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3 07:07최종 업데이트 23.11.1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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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5개월여의 끈질긴 추적. 검찰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벌여온 하승수 변호사의 '추적기'를 가감없이 전합니다.[편집자말]

검찰이 시민단체에 제출한 특활비 지출 증빙 자료. ⓒ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기사 수정 : 13일 오전 10시 48분]  

공무원들이 야근하고 고생한다고 해서 상급자가 불러서 '돈봉투'를 주는 일이 가능한가? 과거에는 그런 일이 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대다수 공무원 조직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명절 상여금이나 수당도 법령과 규정에 따라 계좌로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떡값 '돈봉투' 돌리는 정부 조직 

그런데 법령과 규정에 아무런 근거가 없음에도, '돈봉투'를 돌리는 정부 조직이 있다. 바로 검찰이다. 명절을 앞두고도 돌리고, 연말에도 돌리고, 지검장이 퇴임하거나 전보를 가게 되더라도 돌린다. 공무원에게 수당, 상여금, 격려금, 포상금을 지급하려면 모두 법령과 규정에 근거해야 하는데, 검찰은 금고에 있는 현금을 그냥 꺼내서 '돈봉투'를 돌리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봐도, 소위 '떡값'이다. 그동안 수고했다고 상급자가 주는 돈인 것이다. 큰 수사를 해서 고생했다고 돈봉투를 돌리는 것도 '떡값'의 일종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떡값'은 명절을 앞두고 돌리는 것이지만, 검찰조직에서는 명절이 아닌 때에도 수시로 돈봉투가 돌려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걸로 회식도 한다는 것이 일선 검찰청 직원의 솔직한 얘기다. <뉴스타파> 기자들이 정보공개자료를 수령하면서 들은 얘기이다.

시민단체들과 <뉴스타파>가 검찰로부터 공개받은 서류 대부분은 먹칠이 되어 있어서 판독이 불가능했지만, 판독이 가능했던 극히 일부분의 서류에서 발견한 것은 '떡값'과 관행적인 나눠먹기가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이 돈의 원천이 '특수활동비'라는데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지침'에 따르면, 검찰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사건수사에 써야 하는 돈이다. 그리고 특수활동 실제 수행자에게 필요시기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돈이다. 검찰총장이나 일선검찰청장들이 현금으로 돈봉투에 넣어 '떡값'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돈인 것이다. 

대검 '집행내용 확인서 생략' 이용해 현금 관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0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법무부 종합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또한 특수활동비도 현금사용을 자제하라는 것이 기획재정부 지침의 내용이고, 검찰도 2017년 4월 '돈봉투 만찬'사건이 터지자 2017년 9월 검찰총장 명의의 내부 공문으로 '카드 사용을 많이 하고 현금사용을 최소화'하라는 방침을 전국의 검찰청에 내려보냈다. 그러나 검찰총장 스스로도 이런 지침과 방침을 지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돈봉투'를 쉽게 돌리려면, 특수활동비를 현금화해서 금고에 넣어두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검찰청의 경우, 특수활동비를 관리하는 대검 운영지원과 직원이 '집행내용 확인서 생략'이라는 제도를 악용해서 거액의 현금 돈다발을 검찰총장 비서실에 건넸다. 그리고 검찰총장 비서실에서 이를 금고에 넣어두고 검찰총장 마음대로 써 온 것이다.

'집행내용 확인서 생략'이라는 것은 집행내용을 기록해 두는 것조차 어려운 극도의 비밀수사에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데, 대검찰청은 이를 검찰총장 비서실로 현금다발을 옮기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검 운영지원과에서 검찰총장 비서실로 옮겨진 현금다발이 2018년에만 51억 원이 넘고, 2019년에도 46억 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연말에 잔액이 남으면 반납해야 하는 국고금관리법 시행령의 규정도 어기고, 비밀리에 잔액관리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갑자기 며칠 전부터 일부 언론에 '마약수사에 특수활동비가 필요한데, 민주당이 삭감하려고 한다'는 뜬금없는 기사가 나왔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마약수사에 특수활동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은 '특수활동비는 검찰총장과 일선 검찰청장들이 명절, 연말, 퇴임(이임전), 특정 사건 수사가 마무리되었을 때 '떡값' 돈봉투로 사용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나눠먹기 식으로도 써 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더 심한 일탈도 발생해 왔다. 그야말로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공기청정기 렌탈비, 휴대폰 요금, 기념사진 촬영비용으로 쓴 사례도 나왔고, 일부 전직 검사의 경우에 특수활동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것이다. 그리고 현금수령증도 없거나, 장부와 영수증 등이 불일치하는 일도 발생해 왔던 것이다. 어차피 법령, 지침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써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했으니, 재정에 대한 통제나 규율이 제대로 작동했을 리가 없다.
  
필요한 수사비, '특정업무경비'로 써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특활비TF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런데 이렇게 기밀수사에 써야 할 특수활동비를 엉터리로 써 온 검찰이 지금 '마약수사' 운운하면서 연간 80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계속 달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얘기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검찰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고, 마약수사든 다른 수사든 필요한 수사비가 있다면 카드로 쓰게 하는 것이다.

수사에 사용할 수 있는 '특정업무경비'라는 예산항목이 따로 있다.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의 실질적인 차이는 현금으로 쓸 수 있는 예외가 인정되느냐, 카드로 써야 하느냐이다. 따라서 마약수사를 하든 다른 수사를 하든 필요한 수사비는 특정업무경비 카드로 쓰면 될 일이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검찰이 직접 정보원에게 현금을 줄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만약 진짜 그렇게 써야 하는 돈이 있다면, 그 액수만큼만 놔두면 될 것이다. 한동훈 장관이 2억 7500만 원은 마약수사에 써야 한다고 우기는 모양인데, 그러면 검찰 특수활동비는 2억 7500만 원만 남겨두면 될 것이다. 물론 마약수사에 그만큼의 현금이 필요한 이유는 검찰이 증명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국민세금을 돈봉투에 넣어서 자기들끼리 돌리는 행태를 더 이상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검찰 특수활동비와 관련해서 그동안 저질러진 각종 범죄들과 세금 오·남용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야당들은 즉시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도입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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