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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오마이뉴스-한림대 기자상 응모작입니다. 진하나 시민기자는 한림대학교 방송통신 전공 3학년에 재학중입니다. [편집자말]
원장 기다리던 환자들 "원장님 보고 싶었어요"

일주일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 노인과 장애인들을 찾아가 머리를 잘라주는 베테랑 미용사가 있다. 지난 20년 동안 봉사활동을 다닌 경기도 남양주시 BM미용학원 원장 고복희(高福姬·60)씨가 그 주인공이다. 만나보고 싶다고 제안하자 그녀는 흔쾌히 "그렇다면 함께 병원에 가자"고 답해주었다.

파란 하늘 아래 붉게 물든 단풍이 수놓아진 산길을 가르며 차가 바쁘게 달렸다. 도착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축령복음병원. 차가 도착하자 이미 입구에 나와 있던 환자들이 "원장님~원장님~보고 싶었어요"라며 고씨를 반긴다. 환자들이 반기는 고 원장은 한 달에 한번, 꼭 이곳을 찾는다. 벌써 10년째다.

고씨가 "힘들겠지만 모두들 고생해주세요"라고 말하자 여덟 명 미용사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거울로 요리조리 살펴가며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미용사에게 설명한다. 고씨는 한쪽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 환자들의 손을 잡아주며 안부를 묻는다.

그녀가 정기적으로 미용봉사활동을 다니고 있는 곳은 모두 아홉 곳. 이날 찾은 축령복음병원을 비롯 남양주시 관내 노인정과 화도교회, 남양주시 장애인협회, 청평 군인 병원 등이다. 대부분 정신 지체인들과 노인, 장애인들이 지내는 곳이다. 일주일에 두 군데만 다녀도 한 달이 금방 지나간다.

고씨가 봉사를 처음 시작한 건 20년 전. "손님 머리를 잘라 드리고 돈을 받으려 하는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져 있는 돈이 나오더라고요. 그 돈이 제 손에 쥐어지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그 이후부터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머리를 무료로 잘라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근처 양로원을 찾아가기도 하고요."

"바르게 사는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라고 말하는 고복희씨
▲ BM미용학원 원장 "바르게 사는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라고 말하는 고복희씨
ⓒ 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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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이제는 고씨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고씨가 봉사를 하는 곳은 대부분 정신 지체인들이나 장애인들이기 때문에 머리 손질하는 데 어려운 점들이 많다. 환자들이 언제 갑작스럽게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긴장의 끈을 풀지 않는다.

하지만 고씨는 "환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도 부드럽게 머리를 만져주면 '엄마'라고 부르고, 또 수줍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곤 한다"며 "그럴 때면 '내가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라고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한번 하면 계속하게 돼, 봉사도 중독입니다"

고씨는 "시간이 없어서 도와드리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게 안타깝다"며 더 많은 사람을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학원수업과 봉사활동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들이 고씨를 걱정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봉사를 통해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웠고 그래서 이제는 아들, 딸도 이런 마음을 이해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고씨는 월요일에 학원 미용실에서 손님을 받는다. 돈을 안 받으면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60세 이상의 어른들께는 무료로 머리를 잘라드리고 파마 손님에게는 거의 약값만 받고 있다. 행여나 찾아오시는 분들이 마음을 다치지 않을까 해서 내놓은 해결책이다.

"혹시나 학원생들 사이에서 선생님이 봉사활동 때문에 수업을 게을리한다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 '봉사'라는 말은 '받들어 모신다'라는 말이에요. 이렇게 봉사함으로서 학원생들이나 내가 오히려 얻어가는 게 많은 것 같아요. 봉사도 중독이에요. 한 번 하면 계속하게 돼요."

어느덧 시계 바늘이 오후 4시를 가리켰다. 그동안 여덟 명의 미용사들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머리를 잘랐다. 정해진 시간이 있어 더 많은 환자들의 머리를 다듬어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표정이 역력했다. 바뀐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환자들이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해댔다. 미용도구를 정리하던 원장님과 학원생들의 얼굴에 피곤함이 가시는 듯 이내 곧 환해졌다.


태그:#BM미용학원, #미용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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