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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저녁 종로3가 교차로는 이동권을 박탈당한 장애인들의 작은 해방구였다.ⓒ 오마이뉴스 배주환


글: 배주환 기자
사진: 배주환 이종호 김시연 기자


▲경찰에 의해 '이동권'이 차단당한 박경석 이동권연대 공동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12월 19일 오후 1시경,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장애인들이 서울 혜화동 로터리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월드컵을 앞둔 탓인지 돈을 들인 환경미화작업으로 깨끗해진 고가도로가 뒤로 보였다. 가슴팍에 요구사항을 적은 천을 두르고, 손수 만든 피켓을 든 장애인들 뒤에는 몇몇 대학교와 사회단체들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9번째이자 2001년의 마지막 '장애인도 버스를 탑시다(이하 버스타기운동)' 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홉번째 장애인 버스타기행사

"연말연시라 다들 바쁜데, 우리도 밖에 나가 놀고 싶다"
한 장애인의 발언이다. 내년 월드컵에 외국손님을 맞이한다며 깨끗하게 정비된 거리를 바쁘게 오고가는 사람들 중에 장애인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집회에 참가한 인원들은 "이동권은 생존권"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시혜와 동정을 바라진 않는다"고 했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고아원이나 복지시설을 찾아 라면박스를 전달하고 사진을 찍어대는 것은 이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현실에서 장애인들에게 버스나 지하철은 목숨을 걸고 타야만 하는 것이다. 지난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하여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모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고민되는 건 이동권"

"우린 단지 버스를 타고 싶을 뿐" 버스타기 행사 후 국무총리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들ⓒ 오마이뉴스 김시연


노들장애인야간학교 교장이자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인 박경석(41. 지체장애인) 씨는 "배우기 위해 학교를 찾는 학생들도 차량이나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풍을 가고 싶어도 영화를 보고 싶어도, 모든 행사를 할 때 제일 먼저 고민되는 것이 이동권문제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의 행사는 혜화로터리에서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계획돼 있었다. 8-1번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도착하고 2~3명이 휠체어를 들어서 장애인들은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과 터지는 카메라 셔터들은 이동하기 위해 대중교통버스를 타는 일상적인 모습을 더욱 더 특이한 행동으로 보이게 했다. 단지 그들이 장애인이기 때문에.

'버스타기운동'을 매달 해오면서 이들의 일관된 요구사항은 '저상버스'의 도입이었다. '저상버스'는 휠체어를 타고도 타인의 도움없이 보도에서 버스로 올라갈 수 있도록 낮게 설계된 버스를 말한다. 지난 11월의 '버스타기행사'에서는 국내 대기업에서 제작한 '저상버스'를 볼 수 있었다. 95년에 만들어진 이 버스는 전 인구의 10%가 장애인인 현실에도 별로 사용될 기회가 없었다.

여유있던 운전기사

8-1번 버스의 운전기사는 '버스타기운동'을 하는 장애인들과 조금은 안면이 있는 듯 여유있는 웃음을 보였다. "세 번째 태웠다. 짬밥이 있지"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한달에 한번인 행사였지만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상인 것처럼 말하는 운전기사에게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저상버스'가 일반노선에 도입된다면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후 2시 10분께, 버스는 무사히 세종문화회관 앞에 도착했다. 또 다시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야 장애인들은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행진을 시작했다. 하지만 5미터도 채 못간 이들의 앞을 경찰의 방패가 가로막았다.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 가려는 장애인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들의 몸싸움이 시작된 건 그때였다.

"복지부는 건교부 탓, 건교부는 복지부 탓"

▲정부부처는 장애인이동권 문제를 서로 떠넘기기에 바쁘고... ⓒ 오마이뉴스 김시연
박경석 공동대표는 "요구사항을 담은 질의서를 보건복지부에 보내면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건설교통부에 보내라고 하고, 건설교통부에서는 또 보건복지부에 알아보라고 하며 서로 발뺌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정부부처들이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하니 그들을 총괄하는 국무총리를 만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국무총리 산하에 '장애인이동권정책위원회(가칭)'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장애인들과 경찰들의 실랑이가 계속되는 사이 최옥란(36. 지체장애인) 씨는 자신의 휠체어를 몰아 차도로 뛰어들었다. 놀란 경찰들이 달려 들어 최 씨를 인도로 끌어올리기 전까지 그녀는 쌩쌩달리는 차들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우리 목숨 걸고 하는 거예요"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정부청사 접근이 좌절된 장애인들은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남겼다.
ⓒ 오마이뉴스 김시연


왜 차도로 뛰어들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늘 꼭 국무총리 만나야 한다. 나 목숨 걸고 하는 거다"라고 말한다.

"버스, 지하철 타기 너무 힘들어요. (내 전동 휠체어는) 남자 서너 명이 들어야 해요.(국무총리 만나면) 당신도 휠체어 타고 이동 한 번 해봐라고 말하고 싶어요"

2시 50분께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던 장애인들은 막고 있던 경찰의 방패에 락카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저지하는 경찰들에게 "방패로 사람막고 있잖아, 왜 막아"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한 발 뒤로 물러선 장애인들은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 바닥에도 글씨를 남겼다.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김대중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혔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도 이들에게는 더 이상 '인권 대통령'이 아니었다.

3시가 조금 넘어 경찰들 앞에서 집회의 정리발언을 하면서 이들은 해산했다. 그러나 이들은 3시간이 지난뒤 종로3가 교차로 앞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미 해가 진 6시 10분께 휠체어 장애인 8명은 머리에 사다리를 끼고 쇠사슬로 서로를 연결한 채 단성사 앞 교차로 위에 있었다. 사다리 사이로 머리를 끼고 있던 최옥란 씨는 "1년 동안 '버스를 타고 싶다' 운동 해왔지만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울먹였다.

박경석 공동대표는 "듣지 않는 정부에게 우리의 처절한 요구를 알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해왔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도착한 전투경찰들은 "위험하게 장애인 목에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라며 주변에 있던 학생들과 기자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들이 스스로 사다리를 목에 걸고 쇠사슬로 서로를 연결한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이들이 왜 '위험하게' 도로 위에 나와있는지 더 더욱 모를 것이다.

경찰들의 작업

▲경찰에 의해 고립된 장애인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커터기 없냐? 절단기는.." 경찰들의 무전기를 통해 어딘가와 교신이 오고 갔고 8명의 장애인들은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싶다. 장애인 이동권 쟁취하자."
경찰들의 무전기 소리 중에 "사다리를 목에서 빼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자들 못 들어오게 뒤로 돌아서 막아!"

장애인들을 둘러싼 경찰들은 뒤로 돌아서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했다. 잠시 후 경찰들 틈에서 장애인들이 한 명 한 명 끌려나왔다. 경찰들의 '작업'은 10여 분만에 끝이 났고 장애인들은 전경들에 둘러싸여 인도 한 구석에 몰려 있었다.

서로의 어깨를 주무르며 씁쓸한 위안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 주변으로 한 여학생의 외침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권대통령 기만이다. 노벨평화상 반납하라."

박경석 공동대표는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시민들의 발목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 책임 지지 않으려는 정부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버스타기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라며 결의를 밝혔다.

"오늘 우리만 한 것이 아니에요. 부산에서도 버스타기운동이 시작되었고, 곧 광주에서도..."

이 날의 길었던 버스타기행사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덧붙이는 글 | 장애인이동권연대의 홈페이지는 access.jinbo.net입니다. 이제까지의 투쟁과정을 볼 수 있고, 온라인 서명운동에도 동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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