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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언론인들의 촌지수수·향응접대·이권개입 등을 감시하고 비판해 왔으며 이러한 언론인들에게 매서운 회초리를 들겠다고 독자들에게 선언한 바 있다. 특히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고 정치인의 시녀로 전락한 언론인이나 타락한 언론인에 대해서는 명단을 공개키로 약속했다.

지역의 일부 주재기자들의 촌지수수, 향응접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지만 여전히 자정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계는 시민들의 빗발치는 비난여론과 지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행위들을 수십 년 관행화된 '사례'로 치부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특히 언론인간의 묵인과 담합은 언론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으며 이 때문에 자정노력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이번 순천지역 일부 주재기자들의 호화판 술자리 사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누군가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면 거듭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로 판단된다. 따라서 <오마이뉴스>는 언론개혁 차원에서 살을 베는 아픔을 각오하며 문제의 언론인의 명단과 비리내용을 공개한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사안이 한국언론계, 특히 지역언론의 구조적인 바탕에서 비롯됐다고 파악하고 실태 고발에 이어 각계 의견, 대안 모색 등을 묶어 총3회(천-지-인)에 걸쳐 기획보도할 예정이다.<편집자 주>


▲호화판 술자리가 벌어진 문제의 요릿집. ⓒ 오마이뉴스 조경국

지난 4월 17일 순천농협 10대 조합장으로 취임한 채대홍(60) 씨는 최근 지역 언론인들과 함께 한 황당한 술자리와 거액의 술값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채씨는 그 같은 술자리를 기억도 하고 싶지도,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며 불쾌한 감정을 흘리면서도 애써 사실을 감췄다.

채씨는 도대체 어떤 술자리를 가졌기에 불쾌해 할까? 그리고 왜 바가지 술값을 내고도 이 사실을 극구 덮으려 할까?

채씨는 농협 이사 2명과 함께 지난 5월 29일 전남 순천의 고급 요릿집인 M 한정식집에서 방송사 기자를 비롯해 광주에 본사를 둔 지방일간지 순천 주재기자 등 9명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는 이들 외에도 순천 주재기자들이 주축이 된 토요산악회 회원 가운데 일반인 몇 명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날 자리는 조합장에 당선된 채씨와 기자들과의 상견례를 위해 조합 측이 제의하고 기자들이 장소를 마련한 식사 자리였다. 참석한 기자들은 배태휴(순천KBS기자) 김병수(전남일보) 최종필(전남매일) 양홍렬(전 전남매일기자·7일 사표수리) 김승호(전광일보) 주기노(호남신문) 강문일(광주타임스) 서길원(무등일보) 강종모(호남매일) 기자 등 9명이다.

한옥으로 지어진 이 요릿집은 과거 밀실정치의 산실이었던 요정과 유사한 분위기를 지닌 곳이다. 4인 기준 한 상에 10만원짜리부터 30만원짜리까지 고급요리가 있는 이 요릿집은 지난해 삼성 홈플러스 관계자가 순천점 입점과 관련해 순천 주재기자들을 접대하면서 금품제공 의혹으로 말썽이 일기도 했던 곳이다.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기 힘든 고급 요릿집에서 상견례를 가진 기자들은 통상적인 식사와 술자리를 넘어 국악인과 밴드 등을 동원한 호화판 술자리를 가졌다. 이날 식사와 술값은 모두 635만원으로 일반 직장인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액을 하룻밤 유흥비로 탕진한 것이다.

채대홍 조합장을 비롯한 농협 이사들은 식사를 마친 뒤 30여분만에 자리를 뜬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자리에 남은 기자들은 국악인과 밴드를 부르는 등 호화판 술자리를 즐긴 뒤 거액의 술값을 농협에 떠넘겼다. 농협 측은 통상적인 상견례 자리로 예상하고 자리에 갔다가 봉변을 당한 셈이다.

기자들은 모두 20여 병의 양주를 폭탄주로 돌려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시간에 40만원(1조 2인)인 국악인들을 부르고 또 한 시간에 10만원인 밴드를 부르는 등 호화판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인근 주민들은 밤늦도록 계속된 풍악에 시달려야 했다.

기자들이 질펀하게 놀고 마신 술값을 떠안은 농협 측은 술집에 억울한 술값을 따졌지만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했다. 농협 측은 요릿집에 항의하며 전부 500만원을 지불키로 하고 60만원은 농협 공금으로 나머지 440만원은 조합장 채씨와 2명의 이사가 각각 나누어 지난 1일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촌지제공 의혹도 제기됐다. 일부 기자는 100만원 가량의 촌지가 제공됐으나 이날 참석한 특정 기자가 절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촌지를 받았다고 지목된 기자와 농협 측은 촌지존재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사실 규명이 요구되고 있다.

