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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 김산호
"미래세계 서기 2100년, 정의의 용사 라이파이가 가슴에 'ㄹ'자를 달고 선글래스와 흰 두건을 쓴 채 우주선 제비호에서 내려온다. 우주의 침략자로부터 지구를 구해내기 위해서다. 그의 곁에는 아름다운 제비양이 있고 지구의 평화는 라이파이에게 맡겨진다..."

1959년,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로 한국최초 SF만화시리즈를 탄생시킨 만화가 김산호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와 함께가 아니라 단군에서부터 조선 순종까지 한민족의 조상 105명과 함께다.

그는 4년여 동안 만주 화전자와 용인 포곡에 위치한 작업실을 오가며 한국 105대 천황의 모습을 담은 작품 125점을 완성했다. 105대 천황은 한인 7대, 한웅 18대, 단군 47대, 그리고 부여의 해모수 단군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포함한다.

그가 125점의 그림을 담은 '한국 105대 천황존영집'의 출간과 동시에 서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 미술관에서 '단군의 힘, 통일의 그날까지-한국105대 천황전'을 9월 10일까지 전시한다.

▲ 김산호 화백
ⓒ 배을선
작가 김산호는 서양의 아담과 이브, 아브라함, 중국의 신농, 복희, 이집트의 파라오 왕조는 믿으면서, 우리 민족의 단군성조를 위시한 47분의 단군님들의 역사적 사실은 전설로 붙이고 그 전설마저 의심하는 왜곡된 역사를 살리기 위해 105대 천황들의 모습을 유채로 이미지화했다. 그는 복잡한 이해와 설명대신, "내가 그린 우리 민족 천황들의 그림은 서양화가들이 그리스 신화 주인공을 그린 것과 같은 것"이라 쉽게 설명한다.

뜨거웠던 월드컵 6월 붉은 악마의 모습을 했던 치우천황을 비롯 전설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민족의 천황들에게 확연한 이미지를 부여한 김산호. 신문로에 위치했던 집에서 태어나 현 한국일보 주차장터의 집에서 자랐다는, 그래서 광화문이 너무나 친숙하다는 그를 광화문 어느 커피숍에서 만났다.

- 처음 만화를 그리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처음 내가 그린 것은 극장 그림과 극장 간판 그림이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극장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만화책을 접하게 되었다. '수퍼맨'과 '스파이더맨' 등의 만화책을 보고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는, 한국을 상징하는 만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미국의 '수퍼맨'에 대적할 한국의 '라이파이'를 창조한 것이다. '수퍼맨'의 가슴에 'S'가 새겨져 있듯이 '라이파이'의 가슴에는 'ㄹ'이 새겨져 있다.

그때 이런 만화를 그리게 된 것은 순전히 애국심이 목적이었던 것 같다. 한국을 상징하는 '라이파이'가 전세계의 불의를 위해 싸운다는 줄거리의 이 만화는 한국 최초의 SF였고, '정의의 사자'라는 표현도 이때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만화는 씩씩한 남성을 대변한다. 정의를 수호하고 민족을 보호하려는 남성. 그래서 현재 나이 오십줄에 들어선 몇몇 남성들로부터 내 만화를 보고 열심히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만난 대우의 한 상무는 '라이파이'이야기를 꺼내면서 씩씩한 청년기를 보냈다고 했고, 대덕단지에 있는 한 과학자는 '라이파이'를 보고 과학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말했다."

▲ 시조단군
ⓒ 김산호
- 갑자기 미국으로 떠났다. 도미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 시절 공식적인 도미 이유는 '선진만화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였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라이파이'가 인민해방군과 싸우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게 붉은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안기부로부터 1주일간 조사를 받았다. 그때부터 검열도 시작되었는데 나는 예술을 검열하는 것을 부정한다. 현재도 영화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의 제한상영가 등급판정이 일종의 사전검열이라며 시끄러운 것 같던데, 예술성이란 것은 보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튼 안기부로부터 조사를 받은 후 창작의 자유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 것이다. 몇 십 년이 흘러 서울애니메이션 센터와 우체국 등에서 내 그림을 전시하고 우표에 사용한다고 해서 서울애니메이션 센터 주변을 방문했는데, 그 자리가 옛 안기부 터였다. 나를 조사한 안기부 옛터에서 내 만화 원판을 전시한다고 하니 기분이 묘하더라."

- 미국에서도 작가생활을 했나?
"뉴욕으로 가서 처음부터 작가생활을 했다. 다른 이민자들에 비하면 힘들지 않은 도미생활을 한 편이다. 찰튼 코믹스(Charlton Comics)라는 미국의 3대 만화출판사에서 일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 이후 사업도 했다. 패션 비즈니스, 잠수함 등등. 현재 사이판에 있는 관광잠수함과 제주도에 있는 잠수함 모두 내가 설계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나의 만화의 이미지에서 나왔다. '라이파이'에서 주인공이 삐삐 비슷한 것을 차고 다니고 로켓벨트도 하고 나온다. 몇몇 친구들은 그때 특허를 냈으면 정말 부자가 되었을 거라고 농담도 한다. 피츠버그의 한 미식축구경기에서도 한 남자가 로켓을 달고 올랐다 떨어진 적이 있다. 몇 십년 전 내가 상상한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로 이루어진다. 상상은 공짜다. 내가 상상했던 것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다."

