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2 17:39최종 업데이트 23.09.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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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홍범도는 그 뒤 일본의 보복 공세에 밀리는 과정에서 1921년 러시아 땅에서 자유시 참변을 겪었다. 러시아 측의 무장해제 요구를 거부하는 한국 독립군이 학살을 당하는 장면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 뒤 1937년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됐다가 6년 뒤 생을 마감했다.

촛불혁명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던 2021년 8월 15일, 홍범도는 고국으로 귀환했다. 이날 그의 유해가 서울공항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봉오동전투 및 청산리대첩 101주년이 되는 해에 죽어서나마 이런 감격을 누렸다.


하지만 그는 불과 2년 만에 서울 태릉에서 '육사참변'을 겪고 있다. 지금 그의 역사는 독립운동의 역사가 아닌 공산주의의 역사로 '강제 이주'되고 있다. 고국으로 귀환한 그가 또다시 고국과 먼 곳으로 밀려가고 있다.

죽어서도 일본의 힘에 밀려서... 홍범도의 수난
 

홍범도 장군(연합뉴스 자료사진). ⓒ 연합뉴스

 
홍범도가 육사에서만 그런 수난을 겪고 있는 게 아니다. 해군 홍범도함을 개칭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란도 있다. 대전광역시에서는 국립대전현충원 인근의 도로명인 홍범도장군로를 바꾸려는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인 이장우 대전시장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만약 홍 장군의 공과 과를 추적해 과가 훨씬 크다면 홍범도장군로도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우리 국민들은 홍범도가 독립운동 과정에서 공산주의 진영의 협조를 받은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다. 국민들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그런 사실을, 국민의힘 정권은 '과'로 규정하며 홍범도장군로마저 폐지하려 하고 있다.

고국으로 귀환한 홍범도가 자유시참변 102년 만에 겪는 이 같은 참변의 진원지는 외형상 윤석열 정권이다. 하지만 일본 역시 그 진원지다.

윤석열 정권이 일본과 동맹 수준의 군사협력을 맺으면서부터 일본의 힘이 다시 밀려 들어오고, 그 와중에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들과 더불어 홍범도 같은 항일전사들이 시련을 겪고 있다. 이 시련의 배후에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힘이 존재한다. 102년 전에 일본의 보복 공세에 밀려 자유시참변을 겪고 소련 쪽으로 휘말려 갔던 홍범도가 지금 또다시 일본의 힘에 밀려 공산주의자 낙인을 받으며 떠밀려 가고 있는 것이다.

홍범도를 우리 역사에서 추방하는 이 같은 흐름을 저지하지 못하면, 러시아 땅에서 전개된 무장 항일투쟁이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사라지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에 더해, 감정상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더욱 황당한 상황과도 맞닥트릴 수 있다. 홍범도의 투쟁을 러시아 항일투쟁사로 편입시키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해사에 눈독 들이는 러시아 
 

나치 독일 승전 75주년을 기념하는 승리의 날에 러시아 카잔에 공개된 소련 군인 동상. 2020.5.9 ⓒ 연합뉴스

 
중국이 동북공정을 벌인 목적 중 하나는 만주 지역을 중국 내륙과 완전히 통합시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이 지역 소수민족의 역사를 중국 한족의 역사 속에 무리하게 편입시키고 있다.

그런 만주 지역과 맞닿는 곳이 러시아 연해주다. 연해주를 바라보는 러시아 정권의 시선은 만주를 바라보는 중국 정권의 시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러시아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연해주 땅은 중국 동북공정 이상의 역사공정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다.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통해 극동아시아에 진출한 것은 17세기다. 중국 내륙의 왕조들이 만주 지역과 교섭한 기간과 비교할 때, 러시아가 연해주와 교류한 기간은 훨씬 짧다. 모스크바에서 거리가 먼 데다가 자국에 편입된 기간도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 동북공정 이상의 역사공정을 연해주를 상대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 같은 '러시아 동남공정'이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징후는 이미 현실로 드러나 있다. 대조영과 발해왕국에 대한 러시아 학자들의 관심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고구려 발해 연구> 제74집에 '최근 러시아의 발해사 연구 동향과 과제'라는 논문을 기고한 스토야킨 막심 국립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은 "2010년부터 현재까지의 자료를 크게 단행본(6편), 학술지 논문(152편), 발표문(약 42편)으로 분류하여 해당 기간 발해 연구의 현황, 특징과 과제를 규명하였다"라고 자신의 논문을 소개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러시아 학계에서 상당량의 연구 성과가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이전 시기보다 학술지 논문과 발표문의 수량도 상당히 증가하였는데, 이는 발해 연구의 발전 수준을 보여준다"라고 그는 평가했다.

