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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오마이뉴스-한림대 기자상 응모작입니다. 손미주 시민기자는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인터넷미디어 전공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 [편집자말]
길거리 곳곳에서 겨울 냄새가 묻어난다. 해는 짧아졌고 사람들은 저마다 두툼한 옷가지로 추위를 피하기에 바쁘다. 쌀쌀한 날씨 탓에 사람들로 붐볐던 거리마저도 휑하니 느껴진다. 언제나 푸름을 뽐내며 우리를 맞아주던 나무들도 이 계절엔 잠시 안녕이다. 거리를 밝히던 나무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이 계절엔 푸른 나무가 더없이 그립다. 푸른 나무를 향한 그리움을 더하던 중 나무의 푸름이 온 몸 가득 담긴 이를 만났다.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씨(47)다.

우연히 맺게 된 나무와의 인연, 지금은 그의 삶

1999년 겨울, 싸락눈을 맞으며 산책을 하던 그는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보았다. 목련이었다. 한 겨울에 핀 목련이라니. '이 나무에는 분명히 사연이 있겠다. 사연이 있으니 지금 피지. 나는 그 사연을 기필코 찾아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단다. 그것이 그가 9년째 나무를 찾아 떠나도록 만든 시작이었다. <중앙일보>에서의 12년 기자 생활을 마감하고 기자 생활의 복잡한 동선을 정리하고 싶어 떠난 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은 셈이다.

직장을 다닐 때와 달리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자유롭지만 그러한 자유 안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그 까닭에 기자 생활을 하던 때보다 한 곱절을 웃도는 양의 기사를 지금껏 쏟아내는 중이다.

  
▲ 나무칼럼니스트 고 규홍씨 
ⓒ 고 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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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재 나무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한림대와 인하대 겸임교수, 천리포 수목원의 법인감사로도 몸담고 있다. 나무 이야기를 담은 책자만 다섯 권을 펴낸 그는 온라인상에서도 솔숲닷컴이란 나무숲을 꾸려 쉼없이 나무를 전한다. 2002년부터 4년여 동안 일주일의 반 정도를 꾸준히 나무를 찾아 떠났으나 요즈음은 공부에 더 열중하고 있다는 그. 머릿속을 좀더 채워야겠다는 생각과 자신이 쓰는 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할 때라는 게 그가 내민 이유였다.

지금 자신의 생활이, 어쩌면 사람살이의 알갱이를 찾아가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 거라는 그에게 나무란 그저 단순한 나무가 아닌 듯 보였다. 사람처럼, 사람과 함께, 사람과 마주 보는, 직립해서 자라는 유일한 생명체 그것이 바로 그의 나무였다. 그것은 즉, 나무와 사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의 고리로 연결된 것과도 같았다.

"우리 주변에 있는 나무 옆에, 가로수 옆에라도 잠깐 서서 나무가 내뱉는 날숨이 우리에게는 들이마시는 들숨이 되고 거꾸로 우리가 내뱉는 날숨은 나무의 들숨이 된다는 것을 느껴본다면 더 없이 소중한 살림살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를 그저 나무로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만 보기에는 무언가 아쉽다. '이 사람, 참 나무를 닮았다'라는 생각에 닿았다. 나무처럼 살려면, 언제나 외로울 수 있어야 하고, 또 비바람 눈보라 모질게 몰아쳐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그런 상황을 어찌 인간이 받아들이겠냐는 게 그의 뜻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과 닮은 나무는 무엇이겠냐 물었더니 닮고 싶은 나무는 있다며 말을 이었다. 감나무였다. 있을 때는 있는지 없는지 느껴지지 않지만, 없어지면 그 빈자리로 가치를 절감할 수 있는 감나무. 감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웃음은 분명 나무와 닮아 있었다.

"만약 나무가 사라지면"이라고 시작한 말에 '만약'조차 허락하지 않던 그는 국제 해양협회에서 규정한 무인도의 조건이 무언지 아냐며 물어왔다. 그것은 사람, 물, 그리고 나무라고 했다. 달리 말하면 나무가 없는 곳은 사람도 살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무가 사라지면 공기 중의 산소가 사라질 테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이처럼 열정적일 수 없을 것이라 말하며 사람과 나무는 한데 모여 같이 가는 존재임을 다시금 되새기는 듯했다.

그의 나무 사랑이 물푸레 나무를 천연 기념물로

이러한 나무에 대한 그의 사랑은 한 나무가 천연 기념물이 되는데 무한한 거름이 됐다. 나무 여행을 하던 중 버려지다시피 서 있는 물푸레나무 한 그루를 본 그는 문화재청에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을 했다. 그 후 현지답사를 마친 문화재청은 그 물푸레나무를 천연기념물 470호로 지정했다. 개인의 천연 기념물 신청이 지정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드문 일이었다.

언젠가 사람살이의 참 진리를 담은 글을 쓰는 것이 필생의 꿈이라는 그,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고 그 대상과 이야기 나누고, 그걸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이어서 그 사람들과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교감하니 어찌 더 행복할 수 있겠냐는 그에게 물었다.

"세월이 흘러 연로하게 돼도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떠나겠냐"고.

"'연로'가 몇 살을 의미하나요? 내 선생님은 환갑이 훨씬 넘으셨는데, 나와 거의 비슷한 양의 여행을 하신답니다. 그러니 나도 70살까지는 충분히 다니게 되겠지요. 그리고 손주쯤 되는 어린 아이들 손잡고 숲 산책 하면서 재미있게 나무 이야기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될 거랍니다. 멋지지 않나요?"

제 팔에 끼고 있지 않은 까닭으로 잊혀지거나 무뎌지는 것들이 우리네 삶 속에는 너무도 많다. 그 으뜸으로 공기가 그러하며 사람이 그러하다. 이 두 잊혀짐을 제하더라도 '언제나 곁에 있기에' 놓치고 살아가는 것들은 무수하다. 이처럼 우리의 느슨한 의식 탓에 외로이 있는 그것들은 제 빈 자리가 드러나야만 그제야 우리의 팔 안쪽을 꿰찰 수 있다. 그 겨울 날 목련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 온 것 역시 제 난 자리를 보이려니 고달파서는 아니었을까.

그가 보았던 한겨울 날의 목련은 어쩌면 나무가 그에게 건넨 신호였을지 모른다. 우리를 잊어가고 우리에게 무뎌져가는 저들을 깨워달라며 보낸 손짓.

지금도 어느 길에선가 열심히 나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 짓는 건 그간 잊고 살았던 것에 대한 깨움을 준 감사 때문이리라.


태그:#나무, #나무칼럼니스트, #고 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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