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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좀 쑥스럽긴 하지만 남에게 해가 되는 이야기도 아니고 해서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며칠 전 제가 받은 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지난 오월 조직개편이 되면서 팀장이 바뀌었습니다. 새 팀장의 팀 운영방침 중 하나가 '칭찬과 격려하는 팀 문화' 였고 그에 따라 매달 팀 내에서 우수사원을 선정해 포상하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지난 달 우수사원 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제가 선정이 되어 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상 받을 일을 한 게 뭐가 있나 싶어 생각을 해 보았지만 뾰족하게 떠 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생각치도 못한 상을 받으니 기분만은 좋았습니다.

프린터로 뽑은 상장이 코팅까지 되어 있었고, 5만원짜리 상품권도 하나 부상으로 끼워져 있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시상이 끝난 뒤 동료들은 '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느니 하는 농담을 건네면서도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고, 전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음료수를 돌렸습니다.

제가 받은 이 상은 상이라고는 해도 몇 안 되는 팀원 중에서 매달 3명씩 선정해 수상하는 것이라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고, 또 회사차원에서 주는 것이 아니고 팀 자체적으로 제정한 상이라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아닙니다. 팀 내에서 서로 부담 없이 격려해주기 위한 요식행위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상이 매월 진행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팀원 모두가 상 하나쯤은 다 받게 되겠지요.

상장과 상품권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아내에게는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세 달에 한 번 그것도 단 한 명만 받을 수 있는 수상하기 아주 어려운 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상을 받은 게 좋은지, 아니면 부상으로 나온 상품권이 좋은지는 몰라도 마냥 신나는 표정이었습니다. 아내에게 제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음을(설령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이야기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던지요.

덕분에 그날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외식을 했고, 돌아오는 길에 평소 비싸다고 잘 사주지 못했던 과일 푸딩도 몇 개 사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기도 했습니다. 별 것 아닌 상 하나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기분 좋은 하루를 선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동료 중 하나가 저의 수상을 두고 평소 일도 못하면서 팀장에게 잘 보여서 혹은 팀장에게 명절 때 뇌물을 갖다바쳐서 상을 받은 것이라고 소문을 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 저희 집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그 상은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누구나 받게 되는 별 것 아닌 상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또 어떻게 될까요?

상 받았다고 외식까지 한 저희 가족은 웃음거리가 되고, 팀장은 사원들의 사기진작은커녕 분란의 원인만 되는 그 상을 없애버릴 테고 다른 팀과 회사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그런 소문을 낸 동료와는 아마 두고두고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지내게 될 겁니다. 다행히 동료들 가운데 누구도 저의 수상에 시비를 거는 이는 없었습니다.

동료나 친구의 좋은 일에 칭찬과 격려를 나누고 함께 기뻐하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정치권이나 언론처럼 권력에 목을 메는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한 로비계획'이란 게 어느 주간지에 보도가 되면서 대한민국이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 주간지의 모기업인 중앙일보마저 팩트가 부족하다며 작게 축소해 보도한 그 소식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는 바람에 온 국민의 시선을 끌었고, 이에 한나라당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진상을 밝히라며 떠들어댔습니다.

창피해서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일이라면 뭐든지 물어 뜯으려는 두 신문사는 그렇다치더라도 이른바 집권야당이라는 한나라당이 노벨상에 흠집을 내지 못해 안달인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공약과는 달리 노동자 탄압에 앞장을 서는 모습에 등을 돌렸었지만 그래도 그가 이른바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간 화해·평화를 정착시키고 그 결과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저 역시 온 국민과 함께 기뻐했었습니다. 광화문의 어느 서점 입구에 수년간 비어 있던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 자리에 김대중 대통령의 사진이 걸리는 모습을 보며 감격해하기도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은 김대중 개인의 몫이 아니라 그의 햇볕정책에 힘을 보태고 함께 노력한 우리 국민 모두의 몫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스러운 상에 '특혜'니 '로비'니 하는 말로 먹칠을 하고 '자진 반납' 운운하는 것은 김대중 개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를 욕하는 것이며 이 나라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언론사의 입맛에 따라, 오로지 집권을 위한 당리당략에 따라 국가의 명예와 이익마저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그들의 행위에 분노를 넘어선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그들이 이 나라의 일등신문을 자처하고 있으며, 국회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집권야당이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라는 것이 수치스럽습니다.

국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이야기해줄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 함께 사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길 짓은 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노벨상을 받아 오지는 못하더라도 거기에 침을 뱉지는 말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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