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동 국세청 차장이 안원구 감찰-사퇴압박 지시"

[집중취재-국세청의 '표적감찰' 의혹②] 국세청 감찰계장의 육성증언

등록 2010.08.05 14:29수정 2010.08.0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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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국세청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한 국세청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과 그의 주변을 '표적감찰'하고, 사퇴압박을 지시한 인사가 이현동 현 국세청 차장이라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예상된다. 이현동 차장은 백용호 청장의 청와대 정책실장 기용으로 공석이 된 국세청의 '차기 수장 1순위 후보'로 거론된다.

 

<오마이뉴스>가 정치권을 통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유윤상 전 국세청(본청) 감사관실 계장은 지난 2009년 7월 안 전 국장을 수차례 만난 자리에서 "이현동 서울국세청장의 지시를 받아 안 국장을 감찰하고 사퇴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이현동 국세청 차장.

하지만 이현동 당시(2009년 7월 15일) 서울청장은 '지시 여부'를 묻는 안 전 국장의 질문에 "내가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 권한도 없다"면서도 "뭐(라고) 하든지 간에 그건(사퇴여부) 본인이 편하신 대로 하면 되는 거예요. 굳이 내가 (지시를) 했다, 안했다 설명해 주고 소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녹취록에는 지난 2009년 7월 13일과 14일, 17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유 전 계장과 안 전 국장의 대화가 기록돼 있다. 당시 국세청으로부터 사퇴압박을 받던 안 전 국장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본청 감찰실 간부 및 이현동 서울청장과 나눈 대화를 녹음했다. 

 

녹음된 대화의 당사자인 유 전 계장은 녹취록 내용에 대한 <오마이뉴스>의 확인 요청에 "녹취록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퇴직한 사람에게 묻지 말라"며 "(나는) 혐의가 있어서 안 전 국장을 감찰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는 사실 여부를 재확인하기 위해 차장 비서실과 대변인실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국세청 측은 "안 전 국장의 녹취록에 이 차장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들어있는 걸로 안다"고만 답변하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안원구 표적감찰-사퇴압박'의 배후로 지목된 이현동 차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내 대구·경북(TK) 인맥의 핵심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경북 청도 출신으로 경북고와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그는 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 1·2과장, 대구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서울청 조사3국장을 지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세청 조사국장과 서울청장을 거쳐 지난해 7월 국세청 차장에 올랐다. 

 

"하명 받아 한달 정도 수사하고 있어... 이제 사퇴여부 판단해 달라"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

'안원구 사건'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털어놓은 유윤상 전 국세청 감사관실 계장은 '감찰 전문가'로 통한다. 유 전 계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현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3년간 근무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세청 본청 감찰관실에서 2년간 활동하다가 퇴임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후보로 부천시장에 도전하기도 했다.

 

유 전 계장은 지난 2009년 7월 수차례에 걸쳐 안 전 국장을 만났다. 당시 안 전 국장은 국세청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었다. "청와대에서 안 국장을 MB 뒷조사한 사람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라는 게 국세청 쪽의 설명이다. 'MB 뒷조사'란 안 전 국장이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건'을 입수한 사실을 가리킨다.

 

당시 국세청은 안 전 국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본청 감사관실을 통해 '표적감찰' 활동을 해왔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국세청 직원들은 안 전 국장 부인의 거래처들에 찾아가 특별세무조사를 운운하며 "안 국장이 그림을 강매했다는 사실확인서를 써 달라"고 요구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그런 와중에 당시 안 전 국장을 만난 유 계장은 "우리 (감찰) 2팀에서 국장님 상황에 대해서 조사하명을 받아가지고 한 달 정도 수사하고 있다"며 "국장님께서 이제 (사퇴와 관련) 판단을 좀 해달라"고 '자진사퇴'를 종용했다.

 

이어 유 계장은 "국장님에 대한 직접조사 결재는 한달 전에 받아놨다"고 전한 뒤, "너무 유능하시다 보니까 이런 위치(상황)에까지 오신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또 유 계장은 "(2009년 7월) 15일까지 판단(사퇴)을 안해 주시면 우리가 파악한 대로 중앙징계위에 징계를 올리고, (검찰에) 수사에 대한 고발(의뢰)도 할 것"이라며 "국장님 사모님 사업체(갤러리)에 대해서도 특별(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유 계장이 안 전 국장을 압박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들'은 모두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검찰은 같은 해 11월 안 전 국장의 자택과 부인의 갤러리를 압수수색했고, 안 전 국장을 그림강매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이어 국세청은 지난 1월 안 전 국장을 중앙징계위에 '파면'을 요청했고, 1심 선고공판일이던 6월 4일 '파면'을 확정했다.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 등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해 거액의 세금을 추징했다.

 

사퇴압박에 시달렸던 안 전 국장은 당시 유 계장에게 "저는 한번도 법에 어긋난 짓을 한 적이 없다"며 "확실하고 명확하게 (조사)해서 진짜 문제가 있다면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안 전 국장에게 '비위혐의'가 있다면 조사해서 절차에 따라 징계를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녹취록에 따르면, 국세청은 '비위혐의'를 확인하는 것보다 그의 '자진사퇴'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비위혐의는 그를 사퇴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셈이다. 나중에 국세청에서 안 전 국장에게 국세청 퇴직자들이 주로 맡아온 삼화왕관 사장 자리를 제안한 것도 국세청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허병익 차장이 나가면 누가 차장되나? 실제로 그분 지시를 받고 있다"

 

당시 '결백'을 주장하면서 '사퇴'를 거부한 안 전 국장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자신을 겨눈 표적감찰과 사퇴압박이 누구의 지시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안 전 국장은 당시 유 계장에게 "누구한테 지시를 받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에 유 전 계장은 "(허병익 국세청) 차장님이 사표내는 데 누가 지시를 하겠어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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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6일 취임함 백용호 전 국세청장 ⓒ 유성호

