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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학부모들의 집단민원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앞.(기사의 특정내용과 관계없음)
ⓒ 오마이뉴스 노순택
학부모들이 집단민원과 인터넷고발로, 한 선생님을 억울하게 교단에서 떠나게 한 것인가, 아니면 선생님이 학생과 학부모의 가슴에 심한 모욕을 안겨준,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는 행위를 한 것인가?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학부모들의 집단민원과 그 처리 과정이 교육계와 네티즌들 사이에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입학과 동시에 희망은 불안이 되었습니다"

"... 그런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학교에 입학한 처음에는 감동과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그 조그만 꿈들은, 입학함과 동시에 희망은 불안이 되었고 하루 하루가 초조한 날들이었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할 우리 아이들은 8살입니다. 호기심 많고, 모든 것이 신기한 어린이입니다. 거의 한 학년을 마무리지을 즈음, 한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참고 있었던 억울함을 폭로할까 합니다..."(서울 S초등학교 4학년 홈페이지, 1학년 5반 학부모 일동)


우리 아이들은 8살입니다

<학부모 1> 아웅다웅 어렵게 살던 부모가 첫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말을 하고, 걷기 시작하던 그 대견함과는 또 다르게 고사리손을 잡고 교문을 들어서던 날, 부모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과 흥분으로 가슴이 들떴다.

아이의 학교 생활이 걱정돼 아이의 청소 당번일 틈을 내 과일을 사들고 학교로 갔다. 선생님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과일,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과일을 발로 툭툭 차며 이렇게 말했다.

"필요한 것 사게 돈으로 가져오지 이런 건 뭐하러 사가지고 왔어요... 자식한테 신경쓰지 말고 나한테 잘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해줄텐데..."

<학부모 2> 학교에 보낸 아이가 울면서 돌아왔다. 미술시간, 실수로 색종이와 연필을 떨어뜨렸다고 선생님이 따귀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다고 한다. 방과 후면 언제나 돌아와 해맑게 웃던 아이가 가슴에 안겨 울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 아이들은 이제 여덟 살이다."


청와대 민원실에 접수된 '고발장'

지난 22일, 은평구 S초등학교 1학년 5반 학부모 15명은 담임선생님에 대한 '고발장'을 청와대민원실과 서울시 서부교육청에 냈다. 이들은 동시에 인터넷에도 똑같은 내용의 고발장을 올렸다.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와 하이텔, 그리고 오마이뉴스 제보란에도 '믿을 수 없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그 내용은 금세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퍼졌다. 청와대에서는 일선 교육청에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 S초등학교 '1학년 5반' 학부모들 명의로 올라온 그 글에는 담임 선생인 K교사(여. 50세) 때문에 멍들어야 했던 아이들의 동심과 부모들의 아픈 가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 아이들에게 바늘 같은 것을 보여주며, 떠들면 혀에 침을 놓고, 뒤를 돌아보면 목에 놓고, 다리를 흔들면 다리에 놓겠다고 위협을 했답니다. 학기 초 내내, 우리 아이들은 친구 이름도 잘 모른 채, 지내야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면 혼나기 때문입니다..."

"실수로 오줌을 싼 아이에게, 따귀를 때리며, 반 아이들 앞에서 온갖 욕지거리와 '미치겠다'면서 오줌을 닦게 했지만, 그 엄마에게 한약을 받고는, 아이가 아주 착한 아이라고 말이 바뀌었습니다. 선물을 받기 전과 후의 이중성에 선생님에 자질이 의심스럽습니다."

"청소 당번일날 과일을 사 가지고 갔더니 '필요한 것 사게 돈으로 주지 뭐 하러 사 가지고 왔느냐'며 발로 툭툭 찼습니다. 암암리에 선물을 요구하며 '자식한테 신경 쓰지 말고 나한테 잘하면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텐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이 고발은 네티즌들을 분노케 했다. 갓 입학한 '아이들'에게 폭언과 구타를 행하며, 학부모들에게 공공연히 '돈'을 요구하는 교사가 있다는 학부모들의 주장은 그러한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 K선생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도 다른 학교지만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가만 있지 않으려 합니다. 한없이 존경해야 하는 선생님의 위상이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로 인하여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면 안됩니다. K선생 건과 전혀 관계 없는 시민이라고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S초등학교 4학년 커뮤니티, ID:태평로)

"... 정말 그런 사람은 선생의 자격도 없고 퇴출당해야 합니다... 정말 너무합니다. 어린 것들이... 얼마나 아팠을지..."(S초등학교 4학년 커뮤티니, ID:학생)

▲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1학년 교실 앞 신발주머니
ⓒ 오마이뉴스 노순택

학부모 주장 "구타와 폭언"

학부모들은 K교사는 올해 S초등학교 1학년 5반을 맡아오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모욕'을 줘왔다고 주장했다.

