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05 07:20최종 업데이트 24.02.0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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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5개월여의 끈질긴 추적. 검찰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벌여온 하승수 변호사의 '추적기'를 가감없이 전합니다.[편집자말]
지난해 6월 23일, 필자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검찰 예산 집행자료를 수령하러 갔다. 그런데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황당한 일들을 겪게 되었다. 특수활동비 자료는 집행일자와 집행금액만 확인할 수 있게 가려져 있었다. 그것까지는 법원 판결에 따른 것이라고 치더라도, 상당한 기간의 자료가 불법폐기되어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드사용이 원칙인 특정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도 자료가 엉망이었다. 신용카드 영수증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리게 복사된 것이 절반이 넘었다. 게다가 카드영수증에서 '음식점 상호'와 '카드 결제시간'을 가리기까지 했다.

법원 판결 무시한 엉터리 자료 공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2023년 7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검찰 특활비 관련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법원 판결문에서 특정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의 경우 개인식별정보 정도는 가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음식점 상호와 카드결제시간은 개인식별정보가 아니므로 당연히 공개대상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마음대로 음식점 상호와 카드결제시간을 가리고 카드영수증을 복사한 것이었다.

3년 5개월간의 소송을 통해 대법원까지 확정판결을 받아서 자료를 수령하러 간 것이었는데, 자료가 이런 상태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수많은 기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자료를 받아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자료수령 현장에 있던 대검찰청 운영지원과장에게 '신용카드 영수증에서 음식점 상호와 카드결제시간을 가린 것이 누구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따져 물었다. 그리고 '이것은 법원 판결문을 무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방해한 것이니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될 수 있는 행위인데, 이런 사실을 검찰총장도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회의를 통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답을 했다. 도대체 그 회의의 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때부터 답변을 회피했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장관(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7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관련 질문이 나오자 "영수증을 오래 보관하다 보면 잉크가 휘발된다, 6~7년 되고, 오래된 것이니까 잉크가 휘발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카드영수증 원본대조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당시 한 장관은 카드영수증의 음식점 상호와 결제시간을 가린 부분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을 회피하면서 사실상 검찰을 비호했다.

검찰 특정업무경비 총 466억원...지방지청, 회식비로 유용 확인 

도대체 검찰은 왜 이런 식으로 자료를 공개한 것일까? 왜 음식점상호와 결제시간을 결사적으로 감추려고 한 것일까? 그 의문은 최근에 풀렸다.

대검찰청와 서울중앙지검의 경우에는 아직도 특정업무경비 자료를 매우 일부만 공개해서 검증이 어려운 상태이지만, 소규모 지청의 특정업무경비 자료는 비교적 최근 자료까지 수령해서 검증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검찰 예산 검증의 전문가가 된 뉴스타파 기자들이 고양지청, 천안지청, 충주지청에서 매우 심각한 특정업무경비 유용사례를 발견했다.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가 도대체 어떻게 다르지?' 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구분기준은 '기밀성 여부'이다. 특수활동비는 특별히 '기밀유지'가 필요한 수사나 정보수집활동에 쓸 수 있는 예산항목이다. 반면 특정업무경비는 일반 수사활동에 쓸 수 있는 예산항목이다. 그러니까 '기밀유지'의 필요성이 있는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특정업무경비 규모는 특수활동비보다 훨씬 크다. 2023년 검찰 몫 특정업무경비는 466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더 늘어났다. 어쨌든 특수활동비든 특정업무경비든 간에 수사활동이나 정보수집활동에만 써야 한다.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있는 간담회, 회식 등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지침이나 대검찰청 예산집행매뉴얼에도 '특정업무경비는 업무추진비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고양지청, 천안지청, 충주지청에서 특정업무경비를 '전입검사 간담회' 등 회식비로 사용한 것이 드러났다. 심지어 천안지청의 경우에는 '음악동호회' 회식비로 특정업무경비를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수사에 사용해야 하는 특정업무경비를 회식비로 유용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는 심각한 예산 오·남용이다. 

대검·서울중앙지검, 특정업무경비 자료공개 계속 지연

게다가 특정업무경비를 회식비로 유용한 수법도 죄질이 매우 나쁘다. 가령 검사들이 비싼 식당에서 회식을 해서 85만 원이 나왔으면, 45만 원과 40만 원으로 쪼개서 두 번 결제하는 것이다. 일명 '쪼개기 결제'이다. 게다가 그 중 한 건은 업무추진비로 지출하고, 다른 건은 특정업무경비로 지출하는 것이다. 당연히 서류상으로 특정업무경비는 수사활동에 쓴 것으로 처리했다.

대표적인 예로, 2023년 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은 경기도 파주의 한 장어가게에서 '전입 검사들과 간담회'를 했다. 이날 지청장을 비롯한 검사들은 장어 특대 10만 원짜리 4개(40만 원), 쏘가리 매운탕 10만 원짜리 3개(30만 원), 여기에 '장어 특 한 마리'(5만 원)를 추가하고, 소주와 맥주를 합해 13병을 섞어 마셨다. 총 회식비는 85만 2천원이었다. 그런데 카드 결제를 두 번에 나눠서, 한 번은 지청장 업무추진비로 45만 2천 원을 지출한 것으로 하고, 나머지 40만 원은 특정업무경비에서 지출한 것으로 처리했다. 수사에 써야 할 특정업무경비 40만 원을 회식비로 유용한 것이다.
 

2023년 2월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은 경기도 파주의 한 장어가게에서 '전입 검사들과 간담회'를 했다. 총 회식비는 85만 2천원이었다. 그런데 카드 결제를 두 번에 나눠서, 한 번은 지청장 업무추진비로 45만 2천 원을 지출한 것으로 하고, 나머지 40만 원은 특정업무경비에서 지출한 것으로 처리했다. ⓒ 하승수

 
이런 식으로 특정업무경비를 유용한 사례가 얼마나 많을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고양지청, 천안지청, 충주지청은 비교적 소규모 지청인데다가 최근까지의 특정업무경비 자료를 공개했기 때문에 일부 영수증에 대해서라도 검증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 지검의 경우에는 음식점상호와 결제시간을 가렸기 때문에 검증이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검찰조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은 특정업무경비 자료공개를 계속 지연시키고 있다.

그러나 3개 지청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검찰 내부에는 특정업무경비를 회식비로 유용하는 행태가 광범위하게 퍼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음식점상호와 카드결제시간을 고의적으로 가렸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식당에서 같은 시간대에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를 결제한 것이 드러나면, 검증대상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검찰 깃발 ⓒ 연합뉴스


이런 실태를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몰랐을까? 그 자신도 검찰조직에 몸담고 있었고,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를 사용해 왔을 뿐만 아니라 대검 정책기획과장 등 검찰조직의 핵심보직을 거쳐왔다. 그런데 과연 이런 실태를 모를 수 있을까? 몰랐다면 자기 조직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불법도 모르면서 다른 기관과 기업만 쥐 잡듯이 수사를 한 '무능'이고, 알았다면 불법을 묵인한 것이다.

게다가 정보은폐를 위해 법원 판결문을 위반한 검찰의 행태를 사실상 비호하기까지 했으니, 법무부장관이 법치주의를 어지럽힌 것이다. 그가 지금은 여기에 대해 뭐라고 궤변을 늘어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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