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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최근 국가보안법 폐지논쟁과 관련, 국민 여러분의 판단을 돕고자 '국가보안법 보도비평'을 연재합니다. 연재는 5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언론대책팀' 소속 대책위원이 맡습니다. 열세번째 비평은 오동석(민주주의법학연구회) 아주대 법학과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편집자 주


13일자 주요 신문들은 열린우리당이 보안법 폐지를 전제로 12일 내놓은 후속수단을 일제히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해설기사 제목은 천편일률적이다.

<조선일보>는 '찬양고무죄 삭제…주체사상 전파해도 처벌 못해'(A4면)였고, <동아일보>는 '찬양고무죄 폐지…친북선동 처벌 어려워'(A4면)였다. <중앙일보>도 '한총련 등 이적단체 처벌 근거 사라져'(4면)였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 같은 면 하단에 글자 하나 차이로 '수사기관 "간첩(은) 어떻게 잡나"'라며 '반국가단체, 금품수수, 잠입탈출 핵심조항 삭제에 우려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결국 찬양고무죄는 물론 금품수수와 잠입탈출까지 핵심조항의 반열에 올림으로써 보안법에 손대지 말자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경향신문>은 '여 국보법 '형법 보완'으로 가나'(5면) 제목으로 열린우리당의 후속수단을 소개하면서, 북한을 '내란목적단체'로 규정한 것을 비롯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조·중·동의 보도태도는 <한겨레>가 '찬양고무 등 처벌은 내란목적 분명하면 형법 적용'(4면)과 '독소조항 삭제…북한규정 논란예고'(5면)로 제목을 뽑은 것과 대비된다. 조·중·동이 보안법 폐지 의미는 사상한 채 인권침해의 대명사였던 찬양고무죄에 집착한 반면, 한겨레는 반인권적 독소조항 삭제에 의미를 부여함과 아울러 후속수단의 문제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조선>의 가정법과 편증집 "보안법 없이 살 수 없다"

이번에도 조선일보는 보안법 폐지 후 구체적 상황은 내버려둔 채 과대망상의 가정법을 동원, 보안법 없이 살 수 없다는 식의 편집증을 보이고 있다. "남한 내 연구소에서 주체사상을 전파한다면", "북한 무장간첩선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는다면", "김일성 추모집회를 열어 친북 유인물을 나눠준다면",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휘날리며 평화 집회를 연다면"(A4면) 등을 열거하며 처벌할 수 없다고 호들갑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지적하듯 "과장된 두려움과 부풀려진 걱정" 상태의 전형적인 '레드 콤플렉스' 증상이다(한겨레, 2004. 9. 9).

이에 대해 한겨레는 4면에서 '광화문서 인공기 흔들면?', '김일성 추모집회를 열면?', '주체사상 연구소 만들면?', '북한방송 유인물 배포 땐?" 관련조항이 모두 폐지돼 직접 규제를 하지 않지만, 실제 위험성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으며 일부는 다른 법률에 의해 일정 정도 규율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예컨대 '북한을 맘대로 드나드는 행위’는 남북교류협력법이나 출입국관리법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가 미처 말하지 않았지만, 그 처벌형량도 각각 3년 이하와 5년 이하 징역으로 만만치 않다. 또 내란목적 관련행위가 있으면 그보다 중한 형량의 형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의 후속수단에 대한 사설도 비슷한 판도를 보이고 있다. 역시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울분에 찬 듯 "법전에서 국보법 이름만 지우면 된다는 말인가"(A35면) 라며 "북한에 흡족한 내용이며 70% 국민이 보안법 유지 쪽"이라고 강변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 '국보법 폐지 밀어붙여선 안 된다'(A2면), '보안법 해결 위해 새 접근 필요하다'(30면)고 주장하면서 해설기사와 달리 짐짓 중립적인 듯한 절충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간과하고 있다.

각 신문은 탤런트 김혜자씨가 책을 판매한 인세(10년)를 남북어린이기금으로 기탁하기로 한 내용을 짤막하게 보도했다. 그 책의 제목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이다. 아무리 꽃이라 해도 때리는 행위에서 폭력성을 걷어낼 수 없는 것처럼, 보안법을 아무리 손본다 한들 그 반인권성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형법만으로도 아프기 때문이다.

한편 한겨레는 '보안법 대안 형법 안에서 찾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형법 테두리 안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며 형법만으로도 국가안위 위협 행위를 처벌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원용하고 있다.

조·중·동의 보안법 폐지 왜곽 때리기 칼럼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조·중·동의 부록인 칼럼을 통한 보안법 폐지에 대한 외곽 때리기는 오늘도 계속됐다. 이제는 너무 낯익은 단골메뉴다.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 말은 하면서도 과거사·보안법에 총력전이라니…"(중앙일보 31면, 송진혁의 '이젠 현실정치로 가야 한다),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나라가 갈가리 찢겨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젋은이들이 올바른 국가관, 안보관을 정립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동아일보 A6면, 송문홍의 <안보 세대차는 없다>), "수도 이전, 과거 들추기, 국가보안법 폐지 등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조선일보 A34면, 양상훈의 <유권자의 시련>) 등이 대표적이다.

사상·이념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에 대해 경제와 안보 논리를 맞세우는 꼴이 70년대 박정희의 독재논리와 다를 바 없다. 마치 보안법 때문에 경제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처럼 떠들어대는데 '정신적 자유권과 재산·경제적 기본권을 구분하여, 전자는 후자의 가치에 우월한 것'이라는 이중기준의 헌법원칙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말하듯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와 더불어 정신적 존재인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데 필수불가결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며, 정신적 기본권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김철수 교수)이고, 최상급 기본권(권영성 교수)"이기 때문이다(2004년 10월 12일 국가보안법 기자회견문 <국가보안법 없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사실 조선의 주장처럼 보안법은 이름만 지우면 절대 안된다. 그 그림자까지 지워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후속수단 네 가지는 모두 정답이 아니며, 그들은 정답 없는 문제를 출제함으로써 자기 덫에 걸린 꼴이 되었다.

이제라도 한 가지 선택지를 추가하여 맨 앞에 '0순위'로 올리면 된다. 이름 붙이기를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법률안', 본문은 단 하나의 조항으로 '국가보안법은 이를 폐지한다'. 괜스레 일을 복잡하게 만들 것 없이 정답이 훤히 보이는, 얼마나 '쿨'한 해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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