줄을 잘못 서거나 물건을 떨어뜨리면 아이들에게 '따귀'가 날아오기 예사였고, 학교를 찾은 학부모에게 삿대질과 폭언을 일삼았다. 한 학부모는 소풍을 따라갔다 "선물도 없이 왜 왔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고, 다른 어머니는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무식한 엄마들이 많아서 숙제도 제대로 못 해낸다"는 모욕을 받았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손자의 청소당번일 학교를 찾은 할머니는 "늙은이가 와서 보기 싫다"는 언동을 참아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K교사는 학부모들에게 "내가 이런 교육환경이 싫어 자식 둘을 유학 보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학부모들은 주장한다.

그렇게 모욕을 받던 부모들은 급기야 청와대 등에 집단민원을 하고 인터넷에도 '고발장'을 냈다.


학교측 "담임 박탈했지만 가엾다"

학교측은 일단 자체조사를 통해 지난 29일(월)자로 학교장 재량으로 K 교사의 담임직을 박탈했다. 또 K 교사가 맡고 있던 1학년부장직도 박탈했다. K 교사는 현재 학부모들의 집단민원을 당한 후 쇼크를 받아 '병가 6개월'을 내고 병원에 입원 중이다. 학교측은 병가가 끝나는 내년 2월에 다른 학교로 전근을 시킬 방침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학교측은 이런 징계가 '사실확인' 끝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학교의 교감 강아무개 씨는 31일 학교를 찾아간 기자에게 "K 선생이 너무 가엾다"면서 "이 일로 인해 나까지도 교직에 있는 것 자체에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교감은 "학부모들의 주장 중에 명백히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직 많지 않다"면서 "징계를 하지 않으면 계속 인터넷에 올린다고 학부모들이 이야기를 해왔고 K 교사도 '이럴 바에야 내가 차라리 교직을 포기하겠다'고 말해 우선 교장재량으로 담임직을 박탈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감은 "K 교사는 현재 대인기피증과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으며 남편도 같이 병원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학교측은 학부모들의 경솔한 집단행동이 한 교사를 교단에서 억울하게 물러나게 했으며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시 교육청 감사관실의 한 관계자는 31일 "해당 관내 교육청으로부터 우선 잠정적으로 학교당국이 경징계를 했다는 말은 들었다"면서 "서울시 교육청은 중징계 이상의 사안에 대해서만 감사와 조사를 하기 때문에 아직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해당 교육청인 서울시 서부교육청의 한 장학사는 "민원 내용에 대해 학부모측과 선생님이 일부 내용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으나 물의를 일으켰고 담임하고 학부모하고 화합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서 일단 담임박탈 등 경징계를 학교장 재량으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민원에 대한 조사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한 장학사는 "이 사건은 우리 교육청뿐 아니라 청와대, 본청, 경찰청에도 민원이 들어온 것이기에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특별조사반을 꾸려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학사는 "우선 민원인인 학부모들부터 조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만나본 학부모들은 민원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다"면서 "해당 교사는 아직 조사하지 못했으며 곧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집단민원과 인터넷고발로 한 선생님을 억울하게 교단에서 떠나게 한 것인가, 아니면 선생님이 학생과 학부모의 가슴에 욕을 안겨주는, 교단을 떠날 수밖에 없는 행위를 한 것인가?

만약 학부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교단에 서 있는 전체 선생님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K교사에 대한 중징계는 절실하다. 그런 선생님을 다른 학교로 전근 보내 다시 교단에 서게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K 교사와 학교당국의 주장처럼 학부모들이 집단민원과 인터넷고발이라는 '집단의 힘'에 의해 K 교사가 담임선생직을 박탈당하고 정신적 피해마저 입고 있다면 이 또한 교단에 서 있는 전체 선생님들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당관청의 조사는 빠를수록 좋다. 집단민원이 22일에 처음 제기된 후 31일 현재까지 해당 교육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K 교사에 대한 직접조사를 하지 않고 학교당국에 맡겨두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 민원인의 고발내용의 심각성을 두고볼 때 서울시 교육청이 직접 조사에 나서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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