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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대구시민여러분, 그리고 이 시간에도 정말 민주당경선 성공을 위해 참여해주신 국민선거인단 여러분, 당원여러분 반갑습니다.

가볼까 말까 망설인 분도 많겠지만 여러분이 우리 민주당의 운명과 한국정치를 바꾸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림 민주당을 사랑하는 당원 시민여러분, 지난 2년 동안 정말 속 많이 상했습니다. 맨날 조사해도 이회창 1위, 이인제 2위, 노무현 3위였습니다.

정권 바뀐다는 거 아니었습니까. 패배주의에 힘이 빠져서 2년을 보냈는데 우리가 이기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우리가 이깁니다.

대구도 딱 붙었습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우리가 이깁니다
우리는 지금 본선에서 이길 후보를 뽑는 겁니다. 민주당은 재집권해야 합니다. 개혁해야 합니다. 동서화합해야 합니다. 남북대화 성공시키기 위해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이기는 후보를 뽑아야 합니다.

검증 받겠습니다. 그 동안 보안사, 안기부 검증 다 받았습니다. 자식은 93년 군대 보내서 95년에 제대했습니다. 흑색선전으로는 노무현 주저앉히지 못합니다. 저는 자신감, 비전 다 있습니다. 더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안심하고 지지해 주십시오.

이곳에서도 여야가 경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좋은 정치 1번지 종로 버리고 부산으로 돌아갔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영남에서는 저와 함께 고생하고 좌절한 고통받은 위원장들과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뜻을 가지고 하는 정치라면 민주당을 영남에서 당선시켜 전국정당으로 만드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되면 대구경북에서 오는 6월 지자체 선거에서 우리 당 후보가 많이 당선됩니다. 그리고 오는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 2004년 총선에서 여기 있는 지구당 위원장들이 금배지 답니다. 여러분이 이기는 겁니다.

분열은 극복해야 합니다. 동과 서가 반목하고 있고 정치인들은 지역감정을 부추겨 당선되는 망국적인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화합하는 국회, 정책대결하는 국회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번에는 동서화합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저는 동서화합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몇 번씩 낙선했어도 고향을 지켰습니다. 마침내 광주에서 저를 지지해줬고 전국에서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이 바람이 한국정치를 바꾸고 있습니다.

92년 대선이 끝났을 때 영남은 환호했지만 호남은 조용했습니다. 97년 대선에서는 호남은 환호했지만 영남은 시큰둥했습니다. 2002년 대통령선거 개표 때는 전국에서 환호하고 박수치도록 합시다. 그렇게 통합하는 나라를 만들어봅시다.

저는 실패한 경험이 많은 정치인입니다. 시험도 여러 번 떨어졌고 선거도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이 실패경험을 갖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과 함께 하는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노동자, 서민들과 함께 해왔습니다. 그 때문에 색깔공세를 받고 있으나 저는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제 과거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노사화합의 기수가 되겠습니다.

98년 현대자동차 파업 때 일주일간 입을 옷을 싸들고 가서 파업을 중재했습니다. 그래서 파업타결이 됐습니다. 대우자동차 때도 노동자 설득했습니다. 계란을 맞기도 했지만 적극 나섰습니다. 경제가 잘되기 위해서는 노사가 화합해야 합니다.

지방화 정책 성공시키겠습니다. 모든 게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대구가 어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지방전문가들과 함께 지방자치연구소 만들어 연구해왔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행정권력 지방에 이관해 지방도 중앙과 함께 번영하는 시대 만들겠습니다. 그 때 대구시민들은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 많이 내 주십시오. 저는 중앙에서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민주당 경선이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근거 없는 소문, 낡고 낡은 색깔론 판치고 있습니다. 도저히 같은 당에서 할 수 없는 주장들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참겠습니다.

제게는 잘나지는 않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좌익 운동하다 옥사하셨습니다. 그 기간동안 고생이 오죽했겠습니까. 홀어머니 아래서 살다가 몇 년 뒤에 한 남자를 알게됐습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 남자는 고등고시공부를 했습니다. 고시에 합격하면 판사가 돼야하는데 좌익 활동하다 죽은 장인이 있으면 판사임용이 안 되는 연좌제였기 때문에 저희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게 죄입니까.

판사임용을 받을 때 저희 장모는 딸 때문에 사위앞길 망칠까봐 가슴을 조이면서 신원조회 잘 해달라고 지서로, 파출소로 쫓아다녔습니다. 나는 얼굴 한 번 못보고, 인사 한 번 못한 장인 때문에 제 앞길이 막힌다면 그 얼마나 억울한 일 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혼인신고를 했습니다. 하고 떳떳하게 맞섰습니다. 판사 못해도 좋다, 나는 인간답게 살겠다, 이렇게 결단 내렸습니다.

다행히 돌아가신 분은 문제삼지 않는다는 은혜인지, 관용인지 그런 무엇 때문에 저는 판사임용을 받아 제 아내가 저희 집안에서 죄인이 되는 것은 겨우 면했습니다만, 그러나 평생동안 가슴에 한을 묻고 살아온 제 아내가 이제 또 다시 제 아버지 일로 눈물을 흘려야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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