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4 06:52최종 업데이트 23.09.0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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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국무총리가 8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무위원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싸우라"고 당부한 뒤 총리와 장관들의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존재감 없이 '식물총리'라는 평을 받던 한덕수 총리가 싸움닭으로 변신했고, 장관들도 야당 의원들의 공격을 맞받아치는 모습입니다. 이런 변화에 "할 말을 한다"는 일부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버티거나 되레 역정을 내는 행태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눈에 띄게 달라진 한덕수 총리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사람은 한 총리입니다. 최근 국회 답변에서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자주 연출됩니다. 국회 예결위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불출석을 두고 야당이 맹비난하자 한 총리는 "국무위원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박했고, 순직 해병 수사 외압 의혹 관련 질의에는 "그건 의원님의 희망이다. 의원님 말씀은 다 틀렸다"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한 총리는 야당 의원들로부터 "국회에 싸우러 나왔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한 총리는 과거 국회에 답변자로 나설 때면 말을 흐리며 얼버무리곤 했습니다. 국정 전반을 장악하지 못하고 뒤늦게 "신문을 보고 알았다"는 답변으로 '신문총리'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웃으며 농담을 해 '농담총리'라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목소리에 힘을 싣고 야당 의원들 질의에 적극 응수하고 있습니다. 되레 야당 의원을 향해 훈계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한 총리 존재감이 높아질 걸로 보는 시각은 여권 내에서 거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의 강도높은 채근에 마지못해 부응하는 측면이 크다는 겁니다. 실제 요즘 정치권에선 한 총리에 대해 '수난총리'라는 말이 따라다닙니다. 큰 일이 터지면 대통령 대신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한다고 해서 붙은 별칭입니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에서 한 총리가 변기에 묻은 오물을 직접 휴지로 닦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됐습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윤 대통령이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자 대통령을 대신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한 것도 한 총리였습니다.

장관들의 고압적인 답변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발언으로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선거법 위반 논란과 관련한 도발적인 답변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원 장관은 선거 중립 의무 위반에 대한 야당의 사과 요청을 일축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자신에게 빗대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습니다. 장관을 대통령과 비교하는 게 격이 맞지 않고 내용도 차이가 있는데도 "지지 말고 전사가 돼라"는 윤 대통령의 말을 충실히 이행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치권에선 가뜩이나 장관들 사이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따박따박 화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로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장관들 답변이 당연시될 거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 장관은 지난주 국회 예결위에서 야당 의원이 "공산주의자냐"고 몰아세우자 "침소봉대하지 말라"고 치받았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명박 정부의 언론 대응 문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편집인에게 전화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팩트가 틀렸는데 왜 자꾸 비틀어 질문하느냐"며 쏘아부쳤습니다.  

전문가들은 총리와 장관들이 국회에서 국민을 대표한 의원들의 질의에 성실하게 답변하는 것은 의무라고 지적합니다. 애초 윤 대통령이 정기국회를 앞두고 국무위원들에게 "밀리지 말고 싸우라"고 독려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말합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해야 할 상황에서 공격을 지시한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국정 운영을 책임진 정부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올해 정기국회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난타전이 펼쳐질 것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충재의 인사이트>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매일 아침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을 지냈던 이충재 기자는 오랜 기자 경험을 토대로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우리 사회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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