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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듣기 등록 2020.07.27 13:02 수정 2020.07.27 13:02
두 번에 걸쳐 제가 사는 싱가포르의 공공아파트 HDB에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 싱가포르 전체 가구의 80%가 공공주택이며, 3억대 아파트를 살 때 실제로 필요한 현금은 2천만 원도 안 된다는 내용에 많은 이들이 댓글로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호기심을 나타냈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해 중과세를 하는 싱가포르의 사례는 한국에서도 검토의 대상입니다.

[관련기사]
설계부터 다르다... 싱가포르에서 부동산 투기 못하는 이유(http://omn.kr/1o8pd)
방 3개 아파트를 1720만원에... 여기선 참 쉽습니다(http://omn.kr/1o8az)

한국의 집값 문제는 싱가포르의 독특한 주택정책에 대한 기사에 7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만큼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댓글을 하나하나 읽다보니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대한 오해도 좀 있는 것 같고, HDB에 대해 추가로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 관련 댓글과 함께 좀 더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①] 공공아파트 HDB는 수준이 낮다?
 

싱가포르 HDB가 "한국인 입장에서 살수 없을 정도의 열악한 곳"이라는 댓글이 가장 많았습니다. ⓒ 네이버 댓글 갈무리


많은 분들이 HDB의 수준이 낮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싱가포르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주택개발청이 만들어진 게 1960년입니다. 초기에는 주택보급률을 올리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수준은 민간아파트(이하 콘도)에 비해 많이 낮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비슷비슷한 구조에 주방이나 화장실 등의 시설도 구식입니다. 방음도 잘 안 되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도 있고, 건물 전체의 마감도 투박하여 아무래도 오래 전에 지어진 곳은 한국인의 눈에 차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 주택개발청은 그런 오래된 HDB를 그냥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주택개발청의 재단장 프로그램(HIP: Home Improvement Program)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새로 추가하고 화장실도 개조해주는 등 주기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하여 주거 환경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재단장 프로그램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에 지어진 대부분의 HDB는 민간업체가 건설한 콘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 이봉렬

 
2000년 이후에 분양을 한 HDB는 서울 시내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그런 수준입니다. 계단식 고층 건물에 주차 공간도 충분하고, 단지마다 크고 작은 공원을 조성해서 상당히 쾌적합니다. 사람마다 기대하는 수준이 달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댓글에 언급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이 못 살 그런 수준은 아닙니다. 전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질문 ②] 집값 비싸기로 싱가포르가 세계 상위권 아니었던가?
 

싱가포르의 비싼 집값에 대한 지적입니다. 민간업체가 공급하는 콘도는 지적한 것처럼 상당히 비쌉니다. 하지만 주택의 80%를 차지하는 HDB는 그 사정이 다릅니다. ⓒ 네이버 댓글 갈무리

 
싱가포르의 주택은 공공아파트인 HDB 80%, 콘도와 단독주택 20%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내 혹은 고급주택단지에 있는 콘도의 경우 100억이 넘는 것도 많습니다. 휴양지인 센토사섬에는 댓글에 언급한 400억짜리 콘도도 있습니다. 시 외곽의 평범한 콘도도 20억은 우습게 넘으니까 콘도 가격만 보면 싱가포르 집값이 비싸다는 건 맞습니다.
 

싱가포르 금융사이트 Singsaver가 조사한 2020년 싱가포르 주택의 평균 거래 가격입니다. 같은 크기라도 HDB와 콘도의 가격이 다섯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 Singsaver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우리가 내집 마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집들은 그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싱가포르에서 내집 마련에 큰 부담이 없는 까닭은 화려한 사양은 아닐지라도 실수요자들을 위해 품질 좋은 HDB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렴한 HDB가 전체 가구의 80%니까 대다수의 국민들이 집 걱정을 안 할 수 있는 겁니다.

[질문 ③]  월세가 500만원?
 

