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17 19:21최종 업데이트 24.03.1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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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브릿 공화당 상원의원이 바이든 국정연설 공식논평을 하고 있는 모습. ⓒ CNBC 유튜브 캡처

 
"이번 주 <에스엔엘 Saturday Night Live>(미국 NBC 풍자쇼)의 소재는 정해졌다." 

지난 7일 바이든의 2024 국정연설이 끝난 후 나온 소리였다. 소재는 바이든이 아니라, 국정 연설에 대한 공화당의 공식 논평이다.  논평은 국정 연설 후 야당에게 주어지는 기회로 국정 연설만큼이나 오래된 전통이다.


공화당의 공식 논평은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케이티 브릿이 맡았다. 42세로 역대 공화당 상원의원 중 최연소라 고령의 바이든과 대비를 이루었다. 이뿐 아니었다. 국정 연설 장소가 미 의회였다면, 공화당의 선택은 부엌이었다. 이성적이고 열정이 넘쳤던 바이든의 연설과 달리 브릿 의원은 떨리거나 울음을 참는 듯한 어투 등 감정 과잉을 보였다.

국민들이 받은 충격 "젠장,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이후  '기괴했다' '고등학교 연극이다' 등 조롱과 신랄한 비판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쏟아졌다. <롤링스톤>은 "젠장,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라고 제목을 뽑았다. ABC 방송국의 토크쇼 <더 뷰 The View>에 참가한 패널들은 브릿 의원을 향해 "약 먹어야겠다"고 했다. 혹은 "날을 잘못 택했다. 그녀는 '최악의 배우상'으로 이번 주 아카데미 시상식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금요일 미국 방송계를 한껏 달군 후 브릿의 공화당 공식 논평은 예상대로 SNL에 등장했다. 케이티 브릿 역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유명 여배우 스칼릿 조핸슨이었다. 공식 논평 때의 브릿 의원 모습으로 분장한 조핸슨이 선사한 장르는 공포물이었다. 미소와 살벌한 표정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오늘밤은 상원의원이 아니라 "무서운 엄마 역으로 오디션을 할 것이며" 제목은 "'이 나라는 지옥이야'라는 창작 독백극"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상원의원이 아닙니다. 저는 아내요, 엄마요, 그리고 쇼핑몰 주차장에서 자리싸움하는 가장 미친X"라고 소개했다.

조핸슨은 SNL에서 "저는 우리 아이들을 걱정합니다. 이게 여러분을 이처럼 이상한 텅 빈 부엌으로 초청한 이유예요. 공화당원들은 제가 여성 유권자에게 특히 호소하길 바라고, 여성은 부엌을 사랑하니까요." 낙태권 문제로 여성 유권자 지지율이 낮은 공화당이 지지를 얻기 위해 선택한 전략적 공간이 부엌이었다는 해석이다. 

브릿 의원의 여성과 부엌 설정은 환영받지 못했다. 금요일 여성 패널들이 이끄는 ABC 방송국의 토크쇼 <더 뷰>를 예를 들면, 누구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1940-50년대 가정주부를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설정하고 있다거나 "공화당은 레이건 (1980년대) 때에 머무는 듯하다"는 등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성의 달에 여성을 부엌에 앉혀 놓았다"는 냉소를 보이기도 했다.

부엌이라는 공간 선택은 그 이상으로 공화당의 포퓰리즘을 드러낸다. 브릿 의원은 부엌을 "자기가 살아온 기간(42세)보다 더 길게 정치인으로 살아온 바이든이 이해하지 못하는 곳"이라 했다. 수십 년 관료 엘리트 세계에 있는 바이든과 보통 가정의 간극을 선명하게 드러낼 곳이 부엌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엿보인다. 이는 사회를 1%의 엘리트와 99%의 서민의 대결구도로 파악하는 포퓰리즘과 맞닿는다.

