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8 06:52최종 업데이트 23.09.18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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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 권우성

 
최근 대통령실과 법무부, 검찰 등이 정보공개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해 관심이 쏠립니다. 검찰 특수활동비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 부부 저녁비용, 대통령실 직원 명단, 한동훈 법무부 장관 미국 출장 경비 등이 줄줄이 공개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원의 핵심 권력기관들에 대한 정보공개 결정은 국민의 알권리와 투명한 예산집행 등 '공익'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간 권력기관들이 국익과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정보공개에 미온적이었던 태도에 경종을 울린 것으로 평가됩니다. 대통령실과 검찰도 권위주의적 특권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일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의 고급식당에서 450만 원을 지출했다고 알려진 저녁식사 비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대통령 부부가 한끼에 수백만 원대 식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한국납세자연맹이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대통령실이 거부하자 소송으로 번진 사안입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지난해 6월 윤 대통령 부부가 서울의 한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 지출한 비용 내역도 공개하도록 했습니다.


당초 대통령실에선 '국가기밀'과 '경호상 문제 초래'를 정보공개 거부의 이유로 들었습니다. 재판부가 영화관람과 저녁식사가 국가기밀이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자, 대통령실은 이번엔 "해당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제 와서 비용지출과 관련한 정보가 없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정보공개가 공익적 차원에 부합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설령 대통령실 주장을 받아들인다해도 비용 내역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그 자체가 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노조와 시민단체에는 엄격한 잣대... 권력기관의 내로남불 

법원이 지난달 21일 대통령실 직원 명단을 공개하라고 한 판결도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우선시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대통령실은 애초 참여연대와 뉴스타파가 정보공개 청구를 하자 국가안보와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직원 명단 등이 공개되면 이익단체 로비나 청탁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정부 조직뿐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도 소속 직원의 이름과 직위, 업무를 공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습니다. 재판부도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는 공익에 크게 이바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당시는 대통령 비서실이 윤 대통령의 6촌 친인척 행정관과 친구 아들 등을 특혜채용한 의혹이 불거진 때였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 직원 2명이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관저팀에 채용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의혹 해소를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고, 직원 명단이 공개되면 논란이 해소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명단 공개는 대통령실에 대한 객관성 및 투명성을 확보해 국민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등 공익에 크게 이바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한동훈 장관이 지난해 미국 출장 때 사용한 경비 내역을 공개하라는 지난달 법원 결정도 판단 근거는 어떤 것이 공익에 우선하느냐는 점이었습니다. 법무부는 "국가안전보장, 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거부 사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의 예산감시와 투명성 제고 등 정보 공개로 얻는 공익적 가치가 크다"고 밝혔습니다. 한 장관은 판결 후 출장비 내역을 공개하겠다면서도 전임 법무부 장관의 출장 경비도 함께 공개하겠다고 전제를 달았습니다.

국민의 알권리와 투명한 예산집행을 우선하는 판결이 이어지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비춰 당연합니다. 정부는 지난해 말 투명성 강화의 일환으로 노조에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노조에는 과태료 부과에 나섰습니다. 시민단체의 국고보조금 부정 사용 의혹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의 문제 제기로 관련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노조나 시민단체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자신들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셈입니다.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한 권력기관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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