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난 차로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한 이유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일] '사륜구동'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사고를 불렀다

등록 2013.04.08 15:14수정 2013.04.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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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차를 구입할 때 저마다 나름의 기준이 있다. 브랜드, 디자인, 배기량, 차량 색상 등의 선호 기준에 따라 가장 이상적인 차를 사리라 꿈꾸지만... 결국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하나씩 포기하게 된다. 나의 첫 차 기준은 단 한 가지였다. 무조건 사륜구동. 기준이 하나여서 포기할 것이 없었다. 그냥 무조건 사륜구동이었다.


지금은 사륜구동 디젤차량이 다양하고 디자인도 맵시 있지만 내가 첫 차를 구입하던 시절만 해도 단순함과 투박함이 사륜구동 나름의 멋이었다.

중고차 매매상과 인터넷 사이트를 오가며 고르고 골라 중고 '뉴코란도'를 구입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 당시 뉴코란도의 디자인은 남자의 근육을 형상화한 듯했다. 투박한 곡선미와 더불어 힘이 느껴져 나를 사로잡았다.

경유 1ℓ에 670원 하던 시절 달리던 애마 뉴코란도

뉴코란도의 장점은 당시 1ℓ에 670원 하는 값싼 경유를 사용하는 디젤엔진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휘발유가 1ℓ에 1100원 하던 시절이었으므로 경유는 지금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했다. 그리고 차체가 높아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도로의 전반적인 상황을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 또한 고급 승용차를 내려다 볼 수 있어 나름 우쭐한 기분도 들었다. 또 다른 장점은 사륜구동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는 불필요한 기능이지만 겨울철에는 가끔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다.

단점도 있었다. 디젤차의 한계인 느린 반응속도, 승차감 그리고 소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차체가 높아 운전자는 편하지만 동승자, 특히 치마 입은 여자친구는 늘 불편해 했다. 또한 투 도어(two door) 시스템이라 뒷좌석에 타려면 항상 조수석 동승자는 내렸다가 의자를 밀고 당기는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운전자인 나는 그 불편함을 잘 모른다.


운전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도로가 막힐 때다. 물론 도로가 누구나 다 힘들지만 수동이었던 내 차는 다른 차에 비해 클러치의 유격이 크고 힘도 많이 필요했다. 10분 가는 동안에도 클러치를 수십 번씩 밟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왼쪽 발에서 나도 모르는 근육의 떨림이 전해진다.

하지만 몇 개월 후엔 이런 단점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나와 한 몸이 되어 달리고 있는 뉴코란도를 보고 있으면 뿌듯했다.

맹신(盲信)은 금물...사륜구동, 미끄러지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믿는 일을 맹신(盲信)이라고 한다. 나는 나의 차를 맹신하고 있었다. 사륜구동이라는 스펙에 대한 믿음과 눈 오는 날 천하무적일 것 같은 막연한 생각. 나는 늘 겨울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당시 스노우보드를 한창 즐기고 있어서 겨울만 되면 나의 애마에 장비를 싣고 눈 오는 스키장으로 달려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드디어 겨울이 왔다.

토요일마다 새벽에 일어나 스노우보드장비를 차에 싣고 스키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스키장 가는 길이 점점 익숙해질 무렵 어느 날, 그날은 왠지 국도를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전날 눈도 많이 내린 상태여서 내심 내차의 사륜구동 성능도 한 번 경험할 생각으로 제설작업이 덜된 국도를 선택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교통량도 별로 없고 눈도 적당히 녹아 가고 있어 별 부담 없이 달릴 수 있었다. 눈길이었지만 내 차는 사륜구동이라 별로 밀림 없이 잘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달리다 보니 점점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의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네바퀴가 도로 위 눈을 밟으면서 지나가는 느낌이 몸에 전해지는 것 같았다. 즐거웠다. 신났다. 도로의 눈이 아침 햇살에 반사돼 반짝이고 있었다.

국도는 고속도로에 비해 굽은 길이 많다. 직선으로 달리다 보면 어느새 곡선구간이 나온다. 운전자는 곡선구간을 만나면 심리적으로 속도를 줄이게 된다. 원심력 때문에 차가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미끄러운 도로는 마찰력이 작아서 속도에 대한 영향이 더욱 커진다. 그러나 나는 그날 그 순간만큼은 내차는 그런 물리적인 법칙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내 눈앞에 곡선구간이 보였다. 산등성이를 돌아가는 도로라 곡선 반대편은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구간이었다. 곡선을 도는 순간 도로가 빙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빙판이 된 도로에서 주행궤적을 이탈하기에 충분한 속도였다.