엘리트가 이해하지 못하는 서민의 공간 부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브릿은 "가족끼리 까다로운 어려운 대화를 하는 곳"이자 "가족이 손을 잡고 신의 가이던스를 얻기 위해 기도하는 곳"이라 표현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제국을 엎은 애국자들의 핏속에 세워진 곳"임을 강조하며 "우리의 미래는 식탁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기독교 애국주의를 미래상으로 제시하며 부엌을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최고 여배우의 조롱 "엄마가 어떻게 미국을 경악시켰는지"
 

SNL에서 스칼릿 조핸슨이 케이티 브릿의 논평을 풍자하는 모습. ⓒ SNL 유튜브 캡처

 
SNL의 스칼릿 조핸슨은 이를 되받는다. 내일 식탁에 올라올 소재는 "엄마가 (오늘) 어떻게 전 미국을 경악시켰는지에 대해서 일 것"이며, 애들을 재울 때 "우리는 뼈로 만든 성속에서 애국자들의 피에 젖어있단다"라고 할 것이라 했다. 또, 그 날 브릿 의원이 했던 십자가 목걸이를 그대로 목에 건 조핸슨은 목걸이를 소개하며 온라인 쇼핑 광고처럼 능청스럽게 교회부터 클럽까지 착용할 수 있다며 가격까지 화면에 넣어가며 광고했다.  

정치적 설정이 과하게 들어간 브릿 의원의 부엌은 불편했다. 여성과 부엌 설정은 시대착오적이고 부엌을 둘러싼 엘리트와 서민의 대립구도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종교적 가치와 애국주의가 주입된 부엌은 경직되었고 미래가 시작된다는 해석엔 숨이 턱턱 막혔다. 브릿이 불러온 기괴함을 SNL은 공포로 설정했다.      

SNL 쇼에서 공포의 극대화는 조핸슨이 "오늘밤 차가 준비되었다"며 수저로 찻잔을 소리 내어 젓는 장면이었다. 이는 수저와 찻잔 부딪치는 소리로 최면을 걸며 인간의 의식을 마비시켰던 공포 영화  <겟아웃> (2017)의 한 장면이다. 이후 조핸슨은 "우리가 보고 있다. 우리가 듣고 있다. 우리가 당신들의 냄새를 맡고 있다. 우리는 냉장고를 통해 당신 부엌 안에 있다"고 했다. 조핸슨의 대사는 브릿 공식 논평 중 "우리가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라는 부분의 패러디다.

"바이든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미국인들"을 위로하려는 의도였으나 문제는 목소리였다. <더 뷰>의 한 패널은 그 느낌을 "(브릿 의원이) 부엌에서 칼을 뽑아 처키처럼 나를 마구잡이로 찌르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표현했다.

미국 공화당의 현주소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5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열린 슈퍼 화요일 선거의 밤 파티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브릿은 미국 서민들이 부엌에서 하는 이야기의 예시로 인신매매를 들고 왔다. 바이든의 국경 문제를 비판하기 위한 자극적인 소재였다. 생존자로부터 직접 들었다며 인신매매 현실을 몇 가지 말한 후 "엄마로서 그 사람이 내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뒤이어 격앙된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 단어 한 단어를 끊어가며 "바이든의 국경 정책은 수치스럽다"고 말했다.

조핸슨은 이 부분을 이렇게 받아친다. "이야기는 다 사실이다. 사건이 일어난 해, 사건이 일어난 장소, 그리고 사건이 일어났을 때 미국 대통령만 빼고"라 말했다. 브릿이 언급한 근거가 틀렸다는 조롱이다.  

조핸슨의 지적대로 언급된 인신매매는 바이든의 국경 정책과 관련이 전혀 없었다. 수십 년 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그 당시 대통령은 바이든이 아닌,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였다. 그리고 사건은 미국이 아닌 멕시코에서 발생했다.

이 같은 사실을 두고 미국 언론은 들끓었다. <뉴욕타임스>는 "이주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수사법을 사용하며 바이든이 이런 사태를 미리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전달했다고 지적했다. CNN은 이야기의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하며 사실 확인을 했다.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폭스뉴스>조차 케이티 브릿을 화상으로 연결, "언급한 사건이 바이든 행정부와 관련이 있느냐"라고 물을 정도였다. 브릿 의원은 질문과 무관한 말을 하며 답을 회피했다.    

조롱거리가 되어버렸지만 브릿의 공식 논평은 현재 공화당 주류의 모습이다. 한때 재정적 보수주의와 세계주의를 외쳤지만 현재는 반이주자 정서와 포퓰리즘의 힘에 기대 기독교 애국주의로 기울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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