▲ 금관가야 시조 뇌실청예 김수로칸
ⓒ 김산호
- 언제부터 역대천황 및 한국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미국에는 유태인들이 많다보니 그들과 함께 일을 많이 했다. 국기에 '유니온 잭'이 있으면 영국연방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태극기에 들어있는 음양(인양)기는 중국의 속국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동양철학이나 역사를 전공한 서양인들은 잘 알고 있다. 태극기는 구한말 급하게 제작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서양인들 중에는 한국을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쯤으로, 혹은 백년 전 독립한 조그만 나라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지금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월드컵 이후로 더 제대로 인식되고는 있지만 한국을 모르는 서양인들과 미국에 있는 한인 2세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또 사업상 일본과 중국을 오가면서 한국사람들이 생각하고 배운 한국역사가 일본, 중국인들이 인식하고 있는 한국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례로 만리장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가? 만리장성은 만리장성을 쌓은 그 곳까지가 중국의 땅이라는 것을 알리는 테두리, 즉 담이다. 이것은 고구려와 발해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은 담으로 만주 땅이 원래 중국의 땅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데 한국인들은 만주가 중국땅이라고 생각한다.

청나라시대 고구려 영토인 만주의 수도는 봉천(奉天)이었다. 이것은 하늘을 모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이 중국의 영토로 속하면서 심양(沈陽)으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심양이란 태양을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결국 고구려 땅이었던 봉천을 중국이 소유하면서 고구려의 기운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양으로 부르는 것이다."

▲ 전시중인 경복궁역 미술관
ⓒ 배을선
- 역사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다. 미국에 있으면서 역사공부를 할 자료가 충분했나?
"미국, 일본, 중국을 다니면서 더 풍부한 자료를 얻었다. 한국에는 너무 제한된 자료가 있다. 오히려 일본 중국의 역사책을 통해 제대로 된 역사와 한민족의 넓은 기상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 책과 자료, 문헌을 통해 역사를 공부하고 천황들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자료로 그림을 그리냐고 하겠지만, 화가들에게는 무에서 유의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능력이 있다."

- 솔거가 그린 단군의 그림은 당신이 그린 단군과 무척 다르다.
"다르다. 그리고 내가 그린 단군이 한민족의 기상에 더 맞다. 솔거가 그린 단군의 그림은 솔거가 꿈에서 본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 모습은 신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아시아를 주름잡았던 단군의 이미지가 신선같은 모습이었을 리 없다. 한민족은 말을 타고 다니던 기마족이다. 씩씩한 단군의 모습은 신선이 아니다. 그리고 단군은 한 명이 아니라 47명이다. 솔거가 그린 단군은 어떤 단군인지 모르겠다. 나는 47명 단군의 모습을 다 그려야 했다."

▲ 단군성모 웅녀 황비
ⓒ 김산호
- 어렸을 적 학교에서 배운 단군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내세운 단군 한 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과 동사강목의 기록을 보면 '단군은 배달국의 임검(임금)으로 그 나라의 임검들은 모두 단군이라 한다'는 설명이 있다. 단군을 신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단군은 신이 아니다. 신격화된 천황일 뿐이다.

천황의 의미를 알기 위해 설명하자면, 우리나라는 고려 때까지 제국이었으나 조선에 들어와 왕국, 즉 Kingdom이 되었다. 이성계가 조선을 만들면서 한민족을 스스로 낮추어 중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왕이 될 수 있는 중국의 속국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조선조말 고종황제가 독립하면서 독립문을 세우고 대한제국이라 칭했다. 대한제국은 Kingdom이 아니라 Empire다. 그리고 황제는 King이 아니라 Emperor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정책으로 대한제국은 오래 가지 못했다.

천황은 황제와 마찬가지로 영어로는 같은 Emperor로 해석되지만 약간 다르다. 정치를 하고 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떠나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가 더 크다. 단군이란 임금으로 백성을 다스리지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의 명령을 받는다는 의미가 크다."

▲ 월드컵 붉은 악마로 기억되는 배달한국 제14세 치우한웅
ⓒ 김산호
- 4년 동안 완성한 그림 125점은 예술적인 면도 있지만 교육적인 면도 크다. 후에 어떻게 전시를 할 셈인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세우고 황제로 등극할 때 현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에 환구단을 만들고 거기서 황제 선서식을 했다. 이 자리는 명자리로 하늘의 위임을 받고 백성을 다스린다는 약속을 한 곳이다.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환구단을 없애버렸다. 일본과 중국에는 우리의 환구단과 같은 천단이 여전히 존재한다. 일본은 아직도 천황이 있고, 중국은 없지만 천단은 여전히 존재하고 거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게 있다.

우리가 우리 천황들의 역사를 인정한다면 환구단을 다시 세워야 한다. 중국에는 2층짜리 천단이 있다. 우리는 9층으로 세워야 한다. 9는 가장 높은 숫자이다. 천단이 세워지면 그 곳에 박물관을 만들고 내 그림들을 전시해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후세대들에게 우리의 뿌리, 우리의 바른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내 꿈이다."

- 웹사이트가 있나?
"www.damool.net 이 나의 웹사이트다. '다물'이란 고구려시대의 고어로서 '영토회복', '광복'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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