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30 07:09최종 업데이트 23.10.3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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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5개월여의 끈질긴 추적. 검찰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에 대한 정보공개소송을 벌여온 하승수 변호사의 '추적기'를 가감없이 전합니다.[편집자말]
나올 얘기는 거의 나왔다.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상황이 그렇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이원석 검찰총장이 '검사들이 야근하면서 얼마나 고생하는데 돈 몇 푼 가지고 그러느냐'는 식의 얘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본질 흐리는 검찰 
 

이원석 검찰총장이 10월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심우정 차장검사와 귀엣말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첫째, 반박하지 못하니까 본질을 흐리고 정서에 호소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재벌총수를 비롯한 경제범죄자들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 '내가 국민경제를 위해 얼마나 기여해 왔는데', '내가 밤잠도 못자고 기업경영을 고민해 왔는데' 같은 얘기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명백한 범죄를 봐준다면, 그 나라가 법치주의 국가일 수 없다.

둘째, 여전히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특활비가 '돈 몇 푼'인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잘 관리하고 있다던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영수증(현금수령증)조차 없이 지출된 특수활동비가 대검찰청에서만 2억 원에 달한다. 2억 원이 '돈 몇 푼'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4번의 명절(추석, 설)을 앞두고 부하검사들에게 돌린 특활비가 무려 2억 5천만 원이다. 그 외에도 격려금 명목으로도 숱하게 특활비를 뿌린 정황들이 나왔다. 그 중 일부는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던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받았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것이 '돈 몇 푼'인가?

그리고 야근한다고 상급자가 마음대로 '돈 몇 푼' 주는 일이 공무원 조직에서 가능한 일인가? 그런 조직이 건강하고 떳떳한 조직인가?

야근하는 검사들이 안 됐으면, 합법적인 수당을 늘려주는 것이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하지 않고, 돈봉투 주는 사람 마음대로, 누구는 많이 주고 누구는 적게 주는 것이 공정한 일인가? 그것이 정상적인 공무원 조직에서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그렇게 주는 돈봉투는 불법적인 것이다. 비교적 소액의 돈봉투를 가끔 받았을 형사부, 공판부 검사들이야 무슨 돈인지도 모르고 받았을 것이다. 그들을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돈봉투를 나눠주는 검찰총장, 검사장, 검찰간부들은 알았을 것이다. 기밀수사에 써야 하는 돈을 '떡값'이나 '격려금'으로 불법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 돈을 자주 많이 받은 '잘 나가는' 특수부 검사들도 그 돈이 '불법'이라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사적 유용은 없었을까?

게다가 돈봉투가 중간에 사적으로 유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에 공수처에 고발된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경우가 그렇다.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자신이 근무하던 검찰청 옆 은행에서 여러 차례 현금으로 수백만원대의 뭉칫돈을 입금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 현금이 특수활동비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과거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의 지인인 양아무개 전 검사의 경우 '부장검사 시절 받은 특수활동비를 모아서 빚갚는데 썼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었다.

'명절떡값', '연말 떡값', '격려금' 등이 지금까지 드러난 검찰 특수활동비의 일상적인 지급패턴이다. 이렇게 뿌려진 돈봉투가 사적으로 유용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따라서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의, 일각일 수밖에 없다.

불법을 감추기 위해 저질러진 또 다른 불법들
 

2020년 2월 20일,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광주고등·지방검찰청을 방문,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윤 총장은 지방검찰청 격려 방문을 이어가고 있었다. ⓒ 연합뉴스

 
2017년 상반기까지의 특수활동비 자료가 대다수 검찰청에서 불법폐기된 것도 수많은 불법이 있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정상적으로 사용했으면, 자료를 불법폐기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필자가 정보공개소송을 제기했을 때, 수천쪽의 자료가 있었음에도 '자료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수많은 불법을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 현직 대통령도 관련되어 있다. 검찰이 법원에 거짓말하던 당시의 검찰총장이 윤석열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나쁘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또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더 나쁜 일이다. 그것이 공무원조직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욱 나쁘다.

또한 특수부 검사출신인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이원석 검찰총장은 특수활동비를 주고 받는 자리들을 거친 사람들이다. 이원석 총장은 2017년 4월에 있었던 '돈봉투 만찬' 사건에 참석해서 돈봉투를 받았던 이 중에 한 사람이다. 과연 그 때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각종 불법의혹들에는 현직 대통령과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이 모두 관련되어 있다.

2017년 자유한국당보다 못한 민주당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검찰 깃발 ⓒ 연합뉴스

 
2017년 11월 27일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은 소속의원 113명이 공동으로 '국가정보원 및 검찰 특수활동비 부정유용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당시에 진행되던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사에 반발하여 의원총회를 거쳐서 당론으로 발의한 법률안이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구체적인 불법들이 팩트로 드러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과감하게(?) 특별검사 법안을 발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민단체들과 독립언론의 노력으로 검찰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불법의혹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다. 그런데도 왜 야당인 민주당이 머뭇거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각종 불법의혹이 제기된 지 한참 후인 얼마 전에야 민주당에서 '검찰이 전담수사팀을 꾸려서 수사하지 않으면 공수처 고발과 특별검사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이 전담수사팀을 꾸릴 리도 없고, 지금의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이 관련된 사안을 수사할 능력과 의지가 있을 리도 없다.

결국 특별검사 도입만이 답이다. 이미 국민 5만 명이 서명해서 '검찰 특수활동비 국정조사와 특별검사 도입을 요구하는 청원'도 국회에 제출한 상황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2017년 자유한국당의 과감함을 절반이라도 따라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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