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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율 교수가 지난해 10월2일 오후 2시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냉전 교육의 잔재는 너무나 깊다. 한국의 실정법이나 이념에 대한 정치적 지형에 비춰 볼 때 송두율 교수가 무죄를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우려는 있었다. 그렇지만 30일 재판부 판결문의 일부를 언론에서 대하며, 읽어내리기 힘든 고통을 느낀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북의 이념에 편향된 학술저서와 언론 기고를 통해 국내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맹목적 친북세력 육성에 기여했다"며 "학문과 양심의 자유도 그 내용이 외부로 표현될 때는 안보와 질서유지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판결문을 내 놓았다.

송두율 교수는 과연 '국내 주체사상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맹목적 친북세력 육성에 기여했는가?'

이 부분은 송 교수의 저서에 대한 몰이해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다. 재판과정에서 송 교수는 주체사상은 사투리와도 같으며, 투박하고 조야하지만 그 속에는 사투리가 갖는 생명력 같은 것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이 표현이 송 교수가 주체사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역사 속에서 이미 사투리로 규정된 말이 표준어가 될 수는 없다. 그렇듯이 북한의 주체사상이 공식적 국가이념으로서 미래를 약속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주체사상 속에는 식민지 통치의 고통과 그에 대한 처절한 저항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그는 본다.

송두율 교수는 언젠가 그의 칼럼과 저서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1995, 한겨레출판사) 에서 북한이 직면한 문제를 '자주성(주체)의 추구가 낳은 근(현)대성의 부재에 있다’고 정의한 바 있다. 자주를 실현하려는 제3세계의 민족주의적 노력이 그 대가로 근대성의 부재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주변 강국에 유린되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자주’를 택했고, 북한은 ‘자주와 독립에 대한 강한 염원’의 과잉으로 외부와의 철저한 고립의 길을 걸어 왔다. 그로 인해 북한은 ‘근대화’라는 세계사적 흐름으로부터 멀어진, 외부가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상당기간 외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고립된 소왕국’으로 추락했었다.

송두율 교수가 ‘경계인’을 자임한 것은 선의로 출발한 북한이 고립된 전근대사회로 추락하고 있는 사실과 남한 사회의 우리들이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 믿는다.

그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쓰라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에게 '세계로 나올 것'을 이야기하며, 북한을 기형적인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성원들에게 현실적 결과로써의 북한에 집착하기보다는 북한 사회의 현실과 불행을 우리 역사의 맥락에서 파악할 것으로 이야기하며 내재적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래서 그의 저술은 '한반도의 우리들',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은 우리들'이 '민족이라는 공통된 지반'에 서서 화해하고 협력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야함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필자 역시 북한은 '근대성'을 갖추지 못한 비정상적인 사회라 여긴다. 아직 공개처형이 이뤄지고 범죄자, 반체제 인사에 대한 인권은 찾아보기 힘들며, 당관료의 특권주의는 봉건적 유제와 결합되어 인민을 지배한다.

인간의 정신질환이 인간의 '심리적 자기 방어 기제'의 자연스러운 작동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하는 이론이 있다. 정신분열병과 편집증(파라노이드)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의학계는 이 두 질환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신질환을 사회적 요인보다는 대뇌기질의 이상에서 찾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심리적 자기 방어 기제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설명의 틀은 북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단초를 제공한다.

"정신분열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일을 당했을 때 현실과 자기를 분열(분리)시켜버리는 심리적인 자기 방어 기능의 자연스런 현상'이며, 편집증(파라노이드) 역시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 있을 때 그것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방어적 심리의 결과'라는 설에 호감을 느낀다.

그런 맥락에서 필자는 북한을 식민주의를 경험한 제3세계 민족이 그토록 갈망하던 자주를 이루려는 과정에서 '세상과 단절', 즉 '근대성의 외면'이라는 길을 선택해버린 데 따른 것이라는 송 교수의 설명에 공감한다. 그래서 북한에 동정이 간다.

송두율 교수가 중립적 태도를 버리고 북한에 편향된(?) 학문적, 실천적 활동을 한 것은 '북한의 현재 모습을 우리 민족의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고’분단구조가 낳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로서의 남북한 모두가 노력해야 함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이해한다.

송두율 교수는 그의 저서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에서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세계화를 지향하는 남한과, 세계사적 발전에서 벗어나 주체를 강조하는 북한의 공존”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한반도가 직면한 과제를 “통일, 즉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근(현)대적 과제와 세계화라는 탈근(현)대적(post-modern)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남북한의 소모적 갈등은 세계화의 과정에서 한반도가 구한말의 위기를 되풀이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 어느 곳에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와 맹목적 친북 세력을 키우는 선동이 들어 있는가?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 북한 업무를 하던 직장의 마지막 출장에서 "내년이면 북남이 새로운 역사를 열 것인데 어디를 갑네까"하던 1년 정도 사귄 북한의 정치지도원이 생각난다.

우리측으로부터 '김 동무, 이렇게 당성이 부족해 가지고 일을 제대로 하겠어? 매일 공장에 가보긴 해? 차가 없으면 뛰어서라도 가야지"라는 호통을 듣고 "열심히 합네다. 매일 공장에 가봅네다, 거짓말 아닙네다"라고 대답하던, 필자보다 젊은 북한의 공장 지도원이 생각난다.

그는 뷔페 식당에서 음식을 한 번 집어오고는 더 가지 않았다. 아마 음식 앞에 추태를 보이지 말라는 이야기라도 들었나 보다.

필자는 북한 일꾼의 모습에서 송 교수가 말하는 긴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재판부 판결문에서 '분단구조에 짓눌리고 유신과 5공화국에 의해 죽어버린 언어'를 발견하며 분단 구조의 난맥상을 느낀다.

송 교수의 표현대로 '통일은 긴 여정'이다. 그러나 ‘가야만 하는 통일이라면 그 긴 여정 속에서 미래를 보며' 북한의 긴장과 분단구조를 풀어가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두율 교수의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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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의 원장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와 프랑스 사회과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LG경제연구원,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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