순간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에 발이 올라갔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더 가속해서 이 구간을 벗어나야 하는데 심리적으로 무의식중에 브레이크를 밟게 되었다. 그래도 사륜구동이라 안 미끄러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을까? 

내 차는 순식간에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의 가드레일을 향해 미끄러지고 있었다. 브레이크를 계속 밟았다가는 차가 한바퀴 돌 것 같았다. 그대로 가속페달을 밟고 이 구간을 통과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내 애마는 가드레일에 심하게 부딪치고 그 충격으로 튕겨져 나와 다시 중앙선을 넘어 원래 내 차로로 복귀하고 있었다. 하지만 멈춰서진 못하고 반대편 가드레일에 45˚ 각도로 비스듬히 2차 충돌을 일으켰다. 순간 충격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냥 멍하게 앉아 있었다. 당연히 살아는 있었다.

잠시 후 차의 상황을 보려고 운전석 문을 열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가드레일과 충돌하면서 문이 찌그러져 문을 열 수가 없었다. 조수석으로 나와 차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왼쪽 문은 완전히 찌그러져 문이 열리지 않았고, 바퀴 휠도 찌그러져 있었다. 보닛도 충돌로 반쯤 열려 있는 상태였다.

일단 다시 타서 운전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시동은 걸렸다. 가속페달을 밟으니 차는 움직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스키장이 코앞인데 일단 스노우보드를 타고 나중에 생각할까? 그 와중에도 스노우보드를 탈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만신창이가 된 나의 애마는 천천히 스키장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주차장 안내요원이 나를 바라본다. 한참을 본다. 차의 상태와 운전석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하는 나를.

일단 주차를 하고 장비를 꺼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키하우스로 들어가 부츠와 장비를 착용하고 리프트 앞에 섰다.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즐기자. 새벽의 사고는 잠시 잊고 슬로프의 자연설을 가르면, 눈발을 날리며 내려가는 기분이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하지만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몇 분 동안 '아...집에 어떻게 가지? 차는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생각하다가 슬로프에 발이 닿는 순간 곧 잊어버리고 스르르 눈길을 갈랐다.

사고 난 상태로 비상등을 켜고 시속 60km/h로 달리다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었다. 이제 슬슬 집에 돌아갈 일이 걱정됐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스키하우스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차로 향하였다. 몇 시간 만에 다시 본 내 차는 참으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마다 한 번씩 힐끔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저 상태로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선 스키장 주변 마을에서 정비소를 찾았다. 장거리 운전이 가능한지 여부를 체크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정비소를 찾았다. 정비사는 차량을 상태를 살펴보더니 바퀴도 흠짐이 있고 휠도 휘어 있어 이 상태로 장거리 주행은 조금은 위험하다고 했다. 이제는 나의 결정만 남았다. 서울까지 견인해서 가느냐? 이 차를 운전하고 가느냐... 견인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목숨과 바꿀 정도로 비싼 비용은 아니었지만 그냥 운전하고 가기로 했다. 그땐 무슨 '깡'이었는지...

먼저 응급처치를 위해 스페어타이어로 상태가 제일 안 좋은 왼쪽 앞바퀴를 교체하고 나사부분을 다시 조였다. 이것이 여기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정비사분은 고속도로에서 최고 60km/h 이상 달리지 말라고 했다. 그 이상은 차량 상태를 장담할 수 없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겨울이라 금방 해는 지고, 어둑어둑한 시간에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50~60km/h의 속도로 비상등을 켜며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오던 차들이 저속의 내차를 보며 하이빔 또는 크락션을 울리며 추월했다. 다들 힐끔 내 차 상태를 보며 조용히 지나갔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니 안도감과 함께 기운이 빠져버렸다. 얼마나 긴장하며 운전을 했는지 어깨가 아프고 핸들과 손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강심장으로 그렇게 사고를 내고도 스키장에 가서 스노우보드를 타고, 사고차를 운전해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정비소에서 만난 정비사는 '이 상태로 영동고속도로를 몇 시간 동안 주행했다'고 하자, 어이없어 했다.

겨울철 빙판길에서는 사륜구동도 그냥 차일뿐이다. 빙판길에서는 조심히 천천히 운전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덧붙이는 글 나의 '애마' 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 입니다.
#애마 #교통사고 #뉴코란도 #사륜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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