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한상률 퇴임식'에 참석 못했나

[집중취재-국세청의 '표적감찰' 의혹①] 안원구 전 국장 사퇴 압박과 표적감찰의 전말

등록 2010.08.01 19:07수정 2010.08.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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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건물. 국세청은 안원구 전 국장을 사퇴시키기 위해 '표적감찰'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2009년 1월 19일. 이날 국세청에서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의 퇴임식이 열렸다. 한 청장의 퇴임은 사실 '불명예 퇴진'이었다. 2008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골프를 치고, 이 대통령의 동서인 신기옥씨와 저녁식사를 한 사실이 드러난 데 이어 2009년 1월 '학동마을 그림로비 의혹'까지 터져 나오고서야 사퇴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날 퇴임식에는 본청과 서울·중부지방국세청의 과장급 이상 간부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국장급 간부'인 안원구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퇴임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안 국장이 출근 직후 국세청 감찰팀 직원들에 의해 본청 감찰실로 강제 연행됐기 때문이다.

"정상 출근을 하던 저를 감찰직원 4명이 사무실에 갑자기 들이닥쳐 강제로 연행했다. 강력히 항의해보았으나 무위였다. 4명 중 2명은 마치 범인을 체포하듯 저의 양쪽 팔을 꽉 붙잡았고, 나머지 2명은 저를 앞뒤에서 끌고 잡아당겨 국세청 본청 감찰실로 연행해갔다." (안원구 전 국장이 주호영 특임장관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감찰팀 직원들은 안 국장이 외부와 통화하지 못하도록 핸드폰도 빼앗았고, 화장실도 동행했다. 안 국장이 이렇게 11시간 동안 감금돼 있는 동안, 또다른 감찰직원들은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와 미술품을 거래한 C건설에도 들이닥쳤다. 감찰직원들은 C건설쪽에 '미술품 강매 확인서'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안 국장의 부인이 남편의 국세청 직위를 이용해 미술품을 거래처에 강제로 팔았다"고 보고 사실확인서를 요구한 것. 

지난 2009년 11월 안 국장은 미술품 강매 혐의 등으로 검찰에 구속됐다. 하지만 지난 6월 1심 재판에서 국세청이 표적감찰을 통해 노렸던 '미술품 강매로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국세청의 무리수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면 왜 국세청은 안 전 국장을 '불법 감금'하고, 무리하게 민간기업까지 협박하며 안 국장의 비리를 캐려 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난 2년여간 진행되어온 '사퇴 압박'과 '표적감찰'의 실상을 들여다봐야 한다.

"청와대에서 지난 정부 사람이라고 사표 내라고 한다"


안 전 국장은 1960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 영신고와 경북대를 졸업하고 198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15년간 대구지방국세청에 근무했다. 전형적인 대구·경북(TK)출신인 셈이다. 그런 점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과 안면을 트고 지낼 수 있었다.  

안 전 국장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인 2007년 12월부터 한상률 전 청장과 인연을 맺었다. 안 전 국장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파견자로 내정돼 있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도 고려됐지만, 현 정부의 핵심축인 TK출신이고, 이명박 대통령 핵심 참모인 주호영 현 특임장관의 추천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은 한 전 청장의 '요청'으로 인수위 파견을 접었다. 그를 대신해 이현동 현 국세청 차장이 인수위에 파견됐다. 이 차장도 TK출신(경북 청도)이다. 같은 TK출신인 안 전 국장과 이 차장이 '내부경쟁관계'였다는 것이 국세청 안팎의 시각이었다.  

한 전 청장과 안 전 국장은 2007년 12월부터 2008년 3월까지 서울에서 서너 번 정도 만났다. 한 전 청장은 안 국장에게 "인수위에 들어가지 말고 청에 남아서 나를 도와 달라"며 "안 청장을 국세청 차장으로 중용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안 국장은 "선배들이 많이 있는데 차장으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그렇지 않아도 기수(행시 26회)에 비해 빨리 가고 있는데 차장으로 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완곡하게 거절했다.

또한 한 전 청장은 "이상득 의원을 찾아가 내가 이명박 정부에서 유임될 수 있도록 말씀을 잘 드려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안 전 국장은 이 의원을 의원회관으로 두 차례나 찾아가 "한 청장이 유임할 수 있도록 인사를 잘 챙겨 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한 전 청장은 안 전 국장에게 국세청 차장 중용을 제안하면서 "정권 실세에게 갖다 줄 10억원을 만들어야 하는데 내가 7억원을 마련할 테니 안 청장은 3억원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은 한 전 청장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으로 권력이 넘어간 뒤 '국세청장 교체설'이 나돌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됐던 한 전 청장은 유임됐다. 유임이 확정된 2008년 3월 말, 안 전 국장은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발령 났다.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대구지방국세청장'에 비하면 직책상 두세 단계 아래였다. 절차상의 문제는 없었지만 '좌천성 인사'의 성격이 짙었다.

