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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노벨상 로비 논란 - 이회창씨께 노벨상을!(0)
  진중권 2002.10.13 08:52 조회 0 찬성 6 반대 0
노벨상 로비 논란

진중권 기자 mkyoko@chollian.net

이 모든 것이 '뉴스위크' 지의 폭로(?)로 일어났다. 이 좋은 기회를 한나라당에서 놓칠 리 없다. 정치판에 난리가 났다. 하긴, 의원들을 비행기 태워 보내 노벨상 수상 반대 로비까지 하던 당이 아니던가. 듣자 하니 '뉴스위크' 한국판에서는 아예 표지를 그 사건(?)으로 도배하려다, 뒤늦게 문제가 발견되어 이미 인쇄된 표지들을 폐기하고 새로 찍었다고 한다. 당연히 표지를 바꾼 게 청와대 측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는 루머도 빠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문제가 된 '뉴스위크' 한국판은 중앙일보와 관련이 있는 회사라 한다. 그 동네 기자들의 징그러운 당파성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그 동네의 저속한 센세이셔널리즘 역시 밥 벌어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노하우에 속하니, 생존권 보호의 차원에서 건드리지 말기로 하자. 다만 한 가지, 이 얘기는 해 두고 싶다. '대한민국 기자들, 되게 할 일 없나 보다.'

명색이 '뉴스위크'면 꽤 권위 있는 정론지. 그 잡지의 표지기사가 기껏 최규선 문건이란다. 그런 걸 기삿거리로, 그것도 무슨 특종이나 되는 것처럼 내거는 매체는 지하철 가판대에 넝마처럼 걸린 괴상한 주간 신문들 밖에 없을 게다. 오죽 했으면 그걸로 정치공세를 펴던 한나라당마저 분위기 살피다가 슬쩍 '자중' 모드로 스위치했겠는가? 한 마디로 그 기사의 격조는 한나라당 정치꾼들의 품격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

재미있는 것은 중앙일보의 태도다. 논설위원이 사설이란 것을 올렸는데, 아무리 읽어도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도대체 노벨상 로비 논란을 벌이는 게 옳다는 얘긴지, 그르다는 얘긴지. 논설위원님, 횡설수설하지 말고 분명히 말씀해 보세요. 기껏 기자가 되어서 사실확인도 제대로 안 된 가십성 기사를 무슨 특종이나 되는 것처럼 올려놓고,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이 그 걸로 그러잖아도 더러운 판에 흙탕물이나 일으키는 게 잘하는 짓입니까? 아니면 닭짓인지요?

그 억지를 억지로 말되게 하려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 사안을 느닷없이 4천억원 대북지원 루머와 엮어서 소설을 쓴다. 대북 4천억 밀거래를 한 정권이라면 노벨상 로비도 할 수 있다, 이런 얘기일까? 아니면 대북 4천억 밀거래 의혹을 받는 정권이라면 노벨상 로비 의혹을 받아 싸다는 얘기일까? 논설위원 어린이들, 한번 설명 좀 해 보세요. 최규선의 문건과 현대의 4천억 지원설 사이에 도대체 무슨 논리적 연관이 있으며, 무슨 인과관계가 있나요?

저질 기사에 딱 어울리는 저질 사설. 대학교육까지 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분들이 왜 이렇게 망가지는 걸까? 간단하다. 그게 다 '사랑' 때문이다. 사랑의 신 큐피드는 종종 눈에 안대를 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랑은 맹목적이라는 얘기다. 실로 사랑은 종종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지나칠 경우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통 이성을 잃게 만든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향한 사랑의 정이라고 예외겠는가?

러브 콜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키스를 받은 이회창 후보 본인도 남세스러웠던 모양이다. 노벨상 로비 의혹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단다. 그 바탕에는 국민들 사이에서 '이웃 나라에서는 노벨상을 타서 축제 분위기가 벌어졌는데, 이곳에서는 기껏 이미 탄 노벨상을 취소시키지 못해 안달이 났다'는 얘기가 나올까 하는 대선용 우려가 깔려 있을 게다. 게다가 노벨상 수상을 저지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방해공작을 폈던 한나라당의 전과를, 혹시 국민들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으면 어쩌겠는가?

그러고 보니 독일에 유학을 하던 시절에 겪었던 일이 기억난다. 아르바이트로 가끔 한국 여행자들의 안내원을 하곤 했는데, 그때 가장 난처했던 게 약품을 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독일에서는 의사의 처방전 없이는 약을 살 수가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막무가내다. 아예 그걸 믿지를 않는다. "아니, 돈을 주겠다는데 왜 약을 안 팔어? 그 사람들도 돈 벌려고 약 파는 거 아니야? 그러지 말고, 얘기라도 한번 해 봐." 마지 못해 안 될 것 뻔히 알면서 처방전 없이 약국에 들어가서 돈 줄테니 약 팔라고 얘기해야 하는 그 곤혹스러움과 그 창피함...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노벨상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돈 들여 로비를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어디 알프레드 노벨의 재단이 돈 벌려고 그 상을 만들었던가? 그게 아니라 돈을 쓰려고 그 상을 제정해서 운영하는 거다. 물론 모든 일을 '로비'와 '검은 돈'으로 처리하는 버릇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그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얘기하지만 노벨상은 최규선이 시켜서 로비한다고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최규선 문건은 그냥 가십으로 다루었어야 할 사안이다.

이번 해프닝은 아마도 전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가능한 일일 게다. 이런 게 진지하게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한 마디로 국제망신, 그것도 개망신이다. 아마도 외국인들이 이 사실을 알면 뭐라 그럴까?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까? '도대체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길래 그 국민들이 노벨상도 돈 주고 살 수 있다고 믿는 걸까? 그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사나 보지?'

대한민국 정치를 보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웬 놈의 나라가 노벨상을 타와도 욕을 하는 건지. 이번에 사고를 친 기자는 정말 '최규선의 로비를 통해 노벨상을 탈 있다'고 믿는 걸까? 그럴 리 없을 게다. 그게 터무니 없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저러는 거다. 빌어먹을 정도로 낙후된 한국의 정치환경에서는 이 가십성 기사도 얼마든지 진지한 정치적 사안으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저 짓들을 하는 거다.

어쨌든 말 나온 김에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제안 하나 하자. 김대중의 노벨상은 최규선이 로비를 해서 받은 것이라 치자. 그러므로 그것은 없었던 것으로 치고, 이 참에 김대중보다 학벌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백 배는 더 뛰어나시고, 정의의 화신인 사법부에서 대쪽 판사라는 말을 들으셨던 우리의 이회창 후보께서, 내년치 노벨 평화상을 받아오는 거다.

솔직히 김대중 같은 자도 받는 노벨상, 고매하신 이회창 후보께서 뭐가 모자라서 못 받겠는가? 얼굴이 못 생겼는가? 안기부 돈을 1100억을 끄집어 써고 좋고, 국세청을 통해 로비자금을 모금해도 좋고, 정보통 정형근 의원을 로비스트로 활용해도 좋으니, 이회창 후보께서는 내년에 우리 국민을 위해 김대중 같은 자도 받는 그 노벨상이란 물건이나 하나 사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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