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큰길로 멀리 돌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차가 들어 오지 못하는 꼬불꼬불한 주택가 샛길로 질러가는 것이지요.

지금도 충격이 생생한 초등학교 5학년 소녀 시절 어느 날입니다. 그날 따라 등교가 이른 탓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좁은 골목길에 웬 키 큰 아저씨가 서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골목을 돌아 들어오면서부터 시선을 어린 내게 고정한 채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10살 남짓한 철부지 소녀는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와 나 사이 거리가 다섯 발자국 정도로 좁혀진 순간. 길을 막아선 아저씨는 쉰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습니다.

"꼬마야, 이리 와 봐"
"네?"
"이리 와 봐."
"왜요?"
"이것 좀 볼래?"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 하며 아저씨를 바라보는 순간 아저씨는 입고 있던 코트를 활짝 벌려 크고 징그러운 물건을 꺼내 보여줍니다.

"자, 이거 봐."

난 얼마나 달렸는지 어떻게 달렸는지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가던 길을 되돌아 어느새 집 앞까지 와있었으니까요.

그 후 다시는 좁은 골목길로 다니지 않고 좀더 많이 걸어야 하는 큰 길을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코트를 입은 남자만 보면 멀리서부터 피해 돌아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여고생이 되었습니다. 가끔 선생님 몰래 남학생들과 미팅도 하면서 어린 시절 우울과 공포로 칠해진 남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지요.

어느 5월 교정에 라일락이 지천으로 피어나던 날이었습니다.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복도나 과학실 근처에 이상한 남자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너 얘기 들었어? 어젠 고1 교실 복도에 나타났다는거야. 애들이 울고 난리도 아니었대."
"누가?"
"바바리맨 몰라? 교감선생님이 잡으러 뛰어갔는데 담을 단숨에 넘어갔다더라. 무서워 죽겠어. 우리 교실 복도에도 나타나면 어떻게 해."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 저는 몸서리와 함께 구토가 몰려옵니다.

"그만해, 구역질나잖아."
"그치, 남자들은 왜 그런다니. 전부 짐승인가봐."

딴에는 여학교에서 극성맞다고 소문난 친구조차 구역질하는 시늉을 하며 몸서리를 칩니다.

그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수업 중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어? 출석부를 안 가져왔네. 앞자리 너. 교무실 가서 출석부 좀 가져와라."

수업이 시작된 뒤라 복도는 조용했습니다. 삐거삐걱 소리나는 오래된 나무 계단을 내려가 2층 교무실로 가려는 순간 눈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복도 끝 서향창문으로 비치는 오후 햇살 때문에 눈이 부셔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은 저 앞에서 분명 바바리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까악."

그리고 무슨 소동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눈을 떠보니 양호실이었습니다.

그후 그 바바리맨은 결국 꼬리가 길어 잡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학교에 오는 길과 가는 길이 저에겐 공포 그 자체였으며 바바리를 입은 남자건 아니건 간에 남자라는 사람이 주는 공포는 기억 깊숙이 문신처럼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밀양에서 일어난 여중생 자매 성폭행 사건을 접하면서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작은 성추행과 함께 지금은 자신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국으로 떠나버린 한 친구를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는 7살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멀지 않은 논둑에서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 어린 것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엄마는 출혈이 멎지 않는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고 심하게 찢긴 상처를 한 시간이나 꿰매야 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자기 최면으로 어린 시절 기억을 지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한동안은 그 시절 몇 년 간의 자기 모습을 기억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사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자신 속에 꼭꼭 감추어 둔 악몽같은 그날의 기억과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땅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몸과 마음에 화인처럼 깊은 상처를 간직한 채 말입니다.

"난 그놈이 누군지 알아. 이제 다 생각나. 그 놈을 죽이고 나도 죽을거야."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녀는 정말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의 인생을 쓰레기로 만든 사람에 대한 복수를 이야기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를 것만 같던 일곱살 계집아이를 상대로 한 성폭행은 몇 십년이 흐른 뒤 한 여자의 인생을 처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기억속의 성추행은 한동안 남성에 대해 엄청난 공포심과 두려움을 갖게 했으며 그런 잘못된 선입견을 벗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너무 쉽게 성추행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 안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성추행의 대상이 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전철을 타고 집에 오는 길에 불쾌한 경험을 했습니다. 주변에 서 있는 다른 남자분들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들은 오히려 눈을 피해 버리더군요.

참다 못한 저는 "정말 왜 이러세요?"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밖으로 담담했습니다. "뭘 말입니까? 이 아줌마 이상한 아줌마 아냐? 내가 뭘 어쨌다구"하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겁니다.

정말 그 누구도 저를 도와 저를 성추행하려던 남자를 끌어내거나 비난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성은 힘으로나 권력으로 사회적 약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물리적인 힘으로나 사회적인 위치로 보나 여성에 비해 강한 남성들에게 이런 당치도 않는 수모를 당하게 되나 봅니다. 그 순간 내가 상대편 남자보다 힘이 셌다면 그 사람은 성추행 할 엄두도 내지 못 했을테니 말입니다.

처음에 밀양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차마 뉴스를 보지 못했습니다. 기사도 읽지 못했습니다. 눈물이 나고 구토가 치밀어서 볼 수가 없던 것입니다. 이제야 사건의 첫 기사에서 어제까지 나온 기사를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내가 아니고 내 딸이 아니고 내 친구가 아닐지라도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치가 떨리는 공분을 느낄 것입니다. 더구나 사건을 처리하는 형사들의 태도와 가해자, 가해자의 부모들의 뻔뻔스런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을 성추행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여성 자신의 노력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는 여성 주변에 있는 남성들의 도움도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남자 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제발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추행과 성폭행 시도를 보고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의 한마디가 혹은 작은 관심이 한 여성의 인생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검찰이나 경찰 그리고 법조계 정부는 미성년자든 아니든 성추행이나 성폭행 가해자만큼은 강력하게 처벌해 다시는 이 땅의 딸들에게 이런 충격적이고도 슬픈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벌백계로 다스려 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