한 전 청장은 안 전 국장을 불러 "기수에 비해 너무 빨리 승진했으니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달랬다.

문제는 2008년 가을께부터 일어났다. 한 전 청장은 "청와대에서 안 국장이 지난 정부 사람이니 사표를 내라고 한다"며 사퇴를 종용했다. 당시 청와대 안팎에서는 안 전 국장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강철 전 수석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이에 안 전 국장은 "제가 대구 출신인데 어떻게 지난 정부 사람이라는 말이냐"며 "이강철 전 수석과 친분관계도 없다"고 따졌다. 하지만 한 전 청장은 "청와대에서 워낙 강경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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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9월 22일 오후 국세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에서 이주성 당시 청장(오른쪽)이 전군표 차장(왼쪽), 한상률 조사국 국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주성 전 청장(15대)과 전군표 전 청장(16대)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었으며, 한상률 전 청장(17대)은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청탁 명목으로 값비싼 그림을 상납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국세청장에서 사퇴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 권우성


"안원구 국장이 대구청장 시절 MB 뒷조사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안 전 국장은 자신의 인맥인 TK출신 인사들을 상대로 구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부 인사들은 한 전 청장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해서 '사표 종용'을 만류하기도 했다.

이런 구명운동 덕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한 전 청장이 "한고비 넘겼다"며 사퇴 종용을 철회할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12월께, 한 전 청장은 안 국장을 불러 "안 나가면 교육을 보내겠다"며 "국내교육과 해외교육 중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한 전 청장이 '교육파견'을 권유한 근거는 안 전 국장의 인사고과 성적(성과평가-근무성적 평가)가 'D등급'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D등급을 통보한 뒤 1주일 후에 성적이 A등급으로 수정됐다. 이와 관련, 안 전 국장은 자신을 '파견' 보내기 위해 성적이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해외교육 조건을 갖추지 못한 안 전 국장을 미국 국세청 파견교육 대상자로 내정했다. 국내교육을 원했던 안 전 국장의 뜻과도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미국 국세청 파견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1월 한 전 청장을 둘러싸고 '학동마을 그림로비' 의혹과 '경주골프회동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사퇴를 거부하던 한 전 청장은 결국 1월 15일 사퇴의사를 밝혔고, 1월 19일 국세청장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기나긴 허병익 국세청 차장의 청장대행체제가 시작됐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안 전 국장을 사퇴시키기 위한 시도는 2008년 가을부터 있었다. 한 전 청장이 안 전 국장에게 직접 사퇴를 종용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한 전 청장의 지시를 받은 감사관실에서는 안 국장 주변을 은밀하게 내사했다. 내사 대상은 안 전 국장의 가족과 사업하는 친구들,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와 거래업체들, 부인의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체 등이었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을 대상으로 한 국세청 본청 감찰팀의 감찰활동은 '허병익 대행체제'에서 본격화되었다. 한 전 청장의 퇴임식이 열리던 날, 감찰팀 직원들이 안 전 국장을 11시간 감금한 사실은 본격적인 감찰활동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같은 날 안 전 국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와 거래했던 민간기업에도 감찰직원들이 들이닥쳤다.

한 전 청장을 사퇴시킨 '학동마을 그림로비 의혹 사건'이 터진 이후 국세청 안에서는 안 전 국장을 이 사건의 배후 기획자로 지목했다. 한 전 청장이 '학동마을' 그림을 전군표 전 청장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외부에 흘려 국세청 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것.

하지만 안 전 국장은 "전군표 전 청장 부인이 제 집사람이 화랑을 운영하는 것을 알고 그림('학동마을')을 팔아 달라고 한 것이 전부"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을 향한 사퇴 압박은 멈추지 않았다. '사퇴해야 할 이유'만 달라졌다.

2009년 5월~6월께 감찰팀의 한 간부가 안 전 국장을 찾아와 명퇴신청서를 내밀었다. 안 전 국장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 간부는 "안 국장님이 대구청장 시절에 MB 관련 뒷조사를 하였고, 이전 정부 사람으로 분류돼 있어 다른 방법이 없다"며 "이번 6월말까지 명퇴 신청을 하시면 모양새가 좋지 않겠느냐?"고 명퇴를 권유했다.

