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밥인겨..."

밥을 하늘로 여기고 살아가신 갑사 내원암 송 보살님 영전에 부쳐

등록 2007.06.15 11:33수정 2007.06.1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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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암 공양주 '송 보살님', 송기순 할머니를 찍어 드린 사진이 나홀로 보는 영정사진이 되고 말았다. ⓒ 송성영

올봄 '송 보살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 드렸다. 할머니는 사진을 찍으면서 새색시처럼 쑥스러워했다. 여기저기 방향을 틀어 가며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웃어 보세유, 에이 참, 환하게 웃어 보시랑께, 할머니가 무슨 새색시유."
"에이참, 뭔 놈의 사진을 그러케 많이 찍어유?"
"혹시 알아유? 할머니 돌아가실 때 영전 사진이 될지…."


그 말이 씨가 된 것일까? 그 사진들이 나 홀로 보는 영정 사진이 되고 말았다. 오늘(15일) 아침 송 보살 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일 년 열두 달 특별한 날은 제외하고 늘 절집에 머물러 있던 할머니였는데, 요 며칠 가족들이 있는 집에 머물다가 돌아가셨다.

송 보살, 송기순 할머니는 갑사 내원암에서 공양주 보살로 10여 년을 생활하셨다. 절집을 들락거리는 온갖 사람들에게 밥을 해 먹이셨다. 그냥 할 일 없이 머리 식히러 온 사람, 뭔가 간곡하게 빌러 오는 사람, 부부 싸움하고 온 사람, 사업 번창하게 해 달고 손바닥 비비는 사람,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부조리한 세상과 싸우다가 지쳐 쉬러 온 사회운동가들도 있었다. 송 보살 할머니는 그 모든 사람을 가리지 않고 절밥을 해 먹였다.

나도 먹었다. 아내도 우리 집 아이들도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을 수없이 받아먹었다. 아이들을 위해 누룽지까지 챙겨주시던 송 보살 할머니, 떠나보낼 때는 부처님 공양전에 올렸던 떡이며 과일이며 제물들까지 챙겨줬다. 사람이 먹지 못할 음식은 따로 골라 닭이며 개들을 위해 챙겨주시곤 했다.

송 보살님은 고집불통이셨다. 대부분 공양주 보살님들은 절집에서 월급을 받고 밥을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송 보살 할머니는 부처님 모시는 일인데 무슨 돈이냐며 한사코 월급을 받지 않았다. 내원암을 오가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호랑이 할머니였다. 공밥 먹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질 않았다. 풀을 뽑게 하든지 장작을 패게 하든 어떤 일이든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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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에게는 호랑이 보살님이기도 했다. ⓒ 송성영

꼬박꼬박 절밥이나 챙겨 먹고 허튼 생각, 허튼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내쳤다.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절집에 들어와 공부하지 않는 스님들 역시 할머니의 성화에 견디지 못해 스스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염불은 물론이고 법문은 엄두도 못 냈지만 그냥 툭툭 던지는 말이 염불이고 법문이었다.

"나는 배운 게 없어 잘 모르지만 밥이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밥인겨…."

절집에는 스님들이 있다. 공양주 보살님들이 있다. 스님들은 공양주 보살님들의 밥을 먹는다. 어떤 스님네들이 부처님 말을 빌려 보시행을 한다지만 공양주 보살님들은 밥으로 보시행을 한다.

공양주 보살님들에게 밥은 부처님이다. 하늘이다. 밥을 하늘로 여기듯이 사람을 하늘로 여긴다. 부처님으로 여긴다. 꼬박꼬박 부처님 공양전 챙기듯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밥을 챙겨준다.

송 보살님도 그랬다. 쌀 한 톨 허투루 하지 않았다. 밥을 하늘처럼 여기면서 그렇게 한 세상을 살다 돌아가셨다. 스님들처럼 야단법석 다비장도 없다. 그냥 평범하게 장례식장에 모셨다.

올봄에 찍어 드렸던 영정 사진이 떠올라 장례식장 유족들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 편하게 돌아 가셨죠…."
"어젯밤에 몸이 피곤하시다더니 새벽에 편하게 돌아가셨어요."
"영정 사진은요?"
"그냥 집에 있는 거 모셨어요."


그제야 나는 컴퓨터에 입력되어 있던 송 보살 할머니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꺼내 본다. 수십 장 중에 쓸만한 사진이 별로 없다. 하지만 송 보살 할머니는 사진 속에서 웃고 계신다. 환하게 웃고 계신다. "뭘 자꾸 찍어유, 인저 고만 찍어유" 하는 것만 같다.

또 어떤 사진은 환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공양 안 하셨쥬, 밥 안 먹었으면 얼릉 들어와 밥 먹어유, 내 금방 채려 줄게."

밥도 먹지 않았는데 꾸역꾸역 목이 멘다.
#송기순 할머니 #갑사 #송 보살님 #공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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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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