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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일본총리가 한일정상회담 직전 가진 KBS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망언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모리 총리는 이달 중순 KBS 보도제작국 취재진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다케시마(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입니다"라고 밝혔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모리 총리와의 단독 인터뷰를 편집한 'KBS특별회견 일본 모리 총리에게 듣는다'는 지난 21일밤 10시부터 30분 동안 KBS 1TV를 통해 방송됐다. 그러나 모리 총리의 독도 관련 망언은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다.

일본의 최고 통치권자인 총리가 직접적인 표현으로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 것은 한일외교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불과 며칠 앞둔 미묘한 시기에 당연히 한일관계를 악화시킬 독도 영유권 주장을 KBS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은 상당한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모리 총리는 사전에 질문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모리 총리와의 인터뷰 전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내용을 사전통보하고 질문 내용을 협의했다고 한다. 일본정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담스러운 답변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리 총리는 인터뷰 도중 다른 질문은 자연스럽게 대답하다가 독도 영유권 관련 질문이 나오자 정색을 하고 일본 외무성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답변서를 그대로 읽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일관계 악화를 고려해 직접적인 표현을 삼가던 일본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 하루 전 방송될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제 독도 문제에 있어서는 한일관계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강한 입장 표명은 아닐까? 그리고 독도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한국 정부의 대일 외교정책이 그 원인은 아닐까?

제작진은 당초 독도 문제는 제작시간이 모자랄 경우에 대비해 준비한 예비 질문이었으며,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처음이 아니라는 의견에 따라 담당 간부들과 협의해 이 내용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하루 앞두고 이 인터뷰가 방송될 경우 정상회담에 미칠 악영향과 국익을 고려했다고 한다.

<방송에서 삭제된 인터뷰 내용>

MC : 이번에는 독도 문제인데 이것은 일본 외교문서를 보면 일본의 영토라고, 최근에는 일본인 몇 명이 호적을 독도로 옮겼다는 것이 확인됐는데 이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은?

모리총리 : 우리 나라는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이것을 꼭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한편 이 문제에 대한 일·한 두 나라의 입장의 차이가 두나라 국민가운데서 감정적인 대립으로 이어져서는 안됩니다. 모처럼 양호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이 문제가 감정적으로 되지 않도록, 두 나라의 우호 협력 관계가 적어도 손상을 입게되면 이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니까 한국측도 아무쪼록 냉정하게 대응해 주기 바라고, 우리와 끈질기게 대화를 쌓아가야 합니다.



미온적인 정부 태도가 망언 자초 비난

독도는 어느 나라의 땅인가? 누구든 한국 땅에서 이러한 질문을 하려면 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명제가 흔들리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에 앞서 가진 KBS와의 단독회견에서 모리 일본 총리는 일본의 총리로서는 최초로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공식적인 의견을 밝혔다. 꾸준히 제기되어온 일본 관료들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일본 정부의 변경 불가능한 공식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일본의 총리가 서슴없이 독도영유권을 주장해도 된다는 일본 정부의 판단이 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른 이유는 무엇인가. 독도와 관련된 한일간의 공식적 갈등의 시작은 일본이 1905년 을사조약과 함께 독도를 시네마현 은기군 오개촌에 죽도(竹島)라는 이름으로 편입시키면서이다. 해방 이후 52년 1월 한국 정부가 국무원 고시로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선언하자 일본은 '독도(일본명 다께시마)를 한국의 영토로 한 점과 공해 상 어업 자유원칙에 위배되는 점'을 항의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꾸준히 이 문제를 거론하였지만 한일관계 기본조약 등에 서명하면서 일본정부는 외무성 수준의 주장만 되풀이했을 뿐 회담의 의제나 공식적인 차원의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 국제법상 원인무효인 을사보호조약에 의해 왜곡된 역사에 대한 청산이 없이 한일기본조약이 이뤄지게 된다. 이것은 이후 제기되는 한일간의 영유권 문제와 역사왜곡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1996년 2월 일본 관방장관이 200해리 기선의 기점을 독도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더욱이 그해 6월 23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영유권 문제와 어업협정은 별개로 해결하자'는 제의를 하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요구는 더욱 거세진다.

일본은 97년 1월 1일 영해기준을 기존의 통상기선 대신 직선기선으로 선포하고 10여 차례에 걸쳐 한국어선을 나포하였다. 또한 98년 1월 23일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은 독도영유권에 문제가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측을 고무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이후 한일간의 해양 문제에 일본이 선제권을 가지고 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이후 1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체결된 한 일 어업협정에 그대로 반영된다.

한일어업협정은 직접적인 어업소득 감소 외에도 독도영유권 분쟁 소지를 협정 자체에 남겨 놓고 있다. 독도를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기점으로 삼지 않고 울릉도를 기점으로 삼았으며 독도만이 중간수역에 설정되어 독도가 울릉도의 속도(屬島)가 아닌 국제법상의 별개 도서로 인정되게 된 것이다.

한일어업협정은 김대중정권 외교정책의 최대 실책으로 실제적인 피해는 물론 영토를 보위할 국가의 기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협상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독도에 대한 소극적인 국제법 해석을 근거로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기조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 총리까지 나서 공식적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이 단기적 국가 이익을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관계개선은 결국 왜곡된 구조를 심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것이다.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헌법을 준수하고…" 라는 선서를 한다. 그리고 우리 헌법 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적혀 있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KBS 노보특보(9월 26일자)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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