이에 안 전 국장은 "나는 대통령의 뒷조사를 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당선되는 데 도움을 줬으면 뒀지 뒷조사를 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건' 은폐해줬는데도 나가라?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 ⓒ 오마이뉴스

이어 안 전 국장은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최대 논란이 됐던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 아주 민감한 내용을 이 간부에게 털어놓았다. 

"대구지방국세청장 시절인 2007년 7월~8월께 포스코건설을 상대로 정기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도곡동 땅'에 대한 내용의 문건을 우연히 발견했다는 보고를 직원들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당시 그 내용은 대선을 앞두고 매우 민감한 사안이었다. 그 문건은 포스코건설이 내부적으로 작성한 것인데, 문건을 본 순간 매우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이 실시했던 정기세무조사의 본질과 관련이 없었다. 또 공무원이 공무상 취득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경우 엄청난 정치적 풍파가 일어날 것으로 판단해 담당직원들에게 철저한 보안 유지를 지시했다. 이 일은 결과적으로 당시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안 전 국장은 "(지난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나를 자꾸 전 정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며 "이는 잘못 알려진 내용이니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 간부는 "그게 사실이라면 안 국장님에 대한 오해가 풀릴 수도 있으니 감찰직원을 대구로 내려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국세청은 감찰직원을 대구로 내려보내 2007년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당시 대구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을 지냈던 장승우 세무사를 면담했다. 감찰팀은 장 세무사를 대상으로 한 면담을 통해 안 전 국장의 증언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장 세무사는 감찰직원에게 "당시 최종책임자였던 안원구 청장이 조사국장과 실무 담당자에게 보안 유지를 지시했고, 조사대상인 회사조차 모르게 문건내용을 덮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확인된 내용은 문서로 정리돼 국세청 고위간부와 청와대 민정라인에도 보고됐다.

감찰팀의 간부는 "장승우 전 국장을 만나 확인했더니 안 전 국장의 증언은 사실이었다"며 "장 전 국장과 면담한 내용을 녹취해 허병익 청장대행에게 보고했고 허 차장이 그걸 들고 민정수석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가 "이제 오해가 풀릴 것"이라고 안 전 국장을 달랬지만, 이상하게도 상황은 역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안 전 국장이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건'을 봤다는 사실이 사퇴 압박의 재료로 활용됐다. "안 국장이 도곡동 땅 문건을 무기로 현 정부와 맞서려고 한다"며 더 강한 사퇴 압력이 들어온 것. 특히 2009년 9월 장승우 전 조사국장이 서울에 올라와 안 전 국장에게 전한 내용은 국세청이 그를 사퇴시키기 위해 얼마나 혈안이 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6월 국세청 감찰이 저를 찾아와 몇 가지를 물어봤다. 그런데 사실과 다른 내용의 확인서를 써 달라고 했다. 감찰직원이 하는 말이 '안 국장이 대구청장 시절에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된 도곡동 땅에 대한 내용을 덮으려고 한 사실이 없다는 확인서를 써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감찰직원에게 '관련보고를 받은 안 청장은 정색을 하며 모든 것은 자신이 책임지겠다, 절대 보안을 지켜라, 도곡동 땅은 정기세무조사와 관련이 없다는 지시를 했다'고 설명해주었다."

안 전 국장은 "제가 도곡동 땅 문건을 이용해 정부에 대항하려 한다는 가정이 성립되려면 그 문건을 보관하고 있거나 또는 이 사실을 야당 등 외부에 알리려는 시도를 했어야 한다"며 "제가 나쁜 짓을 했다면 그만두어도 벌써 그만두었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거래처 사장들 "국세청 감찰이 '그림 강매 확인서' 써 달라고 했다"

2009년 7월 16일 청장대행을 하던 허병익 국세청 차장이 퇴임하고 백용호 국세청장이 취임했다. '4대 권력기관'이라는 국세청의 수장이 6개월 만에 임명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 일각에서는 이렇게 공백기가 길었던 것은 안 전 국장 사퇴를 둘러싸고 일어난 국세청 내부의 권력암투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한편 국세청 내 TK출신의 대표주자로 부상한 이현동 서울국세청장이 국세청 차장으로 부임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 와중에 국세청은 2009년 7월~8월께 전현직 간부들을 통해, 퇴임한 국세청 간부들이 주로 가는 삼화왕관 사장 자리를 주겠다고 회유했다. 하지만 안 전 국장은 "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와 관련, 안 전 국장은 "저와 관련된 주변사람들에게 온갖 협박을 가해도 특별한 도덕적, 법적 문제가 나오지 않자 제게 기업 사장 자리를 제시하며 사퇴를 유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세청은 안 전 국장을 상대로 한 표적감찰을 진행하는 동시에 그의 부인과 거래해온 민간기업들에도 압박을 가했다. 감찰팀 직원들이 '안 국장이 직위를 이용해 그림을 강매했다'는 확인서를 써 달라고 요구한 것. 이들 기업들은 "국세청 감찰에서 안 국장과 관련해 그림 강매 확인서를 써 달라고 한다"며 "만약 협조하지 않으면 특별세무조사를 할 수도 있고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겁을 준다"고 증언했다.

