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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친일작가들이 문학적 업적으로만 우리 문학사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자랑스런 전북의 인물로 추앙 받을 자격이 있는가?"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미당 서정주, 백릉 채만식이 지난 광복절 친일문학인으로 지목된데 이어 최근에는 고향 전북에서 또 다시 친일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역사의 심판대에 올랐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친일문학가로 지목된 인사의 기념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서 '전북의 역사인물'에 대한 친일논쟁에 불씨를 당겼다. 이 과정에서 기념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예산지원이 취소되고 기념행사가 보류돼 각 시·군의 특정 인물의 기념사업과 기념행사 또는 지원이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적지 않은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친일논쟁의 발단은 지난 9월 10일 전북시민연대가 발표한 '채만식 100주년 기념행사를 규탄한다'는 성명서로 시작돼 미당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시문학제'로 이어졌으며 '전북의 역사인물'에 대한 계속적인 친일행각 규명의사를 밝혀 친일논쟁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채만식에 대한 친일논쟁은 전북시민연대의 성명서와 이에 대한 군산시 문화원 관계자의 언론 반박 인터뷰, 한국문인협회 군산지부와 채만식 100주년 기념사업회 반박 성명이 오가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북시민연대는 처음 성명서에서 "채만식은 친일문학 42인중 한 사람으로서 '홍대하옵신 성은'과 일제 만주침략과정을 미화한 '추모되는 지린태 대위의 자폭' 등 13편의 친일작품이 있다"며 "일제에 저항했던 군산시에도 부합되지 않으며 후세에 업적을 홍보하고 미화할 이유가 없다"고 기념사업 중단을 촉구했다.

또 "친일작가에 대한 부각은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욕보이며 우리의 민족혼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채만식은 독립운동을 위해 앞장서야 할 지식인으로서 민중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사람이었으나 변절하여 일제에 적극 협조하고 해방후 반성문 하나 달랑 남긴 것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군산시 문화원 관계자는 "채만식 선생에 대한 사상 검증은 이미 오래 전에 마무리된 상태"라며 "일부의 작품을 두고 친일 행각을 벌였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문인협회 군산지부와 채만식 100주년 기념사업회도 10월 12일 성명서를 통해 친일논쟁을 확대시켰다.

"해방전에 이르기까지 일제의 강압에 의해 쓰여진 10여편의 글은 작품이라기 보다도 잡문형식의 글로서 발표된 바 있다. 그러나 채만식 선생은 그를 반성하고 1948년에 '민족의 죄인'이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민족 앞에, 역사 앞에 사죄하였던 양심적인 작가이다. …문학의 재평가 작업은 문학인의 몫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 어쨌든 식민지 시대에 부끄럽게 살았던 자기 생활을 반성하고 민족 앞에 용서를 빌었던 양심적인 채만식 선생의 숭고한 문학정신을 더 이상 흐트려 놓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전북시민연대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채만식의 친일작품 목록과 행각을 제시하며 문인협회 군사지부와 기념사업회 성명을 일축했다.

"채만식은 무려 13편의 친일작품을 남겼다. 더구나 1943년에 쓴 '홍대하옵신 성은'에서 채만식은 '8월 1일로 뜻깊고 감격 큰 조선의 징병제도는 마침내 실시되었다. 이로써 조선땅 2천 4백만의 백성도 누구나가 다 총을 잡고 전선에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방패가 될 자격이 생인 것이다. 조선동포에 나리옵신 일시동인(一視同人)의 성은 홍대무변 하오심을 오직 황공하여 마지아니할 따름이다. 2천 4백만 누구 감읍치 아니할 자 있으리요'라고 씀으로써 일본을 찬양하고 감히 징병제도를 설득하는 것이다"

여기에 채만식의 친일행각까지 밝히며 친일문학자로 단정한다.

"1938년 독서회 사건으로 검거되자 채만식은 친일문인 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에 가담한다는 전제로 전향하므로써 1942년 12월에는 이석훈, 이무영, 정인택, 정비석 등과 함께 일본군의 만주전선을 시찰하기도 했다."

전북시민연대는 "채만식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유족들이나 혹은 문학에 뜻이 있는 추종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군산시에서 친일작품으로 민중을 선동했던 친일파를 우리 고장의 문화인물이라고 해서 기념사업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다.

당초 군산시는 이 기념행사에 8300여만원의 예산을 반영하려 했다가 4천여만원으로 줄여 예산부족의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채만식에 대한 친일논쟁이 불거지자 군산시 의회가 기념사업비 예산 4300만원을 전액 삭감해 전북시민연대의 손을 들어 줘 '우리고장의 인물'에 대한 재평가 작업에 단초를 마련하게 됐다.

친일논쟁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확산됐다. 미당 서정주 2주기를 앞두고 작년 완공된 '미당시문학관' 건립일에 맞춰 한국문인협회 고창지부가 '미당시문학제'를 개최키로 하고 '미당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칭)' 창립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전북시민연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10월 17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북도와 고창군, 고창교육청 등에 행정기관 차원에서의 지원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전북시민연대는 서정주에 대해 "친일논쟁조차 벌일 수 없는 완벽한 친일론자이다. 징병제도가 발표되는 것을 보고 쓴 숱한 친일적인 글 속에는 외부로부터 강요가 아닌 자발성을 골격으로 한 것이며 그 속에는 나름대로의 자기 논리가 명백하다. 더구나 독재로 민중을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하려했던 이승만, 전두환 독재정권에 대한 예찬 또한 아끼지 않은 하늘을 우러르기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존재"라고 규정하며 '미당시문학제'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문인협회로부터 학생 동원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고창교육청에 "그의 빛나는 글솜씨보다 일제 징병제도 때 그릇된 역사관으로 인해 굴린 펜대가 얼마나 많은 청년들의 모숨을 앗아갔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무조건 학생을 동원해준다면 고창교육청의 역사의식을 의심할 일이며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외면하게 함으로써 비교육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문인협회 고창지부는 '미당시문학제' 당초 계획을 취소하고 보류해 논쟁을 피한 상태이다. 문인협회 고창지부 진기동 지부장은 "행사의 당초 취지가 왜곡돼 행사 강행시 오히려 미당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고 고창군민에게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판단돼 행사를 보류키로 했다"고 밝혔다. 진 지부장은 또 서정주의 친일논쟁에 대해 "이미 누구나가 잘 알고 있는 것 아니냐"며 "미당의 독보적인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과거에 대한 평가는 덮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산시의회의 채만식 기념사업에 대한 예산삭감과 '미당시문학제' 보류로 친일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미당시문학제는 11월말 고창예술제에 포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전북시민연대는 군산시 채만식기념문학관과 고창군 미당시문학관 등의 관리 운영에 지원되는 지자체 인력과 예산 문제까지 거론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친일논쟁이 그동안 그 고장을 대표하는 인물을 선정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역사적인 평가는 물론 주민들의 의견 수렴절차 없이 특정인이나 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는 점에서 앞으로 파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도내에 있는 대표적인 기념관이나 기념사업들이 대부분 친일행적으로 시비를 낳고 있는 인물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란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채만식과 서정주의 친일논쟁은 '전북의 인물'에 대한 재평가와 역사 인식 전환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전북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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