러시아 학계가 이처럼 발해사에 대해 비교적 높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명확하다. 발해 영토 중 상당 부분이 지금의 러시아 땅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고구려사에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러시아도 발해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2006년에 <백산학보> 제76호에 실린 한규철 경성대 교수의 논문 '발해사 연구의 회고와 전망'에 "북한과 중국·러시아는 현대사의 한 부분이 발해 지역이었다는 데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자국사의 입장에서 다루려 하고 있다"라는 문장이 있다.

러시아가 발해사를 자국 역사로 다루려 한다는 이런 문장에 대해 역사학계는 이미 익숙해 있다. 러시아 학계가 자국 역사를 연구한다는 마인드로 발해사를 대한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애착을 보였는지는 1992년 11월 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민족사의 재조명' 국제심포지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날 공개될 송기호 서울대 교수의 발표문 '연해주의 발해 유적 연구동향'을 요약한 그달 4일 자 <동아일보> 기사 '중-러, 발해사 자국 역사 편입 시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러시아의 발해 연구는 19세기 동양학 연구자들에 의해 시작돼 현재 소련과학원 원동학센터가 주도하고 있다. 러시아 학자들은 발해가 중국이나 일본에 종속돼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독립된 주권국가였음을 실물자료를 통해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이 발해를 독립된 주권국가로 취급해 중국사에서 분리한 것은 결국 자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지닌 것으로서 발해사가 한국사에 속한다는 우리 입장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발해 영토 상당 부분은 러시아 경내에 있다. 그래서 발해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서 러시아 학계는 남북한 학계보다 훨씬 앞서 있다. 역사학 자료인 사료를 많이 보유한 쪽이 역사 연구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 사료 측면에서 열세에 놓인 남북한이 그나마 연구를 게을리하면, 훗날 발해사가 소련 역사로 공인될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

홍범도의 업적, '러시아 항일투쟁사'로 만들 건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2023년도 제26회 국무회의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과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정권이 지금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하면, 홍범도의 항일투쟁사 역시 지금과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항일투쟁은 한민족과 러시아·중국의 연대 속에서 전개됐다. 그래서 항일투쟁 역사에 대해서는 남북한뿐 아니라 러시아도 지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 사이에 중복되는 항일투쟁에 대해서는 러시아도 소유권을 주장할 여지가 있다.

홍범도는 일본의 압력에 밀려 러시아 경내로 들어간 뒤 자유시참변을 겪고 그 뒤 소련 땅을 전전했다. 자유시참변 6년 뒤인 1927년 10월에는 소련공산당에도 입당했다. 소련 땅에서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자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소련 현대사 및 소련의 항일투쟁과 겹치는 홍범도의 역사는 러시아 학계에 의해 러시아 항일투쟁의 역사로 윤색될 소지가 없지 않다. 홍범도의 항일투쟁이 한민족의 것으로 적극 부각되지 않으면, 모스크바와 극동 지역의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러시아 정권에 의해 그의 역사도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그가 활동한 무대가 옛 발해 땅이라는 점도 러시아 학계에 의해 활용될 수 있다.

사실 이런 왜곡은 윤석열 정권에 의해 이미 시작됐다. 윤석열 정권은 엄연한 한국 독립투쟁의 일부인 홍범도의 투쟁을 소련 공산주의 투쟁으로 왜곡시키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도 하는 이런 일을 러시아 학자들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국이 시인이자 항일투사인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왜곡되게 소개하는 일이 자주 보도된다. 이런 일이 홍범도에게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육사에서 홍범도 흉상이 제거되고 해군에서 홍범도함이 사라지고 대전에서 홍범도장군로가 증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홍범도가 한국에서 잊혀 가면, 홍범도가 러시아인들에 의해 러시아 항일투사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홍범도가 러시아 동남공정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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