안 전 국장은 "국세청 감찰이 민간기업을 상대로 특별세무조사를 운운하며 압박을 가하여 거짓진술을 요구하는 것은 맹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다.

안 전 국장은 "국세청 감찰은 거래처로부터 확인서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 협박과 회유를 자행했다"며 "9개월이 넘게 협박과 회유가 계속되자 거래처 사장들이 제 부인에게 '국가가 나서서 나가라고 하는데 억울하더라도 죄 없이 피해 보는 사업자를 위해 사퇴해줄 수 없느냐'고 하소연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표적감찰-거래처 압박'이라는 '채찍'도, '삼화왕관 사장'이라는 '당근'도 안 전 국장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지난 2009년 11월 2일 검찰은 '첩보로 인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안 전 국장의 자택과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를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같은해 11월 18일 새벽 안 전 국장은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에서 전격 체포됐고, 이틀 후(11월 20일) 안 전 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사실들이 있다. 먼저 '검찰의 수사가 어떻게 시작됐을까' 하는 점이다. 안 전 국장측은 국세청이 표적감찰을 통해 안 전 국장을 사퇴시키려고 하다 실패하자 감찰결과를 통째로 검찰에 넘겼다고 보고 있다. 안 전 국장측은 "지난 2009년 1월 19일 한상률 청장 퇴임식 때 안 전 국장을 감금한 뒤 A4용지에 타이핑된 비리 혐의를 보여주었는데 이것은 검찰에서 기소한 공소사실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안 전 국장이 구속되기 4개월 전인 2009년 7월께 감찰팀의 한 간부는 안 전 국장에게 "우리가 파악한 대로 중앙징계위에 징계도 올리고 검찰에도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검찰이 2009년 12월 8일 안 전 국장을 구속기소할 때 혐의를 추가했다는 사실이다. 애초 미술품 강매 혐의로 안 전 국장을 옭아매려고 했던 검찰은 구속기소할 때 '뇌물수수 혐의'를 추가했다. 그런데 지난 6월 1심 재판에서는 주요한 공소사실인 '미술품 강매 혐의'에는 무죄가, 나중에 추가한 공소사실인 '뇌물수수'에는 유죄가 선고됐다. 이를 두고 무리한 국세청의 표적감찰과 검찰 수사가 부른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월간조선>이 지난해 9월 작성한 '단독취재-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국세청 탈법행위' 기사.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보도되지 못한 이 기사에는 국세청의 '안원구 표적감찰' 내용이 상세하게 실려 있다. ⓒ 오마이뉴스


지난해 작성된 <월간조선> 기사는 왜 보도되지 않았나?

의문은 왜 국세청이 이렇게 무리하면서 안 전 국장에게 사퇴를 압박하고, 그의 비리 혐의를 캐기 위해 부인의 거래처들까지 압박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 현재까지 드러난 이유는 ▲안 전 국장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전 정부 사람'이었다 ▲대구지방국세청장 시절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MB)' 문건을 입수했다는 정도다. 여기에다 국세청 내 '차세대 TK주자'를 놓고 이현동 차장과 안 전 국장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암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국세청이 왜 무리한 감찰활동을 했는지는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안 전 국장도 "평생을 국세공무원으로 살아온 제가 친정집으로부터 이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데 대해 억장이 무너진다"며 "왜 저를 내쫓으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다만 안 전 국장이 알고 지내던 현 정권 인사들에게도 구명운동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퇴 압박'과 '표적감찰'이 계속됐다는 점은 '보이지 않는 더 큰 권력'이 작동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세청쪽에서는 "안 전 국장의 비리 혐의가 있어 감찰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세청 감찰팀이 그의 비리혐의를 '사실'로 확인했다면 굳이 감찰내용을 검찰에 넘길 이유도 없었고, 특히 '삼화왕관 사장' 자리를 제안할 이유도 없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안 전 국장을 상대로 감찰활동을 벌였던 전직 간부는 "감찰팀은 항시 고위공직자들을 감찰하는데 안 전 국장의 경우 혐의가 커서 감찰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며 "안 전 국장이 조사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부인의 갤러리가 커졌다"고 해명했다.

