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9 11:57최종 업데이트 22.10.19 11:57
  • 본문듣기

지난 9월 21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 뉴욕 한 컨퍼런스 빌딩에서 한일 정상 약식회담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은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로 이 문제를 봉합하려 하고 있다. 이런 시도가 직면하게 될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이 최근 국내 보도들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 13일과 14일 국제연합(유엔) 회의에서 일본 대표단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주고받은 질의응답을 전하는 보도들이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가입국들의 인권 실태를 점검하는 자유권규약위원회 회의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피해자 및 유족을 위해 진행한 추가 조치가 있었는지',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 표명을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외무성과 문부과학성 관료들로 구성된 일본 대표단은 "2015년 12월 한일 외교장관 회의에서 이뤄진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본 것이며, 협정에 따라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단에 10억 엔을 1차로 출연했다"라면서 이 돈이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심리를 치유하는 데 사용됐다고 답변했다.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피해자 일부에게 사과 편지를 발송한 사실과 아베 신조 총리가 사과 입장을 전달한 사실도 거론했다. 일본 정부가 1990년대부터 진상규명 활동을 했다는 점도 함께 언급했다.

일본 대표단은 위안부 문제를 이런 자리에서 거론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자유권협약이 발효된 1979년 이전에 발생했으므로 자유권협약과 관련된 자리에서 논의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020년 회의 때도 나왔던 답변이다.

위안부 문제의 현주소
 

지난 17일 MBC는 "일본이 유엔의 인권 규약을 잘 이행했는지 심의받는 자리에서 위안부 피해자 보상과 공식 사과 문제 등에 진척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2년 전 답변을 되풀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 MBC

 
이처럼 일본 측은 할 일을 다 했다는 취지로 답변했지만, 문제 해결의 요체인 사과와 배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 합의에 즈음한 아베 신조 총리의 사과는 공식 성명이 아닌 전화 통화로 이뤄졌다. "어제 일로 모두 끝이니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는 그의 발언이 <산케이신문>에 보도되면서 그나마 그 사과도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진심을 담지 않은 사과라는 점이 그런 식으로 드러났다.

또 불법행위 인정을 전제로 하는 배상금 지급은 2015년 합의로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이 지급하겠다는 금전은 위로금이나 지원금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이런 명목으로 돈을 주고받으면 애당초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하려 한다는 것은 일본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책임을 면하는 쪽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대표단은 건성으로 답변하는 모양새지만, 일본이 유엔 무대에서 이 문제를 계속 답변해야 하는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대충 봉합하려 하는 한일 양국 정부 앞에 피해자나 한국 국민 외에 또 다른 산이 우뚝 서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유엔 등의 국제사회가 제기하는 질문에 대해 건성이든 아니든 일본이 계속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을 느끼게 된다.

일본은 1979년에 발효된 자유권협약과 관련해서는 위안부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고 2020년에도 답변했다. 그래 놓고도 2022년에 동일한 답변을 또다시 해야 했다는 것은 일본의 답변을 강제하는 힘이 작동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일 양국 차원을 떠나 이미 세계 문제가 되어 있는 위안부 문제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유엔 인권기구인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일본 정부에 처음 권고한 시점은 1994년이다. 피해자 김학순의 최초 증언이 있은 1991년 8월 14일로부터 얼마 뒤의 일이다. 이 위원회는 1994년 1월부터 위안부 문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한일 정부가 외면하는 문제를 수면 위로 계속 끌어올리는 힘이 국제사회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한국인들은 당사자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위안부 피해를 전시 성폭력으로 과감하게 부르지는 못한다. 그렇게 부르는 일도 있지만, 가급적이면 그런 표현을 삼가게 된다. 일제가 커다란 잘못을 범한 것은 사실이지만, 끔찍한 느낌을 주는 단어의 사용을 주저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지난 세기부터 전시 성폭력이란 용어를 '주저 없이' 사용했다. 1998년 8월 21일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지적한 게이 맥두걸 특별보고관 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문에서 이 용어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결의문에서 인권소위는 전시 성폭력을 비판하고 이것의 처벌을 위한 입법을 각국에 촉구했다.

유엔 인권소위가 전시 성폭력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배려하지 않아서가 아님은 물론이다.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짚고 최선의 해법을 찾자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1세기 들어 위안부 문제를 '범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 관한 2009년 제6차 정기심사에서 이 문제를 범죄로 지칭했다.

인류 보편적 기준
 

2016년 3월 11일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홈페이지에 실린 '오랫동안 기다려온 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이처럼 국제사회가 오래전부터 전시 성폭력이나 전쟁범죄로 다루는 이 문제를 한일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로 대충 봉합하려 하고 있다. 이 합의는 배상금 지급을 규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위로금 성격의 금전을 지급하도록 했다. 전시 성폭력이나 전쟁범죄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방식을 도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3개월 뒤인 2016년 3월 11일 제네바에 모인 유엔 인권전문가 그룹이 이 합의에 대해 내놓은 입장 표명이 있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홈페이지에 실린 '오랫동안 기다려온 위안부 희생자들에 대한 사과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글에서 그들의 입장 표명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인권전문가 그룹은 위안부 문제가 수십만 아시아 여성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한일 위안부합의는 수십만 여성의 인권침해에 관한 국가책임 기준에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뒤 전체 피해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한일 정부가 문제 해결에 도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십만 아시아 피해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므로, 한일 양국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체 피해자들을 함께 감안해야 한다는 인식이 인권전문가그룹의 입장에서 표출된다. 세계인의 문제이므로 해결 방식 역시 그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한일 양국의 합의가 전체 아시아 피해자들에게 법적 효력을 미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양국의 문제 처리는 그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된다. 양국이 사과·배상이라는 원칙적 방식에 입각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면 제3국 피해자들을 위한 좋은 선례가 되지만, 위로금이나 지원금 지급 등으로 무마하려 하면 제3국 피해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두 정부가 세계 피해자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유엔 인권전문가그룹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세계인의 문제가 되어 있으므로, 한일 두 정부가 세계적 여론을 무시하고 적당히 봉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양국 정부가 2015년 합의로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태도를 계속 보이게 되면,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확산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와 기시다 내각은 자신들이 이 문제의 공을 쥐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문제는 양국 간 현안이나 일제 식민지배 문제의 범위를 넘어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보편적 기준에 입각해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두 정부는 임기 내내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