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6 13:34최종 업데이트 23.09.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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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하루 앞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방부 장관이나 참모총장 같은 군사 책임자가 외세의 한국 진출에 호의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위험하다. 성문 경계병이 적과 내통하는 것보다 훨씬 위태로운 일이다.

실제로 그런 국방부 장관이 한국을 불행하게 만든 전례가 있다.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킨 1907년 7월 24일 한일신협약(제3차 한일협약, 정미7조약)에 찬성한 7대신 중 하나가 군부대신 이병무였다. 정미칠적 중 하나가 대한제국판 국방부 장관이었던 것이다.


일본과 친일파의 압력 속에 그달 18일 고종황제가 퇴위조서를 발표하고 다음 날 하야했다. 그런 뒤 24일에 한일신협약이 강요됐다. 이 과정에서 맹활약한 7인이 이완용·송병준·고영희·조중응·이재곤·임선준과 더불어 이병무다.

그때 군부대신 이병무는 칼을 차고 들어가 고종을 위협한 일로 유명하다. 그달 24일 자 <대한매일신보>는 "군대 리병무 씨는 심지어 칼을 차고 시립하였다더라"라고 보도했다. 대한제국을 지키는 데 써야 할 그 칼로 대한제국 황제를 퇴위시키고 뒤이어 군대까지 해산시켰던 것이다.

외세에 의존하는 군사 책임자는 어느 나라에서나 경계 대상이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런 이들의 협조하에 일본 군대가 1945년까지 이 땅에 주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후임으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을 지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은 그런 불행한 역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일제의 한국 지배를 당연시하는 인물이다. 이런 사람에게 국방부를 맡기는 것이 과연 안전한지 염려하게 만든다. 언론보도로 널리 알려진 것처럼 그는 2019년 8월 유튜브 채널 <장군의 소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을 승계한 대한제국이 무슨 인권이 있었습니까? 개인의 재산권이 있었습니까? 아니, 예를 들어서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까?"

지금보다는 훨씬 못했지만, 대한제국 시절에도 그 나름의 권리의무 제도가 있었다. 개인의 재산권 역시 당연히 보장됐다. 지주계급의 재산권은 철저히 보장됐고, 이에 관한 한 일제강점기도 다를 바 없다.

인식 구조가 위험하다

만약 신 후보자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대한제국의 인권과 재산권을 지적하는 그의 말에 설득력이 따르게 된다.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사람은 주로 민중과 피억압민족의 편에서 역사를 바라보므로,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대한제국의 인권과 재산권 제도가 당연히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습니까?"라는 발언에서 나타나듯이, 신 후보자는 제국주의를 거부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일제 지배를 옹호하는 편에 서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대한제국을 비판하는 이유는 전혀 다르다.

조선과 청나라를 압박할 당시, 서양 제국주의자들과 이들에게 편승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자 내세운 논리가 있다. 조선과 청나라 같은 후진국들의 인권과 재산권 제도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구적 관점에서 보면, 조선·청나라의 인권 및 재산권 제도는 상공인들에게 불리했다. 양국의 법제는 지주 및 사대부와 농업인에게 유리했다. 그래서 상공인 출신인 서양 부르주아계급의 눈에는 두 나라의 제도가 당연히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서양열강이 조선과 청나라에 대해 불평등조약을 강요하고 자국민의 치외법권과 재산권 보호를 관철시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제 지배를 옹호하는 신원식 후보자의 입에서 대한제국의 인권과 재산권에 대한 불만이 튀어나왔다. 이는 그가 19세기 말 역사를 접하면서 피억압민족의 입장보다는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역사 인식을 축적했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일본제국주의를 계승하고 옹호하는 집단이 지금도 여전히 일본 자민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주도하에 일본은 군사대국화로 성큼성큼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제에 대해 우호적인 인물이 한국의 국방부 장관이 되는 것이 과연 옳은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신원식 후보자의 인식은 다른 것에 대한 옹호로도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식민지배 부역자에 대한 옹호가 그것이다. 그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2019년 8월 24일 주최한 '살리자 대한민국! 문 정권 규탄 광화문 집회'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우리는 매국노의 상징으로 이완용을 비난하지만 당시 대한제국은 일본에 저항했다 하더라도 일본과 국력 차이가 너무 현저해 독립을 유지하기 어려웠다"며 "이완용이 비록 매국노였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이완용을 변호했다.

이완용이 실제로는 매국노가 아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완용을 변호하는 것과, 신원식 후보자처럼 이완용이 매국노였음을 인정하면서 그를 옹호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후자는 이완용과 동일한 가치관을 갖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제 지배를 싫어하면서도 친일파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친일파들이 '나쁜 짓'을 한 데는 부득이한 사연이 있었다고 변호해 준다. 반면, 일제 지배를 좋아하면서 친일파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친일파들이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원식 후보자는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인식 구조가 위험하다는 점은 이런 데서도 나타난다.

이런 인물이 국방부 장관이 되어 참모총장들과 함께 국군을 이끄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는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안 그래도 일본 자위대가 점점 한국에 가까워지는 지금 상황에서, 신 후보자 같은 인물을 대통령실 옆 건물에 들이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 국민과 동떨어진 가치관

신원식 후보자의 위험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군의 정치 개입에 대해서도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있다. 2019년 9월 4일 유튜브 채널 <신인균의 국방TV>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12·12하고 박정희 대통령 돌아가신 그 공백기에, 뭐 서울의 봄 일어나고, 그래서 저는 그때 당시 나라 구해야 되겠다고 나왔다고 봐요. 나중에는 한국에 도움이 되는 5·16 같은 게 정치법적으론 쿠데타인데 우리가 농업화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바뀌었기 때문에 사회·경제·철학적으론 혁명이거든요."

박정희 사후에 '서울의 봄'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열기가 조성되던 상황에서 전두환이 쿠데타를 했으므로 그것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일어서는 것을 전두환이 억압한 것을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일'로 표현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5·16이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는 쿠데타이지만 그것을 전후해 농업보다 공업이 발달했으므로 사회경제적 의미의 혁명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남들은 쿠데타로 생각하는 일을 혁명이라고 열심히 외친 인물은 다름 아닌 박정희다. 5·16 쿠데타를 부르주아들이 농업 귀족에 맞서 일으킨 서양 근대의 혁명에 끼워 맞추는 것은 박정희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1961년부터 1979년까지 많이 했던 일이다.

한국인들은 신원식 후보자처럼 군의 정치 개입에 호의적인 군사 책임자를 당연히 싫어한다. 5·16 쿠데타를 은근히 방조한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같은 인물도 바람직한 군인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정치군인들의 헌법질서 파괴를 도울 만한 인물이 군사 책임자 자리에 가는 것을 한국인들은 위험시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외국군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에 특히 민감해 할 뿐 아니라 외국군이든 한국군이든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특히 민감하다. 이렇게 한국인들이 민감해하는 문제와 관련해 신원식 후보자는 일반 국민과 동떨어진 가치관을 갖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한국의 국방부 장관 직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외세가 한국을 점령한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도 외세의 침략을 옹호한다면, 외세가 막상 침략해 있을 때는 신원식 후보자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게 될지 상상해 보게 된다.

지금은 군부가 정치에 개입한 상태가 아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군의 정치 개입을 옹호한다면, 막상 군부가 헌정질서를 짓밟은 뒤에는 신원식 후보자의 입에서 어떤 발언이 나오게 될지 역시 상상해 보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지명은 우리를 이상한 상상에 빠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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