월 500만원에 이르는 싱가포르의 월세에 대한 지적입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월세는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 네이버 댓글 갈무리

 
앞에서 이야기 한 콘도에는 HDB에 없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단지에 울타리가 쳐져 있고, 경비원이 별도로 있어서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합니다. 수영장, 헬스장, 테니스장 등의 운동시설, 행사가 필요할 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형 다용도실, 바비큐 시설 등 각종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도 상당히 고급스럽습니다. 그만큼 가격이 비싸고 임대료도 높습니다. 시내 기준으로 월세 500만 원은 저렴한 쪽에 속합니다.
 

민간업체가 지은 평범한 콘도의 모습입니다. 경비가 외부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수영장, 헬스장, 테니스장 등 각종 편의 시설이 있습니다. 물론 비쌉니다. ⓒ 이근화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라 외국인들도 많이 삽니다. 고액 연봉자가 많습니다. 몇 년 살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경우에 임대를 많이 하는데, 주로 시설이 좋은 콘도를 선택합니다. 매매가 수십 억짜리 콘도의 임대료가 수백만 원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싱가포르에 와서 비싼 임대료 내고 콘도에 사는 한국인들이 싱가포르의 집값과 임대료가 비싸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싱가포르 사람들은 HDB가 있기 때문에 집값에 대해 그리 많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겁니다.

한편 아직 집을 장만하지 않은 싱가포르 젊은이들에게 이 비싼 임대료는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집을 마련할 때까지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젊은이들을 위해 결혼을 하기 전에도 서류를 미리 제출하면 신혼부부로 인정해서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질문 ④]  땅이 국가 소유니까 공산주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라고 하니 당장 "공산주의"라는 댓글이 상당히 많습니다. 토지공개념을 적극 적용했다고 해서 공산주의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 네이버 댓글 갈무리

 
싱가포르는 선거를 통해 구성된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민주주의 공화국이자, 극심한 빈부격차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독립 이후 집권여당인 인민행동당의 일당 독재가 이어져 오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얼마 전 치러진 총선에서 야당이 나름 약진하는 등 구조적으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권력 이동이 가능한 나라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1966년 토지수용법을 제정한 이후 국토의 80% 가량을 국유화하였습니다. 공산주의보다는 토지공개념을 일찍 도입하고 적극적으로 적용했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인 HDB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나머지 20%는 민간의 소유입니다. 민간이 소유한 땅에 짓는 콘도에 대해서는 재산권을 인정하고 자유로운 거래를 인정합니다.
 

새로 조성된 HDB단지입니다. 왼쪽에 전철역, 오른쪽에 학교가 있고 그 앞엔 아직 개발하기 전인 정부의 땅입니다. 대부분의 땅이 정부의 소유라 계획에 따라 주거단지 개발하기가 쉽습니다. ⓒ 이봉렬

 
HDB의 경우 임대기간이 99년이 지나면 주택개발청으로 소유권이 넘어 갑니다. 하지만 99년이 되기 전에 새로운 집으로 옮기게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선택적재개발제도(Sers: Selective Enbloc Redevelopment Scheme) 때문입니다. 주택개발청이 주체가 되어 오래된 HDB단지를 전체적으로 재개발을 하는 제도인데, 여기에 해당이 되면 HDB를 시중가로 매도하고 재개발 후 재입주하게 됩니다.

정부 주도의 재개발 이외에도 거주자의 동의 하에 정부가 보상금을 주고 오래된 아파트를 반납 받는 재개발 제도(Vers: Voluntary Early Redevelopment Scheme)의 도입도 예고된 상태입니다. 이처럼 땅이 국가의 소유이긴 하지만 99년이라는 임대 기간은 충분히 길 뿐더러 그동안에도 주거안정을 위한 정부의 보완 대책은 꾸준히 마련되고 있어서, 실제로 내 집에 살면서 임대한 땅에서 산다는 걸 체감하기는 어렵습니다.

