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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분 좋은 일이다"

10월 13일 오후 6시 10분 광화문 사거리, "펑! 펑!" 키 높은 빌딩사이로 오색 빛깔 폭죽이 터지면서 전광판에 선명히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이라고 새겨졌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전광판을 바라보며 한마디씩 했다.
"정말 탔네? 정말 탔어."
"우리나라에서 처음 탔으니 국가적 경사가 아닌가? 이런 저런 말도 많았지만 어쨌거나 이제 탔으니까 그만큼의 역할이 뒷받침 됐으면 좋겠다."

급히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려던 성경도(53,회사원)씨는 "여론에서 0순위라고 해서 탈 줄 알았다"면서 "대통령이 상에 연연한다느니 돈과 로비가 오고갔다느니 말이 많았지만 일단 상을 탔으니 기분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소식을 듣자마자 "하면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는 김영희(34,회사원) 씨는 "개인적으로는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치적으로 말이 많았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를 따라 지하철 안으로 내려갔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를 만났다. 그들은 두 패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김 대통령이 돈을 많이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 더 쓰기 전에 빨리 타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장구만(19, 학생)군의 주장에 황광식(23, 학생)씨가 맞받았다.
"예전부터 민주운동을 많이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경제회복이라든가 통일분위기 조성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했다.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논쟁을 벌이는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받기 전에는 반응이 반반이었다. 그러나 일단 받았다고 하니까 기분은 좋다. 우리나라 최초아닌가? 새로운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도 받을 때쯤 됐다."

김윤기(37, 공무원) 씨는 "노벨평화상 타 놓고서 다시 전쟁하는 국가도 있다"며 "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 높이 평가된 만큼 앞으로 더욱 잘 하라는 의미의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서 1평 남짓한 만물상을 운영하시는 허욱(69) 씨는 "우리 국민이 축하할 일"이라며 "한민족, 한국인이 처음 받은 상이며 노벨상 중에서도 평화상이라는 큰 상을 받은 것은 우리 국민의 최고의 영광이다"라고 흥분했다.

어둠이 제법 짙게 깔리면서 거리에 더욱 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길가에 불을 켜든 포장마차에도 손님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네 명의 회사원들이 막 소주와 닭발을 시켜 놓았다. 김동희(44, 회사원) 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사라고 하지 않을 사람 있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왕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하고 공동수상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그들은 비록 적대국으로 북한을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 민족적 차원에서 보면 그게 더 큰 경사가 아니었겠는가?"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민들은 대부분 기자의 질문에 "국가적 경사", "반가운 소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소식은 그리 중요한 관심거리는 아닌 듯 싶었다. " 아무 생각 없다"고 답변하는 시민도 상당히 많았다.

돌아오면서 만났던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의 마지막 말이 내내 잊혀지지 않는다.
"테레비하고 정치하는 사람들만 떠드는 잔치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유식한 사람들한테나 물어봐야지. 우리같은 사람하고 뭐 상관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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