채대홍 조합장은 지난 10일 "그런 자리인 줄 상상도 못하고 불려나갔다"며 "조합 이사들하고 식사를 해도 6∼7천원짜리 밥을 먹는데 상상할 수 없는 술값을 내야 했다"고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채 조합장은 또 "봉 한번 잡히고 인생 공부했다"며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애써 말을 아꼈다.

이날 참석한 일부 기자들은 술자리 성격을 모르고 참석했다가 분위기가 이상해 곧 자리를 떴다고 해명했다. 반면 술자리를 주도했던 기자들은 크게 문제가 된 술자리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한 기자는 12일 "후배 기자가 식사나 하자고 제의해 별다른 생각 없이 참석했다"며 "폭탄주가 도는 등 분위기가 이상해 곧 자리를 빠져 나왔다"고 해명했다. 이 기자는 이날 기자들의 행동에 대해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후회했지만 다른 기자들은 참석자가 많아 술값이 많이 나왔을 뿐 크게 문제가 된 술자리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징역갈 일 한 것 아니잖느냐"

호화판 술자리에 참석했던 일부 기자들은 술자리 성격을 모르고 참석했다가 곧 자리를 떴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기자들은 크게 문제가 될 자리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다음은 이날 참석한 9명 기자들의 입장이다.

배태휴 기자(KBS 순천방송기자) "농협 측이 식사 한번 하자고 해서 자리가 이루어졌고 장소는 누가 정했는지 모른다. 나는 컨디션이 좋지않아 폭탄주를 먹지 않았다. 식사만 하고 농협 조합장이 일어날 때 같이 일어나 술값은 모르겠다. 누가 연락했는지도 모른다."

최종필 기자(전남매일) "(촌지 100만원 절취사건과 관련해)내가 봤다고 소문났는데 보지 않았다. 촌지는 금시초문이다. 누군가 Y(촌지 절취관련 인물로 지목됨)기자를 음해하기 위해 만들어 퍼뜨리고 있다. Y기자가 50만원을(술값에 50만원을 포함시킨 뒤 주인으로부터 챙겼다 문제가 되자 되돌려준 사건) 가져가기 위해 술을 계속 들여서 기자들은 모르고 술만 먹었다."

양홍렬 기자(전 전남매일) "힘들어서 2개월 전부터 쉬고 싶다는 입장 표명하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내가 부족한 부분 있어 모든 게 잘못된 것 같이 됐다. 왈가왈부하기 싫다. 집에 틀어박혀 있다. 집에 있는 사람한테 그런 부분까지 확인하는 것 마음이 안 좋다. 인생 공부 더 해야 할 것 같아 쉬고 있다."

강종모 기자(호남매일) "끝까지 있었다. (누구로부터 권유받고 참석했는가 라는 질문에 화를 내며) 누구로부터 권유받고 안 받고 간에 그것으로 해서 큰 이슈가 되느냐, 그것으로 해서 우리가 징역을 간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잖느냐. 서로가(같은 기자입장에서) 어느 정도 엠바고도 칠 줄 알아야지 아, 모르겠다. 전화하지 말라."

주기노 기자(호남신문) "기자들도 있었지만 토요산악회원도 있었다. (토요산악회 멤버인가)토요산악회 멤버다. (몇 명이 참석했는가)처음에 있다가 중간에 빠져나와 어떻게 됐는지 내용을 잘 모른다. 배태휴 기자나 회장(서길원 기자)에게 물어 보라"

김병수 기자(전남일보) "물어볼 게 있으면 사무실로 와서 물어봐라"

김승호 기자(전광일보) "술이 많이 들어와 과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점심 먹기로 했는데 나중에 연락이 와서 저녁 술자리가 됐다. (누가 자리 주선했는가 묻자) 누가 주선했다기보다 모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술값 얼마 나왔는지는 모른다. 국악인 세 명인가 들어온 걸보고 바로 나왔다. 그렇게 술값이 많이 나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촌지 봉투는 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

서길원 기자(무등일보) "후보등록 마감이라 오래 있을 수 없어 식사만 하고 나와 그 뒤 사건은 모르겠다. 자리를 알고 나간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후배인 태휴(KBS 배태휴기자)가 식사 한번 하자고 해서 나갔다. 그날 기자뿐 아니라 산악회원(토요산악회) 몇 명이 있었다."

강문일 기자(광주타임스) "배태휴 기자가 '사령 받은(최근 광주타임스 입사) 것 축하한다'며 식사하자고 해서 어떤 자리인 줄도 모르고 늦게 참석했다. 폭탄주를 돌리는 분위기가 안 좋아 두 잔 마시고 나왔다. 술값이 6백만원 가까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후배 기자들에게 추접스러운 일을 했다고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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