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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실 향군회관 2층 그랜드볼룸을 꽉 메운 중년들.
ⓒ 이정근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던 사이버 세상이 침공받고 있다. 외계에서 온 혹성 인간에게 공격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의 변방에서 '컴맹'으로 서러움을 겪던 40·50대의 습격이다. "컴퓨터는 애들이나 하는 것이지"라며 국외자임을 당연시하고 방관하던 중·장년층이 대반격을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진을 치고 있던 포털사이트의 뉴스 댓글에서 중년의 목소리가 커졌다. 보수언론사의 댓글에서는 젊은이들이 소수로 전락했다. 진보적인 인터넷 언론사의 댓글에서도 장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게임이나 하는 장난감 정도로 컴퓨터를 바라봤던 중년들이 컴퓨터를 터득하고 인터넷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사이버 세상에서 외치는 중·장년의 목소리가 위력을 발휘했다.

변화를 재빠르게 포착한 것이 장사꾼들이다. 홈쇼핑 업체들은 중년과 노년용 상품을 확충하고 화면의 글씨 크기를 키웠다. 젊은이들보다 단위당 구매력이 높다는 점이 업체들로선 매력적이다. 늘어나는 매출고에 인터넷 쇼핑몰 업자들이 싱글벙글하고 있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처음 만났지만 정다운 모습이다.
ⓒ 이정근
우리나라는 자타가 인정하는 IT 강국이다. 초고속 통신망이 잘 갖춰진 데다, 3000만 명이 넘는 인터넷 인구를 자랑한다. 인구가 1000만 명도 안 되는 나라가 많은 것과 비교할 때 인터넷 이용자가 3000만이 넘는다는 건 가히 놀라운 일이다.

포털 사이트의 카페는 인터넷의 난장(亂場)이다. 없는 것이 없다. 오프라인의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중·장년들은 카페에서 솜씨를 갈고 닦아 언론사의 인터넷 뉴스 시장까지 공략하기 시작했다.

"카페 활동은 인생의 활력소"

지난 토요일(3일) 오후, 서울 잠실의 향군회관 2층에서 중년들의 카페 모임이 열린다기에 찾아가 봤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똬리를 틀고 있는 '4050우리세상'이라는 카페다. 전국적으로 회원이 3만2600명이라니 작은 카페는 아니다.

참석자들 모두 즐거운 얼굴이었다. 어디에서 이러한 응집력이 나온 걸까?

행사장에는 380여 명의 중·장년들이 모여들었다. 교통이 편리한 서울과 수도권 회원들만 모인 것이 아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왔다.

LA에서 왔다는 닉네임 '하늘목마'에게 물었다. "미국에서 참석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온라인에서 고국소식을 접하며 갈증을 느꼈는데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니 너무 좋아요. 오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광주에서 왔다는 여성 회원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정주부로서 참석을 결심하기까지 많이 고민했어요. 출발할 때는 소풍가는 초등학생처럼 설레는 기분이었고요. 대부분 오늘 처음 만나는 분들이지만 편안해요. 그동안 온라인에서 정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이름도 성도 모르고 닉네임으로만 통하니까 꼭 가면무도회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재미있어요."

카페 생활이 인생의 활력소가 되었고 카페 활동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도 나온다. 서울 강동구에서 왔다는 아이디 'anongs'는 카페 예찬론자다.

"처음엔 얼굴도 보지 않고 대화한다는 게 생경했고 닉네임을 사용한다는 것에서 '묻지마 관광'이 연상돼 거북했지만 오해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됐어요. 회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정을 쌓아간다는 점이 좋아요. 학교 때 친구보다 더 친한 친구가 생겨 옛 친구에게 미안할 정도에요.

다른 카페 산악회에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먹고 마시며 정상에 오르기 위한 등산 위주였지만 지금은 산 전체를 봐요. 동행한 전문가가 산새 한 마리, 이름 없는 들꽃 한 송이까지 설명해 주거든요. 카페 생활이 인생의 활력소가 되었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졌다는 것을 느껴요."

▲ 색소폰을 직접 연주하며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는 회원.
ⓒ 이정근

엄습하는 외로움, 사이버 평등 세상에서 달랜다

이것이 사이버 카페를 즐기는 40·50대의 현주소다.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세대들은 어느날 갑자기 자신을 뒤돌아 봤을 때 외로움을 느낀다. 배우자도, 2세도 모두 '내가 아닌 타(他)'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이 때, 마음을 잡아주는 것이 사각의 모니터라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카페에 들어가면 같은 세대로서,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중년 카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정년퇴직을 했거나 잠시 쉬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현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의사, 약사, 교사 등 전문직부터 예술인, 회사원, 자영업까지 다양하다. 현역 공무원이나 퇴직자들이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전자정부의 혜택을 받아 업무상 일찍이 컴퓨터를 접했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상의 친구 사이엔 성차별이 없다. 나이 차이가 나더라도 위계질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많이 배웠건, 적게 배웠건 가방끈 길이를 논하지 않는다. 돈이 많고 적음에 개의하지 않는다. 잘나고 못난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모든 이는 회원이라는 이름으로 평등하다. 이 평등 세상에 많은 사람이 매력을 느낀다.

가족이나 친척들과 있는 시간보다 학교 동창이나 고향 친구들과 같이하는 시간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호흡이 맞고 대화가 통하는 사이버 친구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편하고 즐겁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저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세대로서 정서가 통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중·장년층을 사이버 세계로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이러한 포털사이트의 동호회와 카페 문화가 가히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존의 가족이라는 개념을 대체할 수 있는 인터넷 가족(일명 '넷족')은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패러다임이다. 40·50대의 카페 활동은 그 중심에 서서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 회원들이 펼치는 장기자랑에 열광하는 중년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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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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