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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처음 시작한 보금자리가 3층 건물의 옥탑 방이었습니다. 건물 꼭대기라 전망은 좋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출근하려고 문을 나서는데 아내가 쓰레기 봉투 하나를 건네줍니다.
“가는 길에 이것 좀 내어 놓고 가.”
“뭐라고?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가 출근하는 남편한테 기껏 쓰레기 봉투나 버리라고?”

차가운 날씨에 손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고, 출근 길에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가는 게 어쩐지 좀스럽게 여겨져 아내에게 버럭 화를 내고는 나와 버렸습니다.

그 날은 하루종일 아침 일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출근 길에 아내를 위해 쓰레기 봉투 하나 들고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남자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아내는 그 추운 날 쓰레기 봉투를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아내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남편에게 화가 나 있었고, 그 일 이후 사흘동안 설거지며 세탁기 돌리는 일을 도맡아 하고 나서야 아내와 화해 할 수 있었습니다. 가사 노동이 전적으로 여자에게만 떠 맡겨진 숙명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사소한 충돌이 더 필요했습니다.

딸 둘을 낳고 나서야 이 나라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그 많은 차별 대우들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 부당한 일들이 지금도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저질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아래 기사를 읽었습니다.

국회 예결 특위의 14일 오후 환경부에 대한 부별심사에서 한나라당 민봉기 의원이 유일한 여성장관인 김명자 환경부 장관에 대해 '성차별적'인 질의태도를 보였다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동료의원으로부터 제지를 받는 상황이 빚어졌다.

민 의원은 일문일답에서 "쓰레기 종량제가 정부 발표와 달리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고, 정부가 종량제 봉투 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주지 않아서 지자체별로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면서 환경부의 쓰레기 정책을 추궁했다.

이 과정에서 민 의원은 수차례 김 장관의 답변을 중간에서 자르거나 아예 무시하고, 기획관리실장에게 대신 답변하도록 하는 질의방식을 고집했다.

민 의원은 또 "장관도 집에 가면 주부인데 쓰레기 정책에 왜 그렇게 관심이 없느냐"고 몰아세웠다.

참다 못한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이 "비록 우리 당 의원이지만 너무 한다"면서 "국무위원석에 남자들만 즐비하고 여성장관은 단 하나인데 왜 장관에게 답변토록 하지 않고 기획관리실장에게 답변을 요구하는가"라며 "여성장관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 것은 여성을 차별하는 것 아니냐"고 김 장관을 거들고 나섰다.

김 의원은 "'장관도 주부' 운운했는데 쓰레기는 주부만 치우는 것이냐"면서 대신 항변하고, 김 장관에게도 "왜 당당하게 답변하지 못하느냐"며 답변태도를 지적했다. (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거침없이 해 대는 민봉기의원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라 치부하고 다음 선거 때 참조하면 되지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도록 한 이 사회의 전근대성은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입니다.

그 자리에서 민 의원의 발언을 제지한 사람 또한 여성인 김정숙 의원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부분입니다. 여성 장관, 여성 국회의원이 더 많이 나와서 남녀가 함께 머리를 맞대지 않고는 여성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하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성에 상관없이 또 다른 차별을 겪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 사회의 불공정한 모습에 좌절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만은 없습니다.

김명자 장관에게 모욕적 언행을 한 민봉기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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