그는 "안 전 국장이 그림을 강매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자리를 이용해 그림을 강매했다고 볼 수 있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많이 그림을 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법원에서 그림 강매 혐의에 무죄로 판단했다면 할 말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안 전 국장측은 "2005년 12월에 첫 전시를 열고 2006년에 그림을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국세청이 문제 삼은 2006년부터 매출이 생겼다"며 "또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판매된 그림도 국세청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 많지 않다"고 반박했다.

현재 안 전 국장과 관련해서는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백승헌 전 민변 회장과 조광희 변호사가 안 전 국장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항소심에서 국세청의 '표적감찰' 문제도 제기할 계획이다. 특히 민주당 등 야당은 오는 10월 정기국정감사에서 관련내용을 추궁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는 지난해 9월 '단독취재-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국세청의 탈법행위'라는 제목의 기사(A4 용지 19쪽)를 작성했다. 국세청이 안 전 국장을 상대로 집요한 사퇴 압박을 가했으며, 그의 비리 혐의를 캐기 위해 부인의 거래업체들도 압박했다는 내용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이는 <오마이뉴스>가 지난 수개월간 추적해온 것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 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

백 기자는 이 기사에서 "필자가 놀란 대목은 국세청을 개혁하겠다며 취임한 백용호號의 국세청이 안 국장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G화랑과 그림을 구매한 여러 민간기업을 내사하고 특별세무조사를 운운하며 협박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법에 따라 움직여야 할 국세청이 내부 인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기업체에 위력을 가한다면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특히 백 기자는 기사 말미에서 "국세청은 20년 넘게 보지도 못했던 필자의 고향 선배(현직 세무공무원)를 통해 기사를 막으려고 했다"며 "국세청의 한 과장은 '<월간조선>에 기사가 나가면 안 국장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월간조선>에도 좋을 게 없다'고 했다"고 썼다. 그는 이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언의 협박이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의 '안원구 표적감찰'과 관련된 상황일지

▲2007년 7월-8월 대구지방국세청, 포스코건설 정기세무조사 /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MB) 문건' 입수 후 은폐
▲2007년 12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대통령 당선

▲2008년 1월-2월 한상률 국세청장, 안원구 대구지방국세청장을 통해 '유임청탁' 로비
▲2008년 3월 한상률 국세청장 유임 결정
▲2008년 3월말 안원구 대구지방국세청장,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발령

▲2008년 가을 한상률 국세청장, "청와대가 전 정부 사람으로 생각" 사퇴 종용 / 감사관실, 안원구 국장 주변 내사
▲2008년 12월 한상률 국세청장,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골프회동 / 이명박 대통령 동서인 신기옥씨와 저녁식사(일명 경주골프-저녁회동사건)

▲2009년 1월 한상률 국세청장의 '학동마을 그림로비사건' 터짐
▲2009년 1월 19일 한상률 국세청장 퇴임 / 감찰팀, 11시간 불법감금
▲2009년 1월-9월 국세청 감찰팀, 부인 거래업체들에 '그림강매 사실확인서' 작성 요구

▲2009년 1월 21일 미국 국세청 교육파견 대상자로 발령
▲2009년 5월 국세청, "청와대에서 MB 뒷조사한 사람으로 분류" 명예퇴직 권유
▲2009년 6월 국세청 감찰팀, 장승우 전 대구지방국세청 조사국장과 면담해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 문건' 관련내용 사실로 확인

▲2009년 7월 16일 백용호 국세청장 취임
▲2009년 7월-8월 국세청, '삼화왕관 사장' 자리 제안했으나 '거부'
▲2009년 9월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단독취재-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국세청 탈법행위' 기사 작성했으나 '보도 불발'

▲2009년 11월 2일 검찰, 자택과 가인갤러리 압수수색
▲2009년 11월 18일 검찰,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이 입주한 건물에서 전격 체포
2009년 11월 20일 검찰, '미술품 강매 혐의'로 구속
▲2009년 12월 8일 검찰, '미술품 강매 혐의'에다 '뇌물 수수 혐의' 추가해 구속기소

▲2010년 1월 국세청, 중앙징계위에 징계('파면') 요청
▲2010년 2월 23일 중앙징계위, 징계 보류

▲2010년 6월 4일 1심 선고, 7가지 공소사실 중 5개의 주요 공소사실에는 '무죄', 2개의 추가 공소사실에는 '유죄'(징역 2년과 추징금 4억원) / 중앙징계위, '파면' 징계 확정‧통보
▲2010년 7월 14일 항소심 재판 시작

#안원구 #국세청 #표적감찰 #한상률 #허병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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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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