[질문 ⑤] 집값 걱정 없으니 삶의 질이 좋겠네
 

집값이 안정되고 내집 마련에 대해 걱정을 안해도 되면 삶의 질이 올라 간다는 지적, 정부관게자가 이런 댓글을 보길 바랍니다. ⓒ 네이버 댓글 갈무리

 
이것도 반만 맞습니다. 집값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그만큼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월급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닌데 물가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나라라 그렇게까지 여유롭지는 못합니다.

싱가포르 국민들이 선망하는 3C가 있습니다. 콘도(Condo), 골프장 회원권(Country Club), 자동차(Car)입니다. 그 중에서 콘도는 워낙 비싸고 골프장 회원권은 취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나머지 하나인 자동차에 대한 선망이 더 강합니다.
 

차값만 1억 가까이 합니다. 여기에 세금을 내고 10년짜리 운행허가증을 사려면 차값만큼 더 필요합니다. ⓒ 이봉렬

 
그래서 우리가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처럼 여기선 차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경우가 많습니다.  싱가포르는 땅이 좁아서 자동차 대수를 엄격히 관리합니다. 자동차 자체에 대한 세금이 높을 뿐 아니라, 자동차를 타기 위해 별도의 10년짜리 허가증을 사야 하는데 그게 자동차 값만큼 합니다. 평범한 중형차 하나를 사는데도 1억 원이 훌쩍 넘습니다.

[질문 ⑥] 서민용 아파트라고 너무 작은 것만 있는 것 아닌가?
 

선택할 수 있는 게 46㎡, 55㎡ 둘 뿐이면 큰 집을 원하는 이들에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공주택일수록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 네이버 댓글 갈무리

 
댓글에서 지적한 대로 신혼희망타운의 경우 집 크기가 작은 게 문제입니다. 면적이 46㎡, 55㎡ 두 가지입니다. 신혼부부가 살기에는 적당할지 몰라도 가족이 많아지면 작을 수도 있습니다. 더 넓은 집을 원하는 가구도 분명 있을 겁니다.

HDB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크기와 종류가 있습니다. 스튜디오라고 부르는 원룸형부터 5룸플랫이라 부르는 111㎡ 크기까지 있습니다. 크기뿐만 아니라 구조도 다양하여 취향에 맞춰 선택이 가능합니다.

콘도와 같은 고급 아파트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EC(Executive Condominium)도 있습니다. 이곳에는 기존 콘도가 가지고 있는 수영장이나 운동시설 등의 고급 사양들이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HDB의 고급 버전인 EC (Executive Condominium) 모습입니다. 콘도와 다를 것 없는 시설에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걸 분양 받는 건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 이봉렬

 
EC를 분양받을 때 정부의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민간 콘도에 비해 가격은 저렴합니다. 대신 땅을 주택공급청에서 공급하고 건물을 민간업체에 맡기는 형식이라 일반 HDB처럼 엄격한 자격심사를 통해 분양을 하고 재판매에도 일정한 제약이 있습니다. EC를 분양받았다고 하면 여기서는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서민을 위해 제공하는 공공주택에 산다는 사실로 인해 무시를 받거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공주택이라서 가격 대비 품질도 좋고 살기도 좋다는 인식이 생겨야 합니다. 그래야 공공주택 정책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질문 ⑦] 700여개 댓글 중 감사드리고픈 댓글
 

두 기사에 700개 넘는 댓글이 있어서 좋은 댓글도 나쁜 댓글도 있습니다.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고 합니다. 다들 감사합니다. ⓒ 네이버 댓글 갈무리

 
기사에 좋은 댓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댓글이 또 다른 기사를 만드는 힘이 되어 줍니다. 앞으로도 댓글 다 챙겨 읽고 필요한 경우 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악플도 보이네요. 특히 "그곳이 좋으면 그곳에 가서 살라"는 식의 댓글은 앞으로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싱가포르에서 15년째 살고 있으면서 이곳 소식을 기사로 씁니다. 특히 "들어가서 한번 살아봐라, 한달 버티면 내가 1억 주마"라고 했던 "ille****"님은 "1억" 약속 지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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