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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입었다 목숨 잃었는데... 대통령실의 무관심이 아쉽다

[取중眞담] 9월로 활동 종료하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등록 2023.08.07 07:54수정 2023.08.07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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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에 위치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사무실 ⓒ 연합뉴스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는 1948년 창군 이후 현재까지 군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중 의문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함으로써 관련자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18년 9월 출범했다.

명칭에서 드러나듯 위원회는 대통령 소속기관이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존중받는 보훈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소신을 여러 차례 밝혔었다. 대선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30일 경북 칠곡의 다부동 전적지를 찾아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을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직후 지난해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영웅들의 사명이었다면 남겨진 가족을 돌보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면서 "더 이상 영웅들의 희생이 남겨진 가족의 눈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국가보훈처의 국가보훈부 승격은 이러한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오는 9월 13일로 활동 시한이 다가온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해서는 별관심이 없는 듯하다. 지난해 7월 11일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정부 각 부처는 업무 현황과 향후 정책과제 등에 대한 대통령 업무보고를 진행했다. 올 1월에는 신년 업무보고를 했다. 대통령 소속 기관인 위원회 역시 지난 해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업무보고를 준비해왔지만 첫 보고는 해를 넘겨 지난 2월에야 이뤄졌다. 이 보고를 대통령이 직접 받은 것도 아니다.

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대통령실이 보인 반응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이 관계자는 여러 차례 위원회 업무와 관련된 대통령실 참모와 소통을 시도했지만, 전화 통화를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어렵게 성사된 통화에서 이 인사는 "그쪽(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은 총리실 소속 아니었느냐?"고 되레 반문했다. 국가안보실 소관 아니냐고도 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이를 "대통령실의 무관심"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직 남은 조사대상만 3만 90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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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3주년을 맞이한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2021년 10월 14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3년 조사활동보고회'를 열었다. ⓒ 신나리

 
사실 위원회에 대해 무관심한 건 대통령실 뿐만 아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국방위원회위원들 사이에서도 "5년이나 활동했으면, 이제는 조사권한을 군에 넘겨줘도 되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강하게 감지된다. 지난 5월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사 기간을 최대 5년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위원회 활동이 종료되기 전에 처리될 수 있을지는 아주 불투명하다.

1948년 11월 국군조직법 발효 지금까지 이후 사고나 질병 등으로 목숨을 잃은 군인 7만 4674명 가운데 순직자로 분류되지 않은 3만 9436명(2018년 9월 1일 기준)이 위원회의 조사대상이다. 지난 5년 동안 위원회는 1787건의 진정사건과 66건의 직권사건을 조사해 1180건의 진상을 규명했다.


위원회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국방부에 전사·순직 여부를 재심사할 것을 요청한 사건 중 94.7%가 뒤늦게나마 전사·순직으로 인정됐다. 경찰청(의무경찰·전투경찰순경)과 법무부(교정시설경비교도대)에 재심사를 요청한 사건도 각각 94.6%와 100% 순직으로 인정됐다. 그동안 변사나 일반사망으로 처리되어 아무런 예우도 받지 못하고 그냥 잊혀졌던 죽음들이었다. 조사를 통해 왜곡되거나 은폐되었던 억울한 죽음 여러 건도 햇빛을 볼 수 있었다.

당초 위원회는 진정이 접수된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해왔지만, 2021년 9월부터는 진정이 없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직권조사를 개시해 죽음의 진상을 규명했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일수록 유가족이나 사건을 기억하는 전우들이 이제는 고인이 되거나 고령이 되어 진정 비율이 낮아진 까닭이었다. 위원회가 밝힌 통계를 보면 직권조사의 필요성은 더욱 명확해진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발생한 사건이 전체 군 사망사건의 80%에 가깝지만, 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비율은 1950년대(1.6%), 1960년대(1.4%), 1970년대(2.1%)에 불과하다.

군 사망사건 조사할 독립적 조사기구가 필요한 이유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복을 입었다 목숨을 잃었는데, 진정 유무나 위원회가 사건을 포착했는지 여부에 따라 순직 인정 가능성이 달라지는 건 합리적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 또 군복무 중 숨진 군인의 죽음을 제대로 규명해 합당하게 예우하는 것은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의 필요에 따라 자신에게 부과된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다 목숨을 잃었다면 죽음의 실체를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국가가 고인과 유가족에게 마땅히 해야 할 도덕적 책무다.

최근 군인 사망률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또 고 이예람 중사 성폭력 사망사건 이후 군대 내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를 경찰이 수사하도록 법이 개정되고, 의무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경우 고의 또는 중과실, 위법행위가 없는 한 원칙적으로 순직으로 인정하도록 군 인사법이 개정되는 등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 진 것도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수해현장에 투입됐다 순직한 고 채수근 해병 사건에서 수사관할권을 놓고 국방부와 해병대가 마찰을 빚은 것처럼 군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앞으로도 되풀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고인의 명예를 지켜주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을 위로하는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군 사망사건을 조사할 독립적 조사기구가 필요한 이유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전국의 산하를 뒤져가며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군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명예를 되찾아 주려는 활동 역시 국가가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젊은 날 군복을 입었기에 후손도 남기지 못했고, 고인을 기억하는 가족과 친구들까지 세상을 떠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이라 해도 국가는 마땅히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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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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