵할 것을 종용하는 대학교수, 출세를 위해 증거물을 가로채는 검사까지 그들의 협잡은 치밀하고 결속은 단단합니다.
흥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그닥 별스러운 일도 아니니까요. '불순한 세력들로부터 장로님이 모함 받고 있다'며 길길이 날뛰는 무진교회는 예의 보수언론을 떠올리게 합니다. 뭉칫돈으로 합의를 끌어내 재판을 무력화시키는 수법은 한 대기업을 연상시킵니다. 이윽고 생환의 회포를 푸는 룸살롱 뒤풀이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교장의 파안대소는 이들의 '성채'가 얼마나 견고한가를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정의는 반드시 이기는 법이지. 사필귀정이야, 하하하~"이런 곳이 여기 뿐일까?
그러나 안개가 짙을수록 내밀한 속살도 드러나기 마련인 법. 관객들의 시선을 흡입하는 이가 있으니, 인호입니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와 달리 영화 속 인호는 몇 가지 각색을 거친 인물입니다. 그가 싸움을 포기하고 소멸하듯 무진을 빠져 나오는 소설 속 결말과도 다릅니다. 오히려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 인호를 혈연·지연·학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침묵의 카르텔'에 정면으로 맞서게 합니다.
대학 스승인 김 교수의 추천으로 자애학원에 부임한 인호는 '학교발전기금' 요구를 거절하지 못합니다. 천식으로 고생하는 그의 딸을 돌보는 늙은 노모는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금을 빼선 한 칸짜리 방으로 이사합니다. 재판이 열리고 법정에 온 노모는 "니 한 몸 건사하고 가족들 먹여 살리려면 옳은 일 옳은 소리만 하고는 못사는 기다"며 아들을 말립니다. 그런 인호에게 한 눈 팔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인호로 하여금 침묵의 대가를 뿌리치도록 합니다. 법정 밖 공간에서 벌어지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그는 아이들과 함께 길어 올린 진실에 정직한 태도로 임합니다.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유리가 그의 등에 업혀 "선생님이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장면에서처럼,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소리'조차 상실한 아이들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판 과정을 지켜본 노모도 먹을거리를 아이들에게 건네며 응원합니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 안으로 뛰어드는 것만큼 소시민들에게 곤혹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타협의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어느 순간 진실의 정반대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해고된 인호와 소주잔을 나누던 유진이 툭 던진 말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비록 세상은 귀를 틀어막을 지더라도, 끝까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다움이 있기에, 우리들이 찾는 희망은 허상이 될 수 없다는,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가 관객들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는 거예요."1년 후 서울 지하철 구내. 영화는 '안개의 도시, 무진시로 오라'는 광고판을 클로즈업합니다. 인호의 얼굴과 광고판을 교차하던 카메라가 멈춰 서자 자애학원의 음습한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옵니다. 더 짙고, 더 깊숙이, 더 낮게 끈적이며 엄습해 오는 안개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뒤덮을 태세입니다.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된 '침묵의 카르텔'로 진실을 은폐하는 곳이 무진시 뿐인 줄 아느냐는 듯이.
광주인화학교 성폭력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6년째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 '침묵의 카르텔'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대책위의 주장과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학교 재단인 사회복지법인 우석은 지금껏 단 한 차례도 사과하지 않았으며, 사건이 터지자 물러났던 친인척들은 재단에 복귀했습니다. 최근에는 학교이름 세탁과 법인 정관변경 등을 추진하며 수용시설 확장마저 꾀하고 있습니다. 또한 피해 학생들에게 약속한 치유와 보상은 공염불이 됐지만, 학교 예산은 꼬박꼬박 지원해 왔습니다.
우리들이 믿어 온 가치들이 퇴색하고, 우리 앞에 놓인 진실을 기억하지 않으며, 현실이 갈수록 비겁해질 때, '지옥의 도가니'는 기승을 부리고 한국사회를 관통합니다. 소설 <도가니>는 '지옥의 도가니'가 어떻게 현재진행형인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그 사람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점수, 점수, 점수, 경쟁, 경쟁, 경쟁 속에서 남을 떨어뜨리고 여기까지 왔어요. (…) 그런데 그들이 정신능력 떨어지는 장애아들 몇 명 때문에 처삼촌과 대학동창 사돈과 사위의 은사와 장인의 후배와 얼굴을 붉혀가며 그 정의라는 거, 진실이라는 거 되찾아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