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다고? 당신 대체 뭐 하자는 거야!"

[공모-건망증 때문에 생긴 일] 기억상실증인지 기억분실증인지

등록 2014.05.08 11:42수정 2014.05.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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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네~ 그런데 누구시더라?"
"어제 인사 드렸잖아요. 산림경영과 신입이라고…."


맞다. 전날 청사 3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만났던 사람. "민원인이세요?"라고 묻는 내게 그녀는 화천군청 산림경영과 신규 직원이고, 이름은 박슬아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다음날 기억을 하지 못한 원인이 뭘까.

"기억 못해서 미안해요."

'얼마나 돌머리 같은 선배 직원이라고 생각하겠나'라는 생각에 내부 전산망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아녜요. 제가 어제 너무 작은 소리로 말을 해서 기억을 못하셨을 거예요. 앞으로 뵐 땐 큰소리로 인사드릴게요."

아니다. 난 그 직원을 옷으로 기억했었다. 분명 전날 노란 점퍼를 입었었는데, 다음날 갑자기 검은색 옷으로 바뀌었으니 생소했던 거다. 그렇게 합리화시켜도 스스로 한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어떻게 사람을 옷으로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포니가 없어져 신문을 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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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을 인연으로 생긴 나의 멘티, 박슬아씨를 소개합니다. ⓒ 신광태

10대 시절 서울에서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다. 처음 발을 디딘 보급소. "다음날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던 전임자는 하루에 인수인계를 다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400여 부나 되는 신문구독자 가구를 어떻게 하루에 다 기억을 한단 말인가.

노트에 메모를 하기로 했다. '골목으로 직진을 해서 첫 번째 우측 골목 좌측 첫 번째 집'. 이렇게 메모를 한다는 건 비효율적인 것 같았다. 나름 잔머리를 굴렸다. '직,첫우,좌 첫' 이런 식으로 메모를 하며 나름 스스로의 영특함에 대견해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신문을 돌릴 때,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까만색 포니 옆집'이라고 적어 놓은 게 문제였던 거다. 포니가 없어졌다.

옷으로 사람을 기억했다는 멍청한 생각 뒤에 왜 '포니 옆집'이 생각났는지 모를 일이다. 이후 그 후배 직원은 내가 보이면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곤 했다.

'매사에 적극성을 보여라.' 신규 직원들에게 가끔씩 했던 말이다. 입사할 때 그 신선하던 생각들이 채 3년도 되지 않아 어쩌면 그렇게 소극적인 공무원 스타일로 바뀌는지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 싶었다.

"내가 멘토할 테니까 멘티 해줄래?"
"그러면 나야 영광이죠."

큰소리로 인사를 하는 만큼이나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달함이 좋았기 때문일까. 후배 직원에게 멘티를 제안했더니, 망설이지 않고 영광이란다. 그런데 내가 뭘 알려줄지 그것도 걱정이다.

혹시, 그 사람도 나를 잘 몰랐던 건 아닐까?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 뭐 늘 그렇죠… 하시는 일은 잘 되시죠?"
"그럼요. 염려 덕분에…"

어느 일요일 아침, 아내와 대중목욕탕에 갔다. 도대체 여자들은 그곳에서 뭘 하는지 빨리 나오는 꼴을 못 봤다. '다시는 같이 안 온다'라는 생각을 하며 목욕탕 입구에서 뻘쭘하게 서 있는데, 저만치 역시 나처럼 뻘쭘하게 서 있던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곤 둘이 나눈 대화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말을 할 정도면 나와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좀처럼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사람의 반가운 표정이나 말투로 봐서 '그런데 누구세요?'라고 물어볼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5분여 그렇게 대화를 나눴다. 기억이 나질 않으니 구체적인 어떤 걸 물어볼 상황도 아니다. 대충 정치적인 이야기,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주식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구세주가 나타났다. 아내가 그렇게 반가운 사람이란 걸 처음 알았다.

"저 사람은 누구야?"
"응. 그냥 아는 사람…."

아내의 질문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나를 '또라이' 취급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 봤는데 또 못 알아 봤는지 모를 일이다.

느닷없이 전화를 해 내게 화를 냈던 남자

"식사하셨나요?"
"네, 방금 먹고 들어왔습니다."
"나를 무시하시는 것도 아니고, 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어느 날 오후 1시 30분께, 사무실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다짜고짜 내게 '밥을 먹었느냐'고 묻곤 '먹었다'고 했더니 화를 벌컥 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

"에이, 잘못 걸려온 전화겠지. 요즘 이상한 사람들이 하도 많은 세상이라…"

그런 생각을 하며 1시간쯤 지날 즈음, 그 남자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화가 치밀어 올라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정중하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전날 저녁에 자신을 만났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전혀 기억에 없다"라고 말하자, 거짓이 아님을 느꼈던지 전날 상황을 이야기 했다.

소주 집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내가 그 사람의 테이블로 오더란다. 서로 명함을 교환하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도 했다. 그러곤 내일 전화를 할 테니 꼭 시간을 비워두라고 했단다. 맛있는 해장국집에서 소머리 국밥을 내가 사겠다고 했다나….

다음날, 난 전날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직원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으니, 당사자의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했겠나.

그런저런 크고 작은 기억상실증인지 기억분실증인지 모를 일을 겪고 나선 메모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사진을 찍고 기록을 하는 버릇도 생겼다. 명함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로 만난 사람인지도 써 놓는다.

아내는 내게 술을 끊으라고 한다. 그것이 치매로 이어지는 단계라는 무서운 수식어를 붙여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건망증 때문에 겪은일 응모글
#건망증 #맨토 #맨티 #박슬아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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