2009년 7월 16일 취임함 백용호 전 국세청장 ⓒ 유성호

두 사람이 만난 시기는 6개월간 지속된 허병익 청장대행체제가 끝나고 '외부인사'인 백용호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새 국세청장으로 내정된 때였다. 허 청장대행이 물러나는 걸 전제하면 사실상 '국세청 서열 1위'는 이현동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이었다. 당시 이 청장은 국세청 차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록에 따르면, 유 계장은 '백용호 내정자가 아니면 누가 지시를 하느냐?'는 안 전 국장의 질문에 "(허병익) 차장님이 나가시면 누가 차장님이 되는가?"라며 "실제로 그분 지시를 받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 분'이란 이현동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을 가리킨다. 실제로 백용호 국세청장이 취임한 직후에 이 서울청장은 국세청 차장으로 승진했다. 전형적인 TK 출신인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국세청 조사국장→서울지방국세청장→국세청 차장'으로 승승장구한 것.

 

유 계장의 '실토'대로 이현동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국세청 본청 감찰관실에 표적감찰과 사퇴압박을 지시했다면 심각한 일이다. 이현동 차장이 월권행위를 통해 인사문제에 개입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한 간부도 "서울지방국세청장이 본청 감찰관실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안 전 국장도 녹취록에서 "그렇게 한다면(이현동 서울지방국세청장의 지시를 받는다면) 이것은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며 "국세청이 아주 심각한 상태로 빠질 수 있는 문제"라고 우려했다. 본청 차장으로 공식 임명되지도 않았는데 국세청장 공백기를 틈타 서울청장이 본청 감사관실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것이 안 전 국장의 판단이었다. 녹취록에 따르면, 유 계장조차도 "사실 우리가 (볼 때도) 그게 참 이상하다"고 말했다.

 

안 전 국장은 지난해 9월~10월께 주호영 현 특임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서울청장으로 근무하던 이현동 현 차장이 당시 인사권이나 본청 감찰을 지휘할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저의 사퇴건을 지휘하였다"며 "(2009년) 9월 들어서는 서울청 조사국을 동원해 사업하는 본인의 친구들을 찾아내어 본인을 설득하게 하는 등 국세청 공조직을 국장 한 사람의 사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안 전 국장은 같은 편지에서 "(2009년) 9월 들어서는 서울청 조사국을 동원해 사업하는 본인의 친구들을 찾아내어 본인을 (사퇴하도록) 설득하게 하는 등 국세청 공조직을 국장 한 사람의 사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동 차장 "내가 본청 감찰을 지휘할 위치에 있지 않다"

 

이현동 차장이 표적감찰과 사퇴압박을 지시했다는 진술은 녹취록 여러 군데에서 나온다.

 

유 계장은 "'법대로 하라'고 어저께 말씀하신 것을 갖다가 (허병익) 차장님께 결재를 내밀었는데 '내가 나가는데 왜 결재를 해서 (안원구) 국장을 적으로 만드느냐, 나는 못하겠다'고 해서 (이현동) 서울청장한테 와서 지시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안 전 국장은 "허병익 차장은 사인(결재)을 안했는데 안(동범) 감찰과장이 이현동 차장 지시를 받고 지금 이렇게 움직인다면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러자 유 계장은 "그분(이현동) 입장은 지시를 했으니까 결과(자진사퇴)를 자꾸 보려고 한다"며 "직접 불러서 지시를 하는데 어떡하냐?"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 전 국장은 "감찰에서 사표를 종용할 일은 아니다"며 "문제가 있으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벌하면 되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이렇게 안 전 국장이 완강하게 사퇴를 거부하자, 유 계장은 "이제는 국장님이 수긍할 때까지 조사하겠다"며 "조사라는 게 그 방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니까 (조사) 하다보면 나오겠지"라고 '협박'에 가까운 압박을 넣기도 했다.

 

이현동 차장은 녹취록에서 '표적감찰-사퇴압박의 배후' 의혹을 일축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또다른 녹취록(2009년 7월 15일)에 따르면, 이 차장은 "감찰이 본청 소속인데 내가 그럴(지휘할) 위치에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자기들 소관사항인데 왜 내 핑계를 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차장은 "내가 그것(사퇴종용)을 했다, 안했다고 설명해줄 건 없다"며 "그것(사퇴여부)은 본인이 편하신 대로 (판단)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안 전 국장이 "이현동 청장이 그런 지시를 안했는데 그렇게 알려졌다면 정말로 심각한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고 따지자, 이 차장은 "그 사람들(감찰)이 왜 내 핑계까지 대가면서 그렇게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누구누구 핑계대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냐?"고 반문했다.

 

"한상률 청장 비판한 김동일 건은 BH에서 강경하니까 그렇게 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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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전 국세청장 ⓒ 국세청

한상률 전 국세청장 ⓒ 국세청

한편, 녹취록에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한 김동일 전 나무세무서 계장의 파면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뉘앙스의 발언도 나와 주목된다. 

 

녹취록에 따르면, 유윤상 계장은 "아까도 김동일건을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BH(청와대)에서 강경하니까 그렇게 안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동일 전 계장은 지난해 한상률 전 청장을 비판한 글을 내부통신망에 올려 6월 12일 파면됐다. 하지만 파면된 지 한달이 지난 8월 24일 경찰은 광주지방국세청장이 제기한 명예훼손사건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 계장의 발언을 헤아릴 때 청와대에서 압력을 넣어 김 전 계장을 무리하게 파면시켰을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안원구 #이현동 #국세청 #표적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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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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