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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이라크 파병안 국회비준 처리를 앞두고 미 코넬대학 정치학과 서재정 교수가 글을 보내왔습니다. 서 교수는 기고문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라크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생산, 보유하고 있다는 거짓정보에 의해 시작된 것인만큼 곧 구성될 미국정부내 9인위원회의 최종 조사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한국정부는 파병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국회 본회의장 전경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정부가 이라크 파병문제를 재고해야 할 결정적인 전기가 왔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6일 이라크 정보오류를 조사할 9인위원회를 구성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 뉴욕타임즈의 평가대로 이라크 전쟁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한 정보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미국의 최고국가수반이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이른 현 상황은 한국정부가 이라크 파병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고 통고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다 아는 것과 같이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생산, 보유하고 있어 중대하며 임박한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공격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왔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연두교서에서 이라크가 니제르에서 우라늄을 구입하여 핵무기를 제조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작년 2월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가 생화학무기를 생산한다며 그 생산시설물 사진과 그림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주장의 진실성 여부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조지프 윌슨 전 대사는 이미 2002년 니제르에서 이라크의 우라늄 구입설을 조사, 이것이 위조문서에 근거한 거짓정보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를 CIA에 보고한 바 있다.

또 국제원자력기구도 이라크가 핵무기 생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고, 유엔의 이라크 감시단도 이라크의 생화학무기들은 이미 90년대에 파괴되었고 새로운 생산활동은 없다고 보고한 바 있었다.

미 국방부 산하의 국방정보기구(DIA)도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는 신뢰할 수 없는 이라크 망명객의 증언에 근거한 것이라는 '위조 증명'을 2002년 5월에 발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정부 안팎의 이러한 보고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생산하고 있었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주장이었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가 사용되거나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양되는 것을 사전봉쇄하기 위해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전쟁종료를 선언한 5월 미국은 이라크 조사단(ISG)를 구성했다.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고 이라크를 미군이 점령한 상태에서 이라크를 샅샅이 뒤져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전쟁에 반대하거나 회의적인 이들에게 여봐라는 듯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보여줄 참이었던 것이다. 미군은 유엔에서 파월 국무장관이 제시했던 것과 같은 트레일러를 발견했고, CIA는 이것이 바로 생물무기 생산시설이라며 의기양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색출은 오리무중에 빠져들었다. 생물무기 생산시설이라던 트레일러는 사실 생물무기와는 아무 상관없고 군사용 일기측정 기구를 위한 수소 생산시설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3천명이 넘는 이라크조사단원이 이전부터 의심하던 시설물은 물론 다른 모든 시설물들을 아무 거리낌없이 8개월이 넘게 샅샅이 뒤졌는데도 믿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는 8개월간 대량살상무기 색출을 총지휘하던 데이비드 케이 이라크조사단 단장이 사임을 하고, 1월 28일 상원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와 관련하여 "나를 포함해 우리가 전적으로 틀렸던 것 같다"는 폭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 청문회에서 "이라크 서베이 그룹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은닉여부를 철저히 조사했으나, 대량이든 소량이든 군사용으로 배치된 화학무기 증거를 못 찾았다"고 증언했다.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뿐만 아니라 미군의 선제공격 독트린과 부시 행정부의 도덕성마저도 치명적으로 타격한 ‘핵폭탄선언’이었다.

당황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2월 4일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사찰로 전쟁 전에 미국이 믿고 있던 이라크 무기보유가 확인되지 않았으나 그 반대도 입증되지 않았다”며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옹색한 변명은 이미 치명타를 입은 부시 행정부에 도움이 되지도 않았고 민주당과 여론의 공세를 막기에도 역부족이었다.

그 다음날인 5일에는 믿었던 조지 테닛 미국 중앙정보부 국장마저 5일 모교인 조지타운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에 정보분석가들이 이라크를 ‘긴급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정보분석가들은 전쟁 개시 전에 후세인이 생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이라크는 어떠한 생화학무기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며 이라크에 생화학무기가 없음을 인정했다. 이라크 전쟁에 다소 비판적이던 CIA를 위시한 정부 내 세력과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세력과의 불화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급해진 조지 부시 대통령은 5일 “(데이비드 케이) 조사단장이 말했듯이 우리는 그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무기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전격적으로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전쟁 전 정보와 전쟁 후 조사결과 사이의 중대한 불일치를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의 조사결과는 내년 5월쯤 발표하도록 하여 이 문제가 더 불거져 올 11월 대선에서 부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선제공격의 성격을 확실히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조치가 한국정부에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년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라크 파병을 약속한 바 있다.

파병의 정당성을 떠나서 이 약속이 현 정부에는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과 대통령 사이의 약속을 아무런 이유 없이 뒤집는다는 것은 외교관행으로 보나 한미관계라는 특수한 관계를 놓고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현실외교의 고민이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현실적 고민을 풀 실마리가 9인 위원회의 구성에 있다.

"한국정부는 대량살상무기라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이해하고 파병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 서재정 교수
현재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여부에 대한 중대한 불일치가 발생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불일치를 조사하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우리는 미국의 이러한 결정을 존중하며 동 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파병결정을 유보한다.“


외교통상부에서 이러한 선언을 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9일 국회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다면 행정부의 현실적 고민과 국민의 안위, 국가이익을 모두 챙기는 묘수가 될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에 있다. 그리고 너무도 뻔한 해결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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