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13 14:39최종 업데이트 23.06.1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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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역사 문제로 혼돈에 빠져 있다. 강제징용(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등의 일제 식민지배 문제로 나라 전체가 혼란을 겪고 있다. 지방 차원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부각되고 있다. 남서쪽에서는 <전라도 천년사>로 인해 식민사관 논란이 진행되고, 남동쪽에서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 임명 문제로 인해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북 안동시에 위치한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이사회는 한희원 동국대 일반대학원장을 신임 기관장으로 선임했다. 경북도청의 지난달 17일 자 보도자료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사장 김학홍 행정부지사)은 12일 도청 회의실에서 2023년 제2차 이사회를 개최해 한희원 동국대 일반대학원장을 제4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으로 선임했다"라며 "오는 6월 19일 도지사가 임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소속인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최종 임명만 남겨놓은 상태다.
   

한희원 경북독립운동기념관 관장 내정자 ⓒ 경상북도


하필이면 독립운동기념관장

한희원 내정자는 1958년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지검 검사, 속초지청 검사, 대검 검찰연구관 등을 지낸 뒤 2007년에 동국대 법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프로필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프로필로만 보면 독립운동기념관장과 거리가 먼 인물이다.


한희원 내정자로 인해 논란이 벌어진 것은 그가 검사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안동시민연대를 비롯한 경북 지역 27개 교육·시민·환경·노동·정치단체들이 지난달 26일 경북도청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임명 철회를 촉구한 것은 그의 역사관 때문이다.

'친일사관 한희원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내정자 임명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 지역 단체들은 정한론의 상징적 인물인 요시다 쇼인(1830~1859)을 존경한다는 한희원 내정자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한국 정복론을 역설한 일본 사상가를 존경한다는 인물이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이면 독립운동기념관장에 임명된다고 하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보도에 따르면, 한희원 내정자는 작년 3월 23일 한반도통일지도자연합이 주최한 '2022 통일지도자 특별 세미나'에서 "오늘의 일본이 세계 강국이 된 원인은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인재를 길러낸 쇼카손주쿠 설립에서 찾을 수 있다"라며 요시다 쇼인의 인재 양성을 언급했다.

그는 요시다 쇼인이 "인재 100명을 길렀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라며 "그 인재들이 메이지유신을 성공시켜 오늘의 일본을 만든 초석을 다졌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년 5월 3일 경상북도가 주최한 '158회 화공 굿모닝 특강'에서도 이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한국의 인재 양성을 촉구하고자 그런 말을 했겠지만, 하필이면 요시다 쇼인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역사관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동시민연대를 비롯한 경북지역 27개 시민·환경·노동·교육·정치단체들이 오는 6월 19일 임명 예정인 제4대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 한희원 내정자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 권기상

 
5월 26일 자 <오마이뉴스> 보도("경북독립운동기념관 한희원 내정자 임명 철회하라" https://omn.kr/243sa)에 따르면, 위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헌택 안동시민연대 상임대표는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있는 내 앞마을은 수많은 열사들이 나왔고 혁신 유림들이 협동학교를 설립했던 장소이기도 하다"라며 "정한론을 가지고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을 관장으로 세운다는 것은 항일운동을 가장 앞장서서 해온 우리 열사들 앞에 후손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라고 탄식했다.

비슷한 목소리는 이달 12일 안동시의회 본회의에서도 나왔다. 이 지역 언론보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역사 인식이 편향된 인물을 다른 곳도 아닌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에 내정했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의 성지라고 자부하는 안동에 안타깝다 못해 수치스러운 소식"이라는 개탄의 소리가 나왔다.

한희원 내정자는 검사 출신이자 법학자이기 때문에, 역사에 관한 전문적인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공개 장소에서 강한 신념을 드러내며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가 독립운동기념관을 이끌 경우에 어떤 일이 생길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요시다 쇼인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요시다 쇼인은

한희원 내정자가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은 지금의 일본을 만든 주역 중 하나다. 서구식 개혁을 추진하면서 조선·대마도·오키나와·타이완·청나라 등을 압박했던 1868년 이후의 메이지 시대는 그의 머릿속에서 상당 부분 설계됐다. 그래서 그는 무신정권인 도쿠가와 막부가 붕괴하고 일왕(천황)이 정치의 중심이 된 메이지 시대에 주요 선각자로 추앙됐다.

앤드루 고든 하버드대학 교수의 <현대 일본의 역사>는 당시의 일본을 이끈 세력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지사 집단은 카리스마를 지닌 조슈번의 학자 겸 사무라이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었다며 "요시다 자신은 1859년에 막부가 반대파를 대거 숙청할 때 처형당했다"라고 한 뒤 "하지만 추종자들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메이지 정권을 공고히 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라고 평한다. 바로 그 세력이 조선을 멸망시키는 주역들로 성장했다.

한희원 내정자의 강연에서도 언급됐듯이 요시다 쇼인의 제자 중 하나가 이토 히로부미다. 동아일보사 기자 출신의 역사 저술가인 이종각의 <이토 히로부미>는 이토가 10대 때 쇼카숀주쿠에 들어간 일을 설명하면서 "이토는 막말유신 시기에 활약하게 되는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요시다 쇼인 문하에 들어가게 됐다"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막부 말기와 메이지유신 시대를 주름잡게 될 요시다 쇼인 문하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정신적 무장을 했던 것이다.

이 책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요시다 쇼인의 가르침을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요시다의 지론인 정한론에 관한 것이다.
 
"진구황후가 삼한을 정벌하고 도키무네가 몽골을 섬멸하고 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벌한 것은 호걸이라 할 만하다."

"옛날 성시(盛時)와 같이 조선을 공격하여 공물을 바치게 하고 북쪽으로는 만주 땅을 손에 넣고 남쪽으로는 타이완과 루손제도를 취하여 일본 땅으로 삼아 더욱 진취의 기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옛날 전성기에 일본이 조선을 공격해 조공을 받았다는 요시다 쇼인의 언급은 거짓이다. 일본이 선물을 하면 한민족이 답례한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옛날 성시와 같이" 조선·만주·대만·필리핀을 일본 땅으로 만들자는 그의 주장은 거짓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거짓을 기초로 일본제국주의가 한국과 아시아를 실제로 침략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아베 신조가 추종한 인물

한국을 정복하자는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이 빈말이 되지 않고 실제로 구현됐다는 사실은 일본 극우세력이 지금까지도 정한론을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실감케 해준다. 그런 요시다 쇼인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인물이 오는 19일에 경북독립운동기념관장이 된다고 하니 경북도민들이 황당해하고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못지않게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추종했던 인물이 있다. 아베 신조가 바로 그다. 노다니엘 전 홍콩과기대 교수는 <아베 신조의 일본>에서 "나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인물로 요시다 쇼인과 기시 노부스케를 꼽았다"라며 "아베의 이념주의 특히 그의 우익 사상은 요시다 쇼인에 대한 사상적 동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평했다.

이처럼 요시다 쇼인을 존경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은 한국 침략은 물론이고 아시아·세계 침략도 당연시한다. 그에게서 공부한 이토 히로부미, 그를 동경했던 아베 신조의 행보는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는 것이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를 시사한다.

요시다 쇼인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한국 독립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 리 만무하다. 그런 사람들을 독립운동기념관장에 앉히는 일은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징표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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