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4 09:37최종 업데이트 23.04.07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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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런던대학교 교수는 "시민들이 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경제의 95%는 상식" 이라고 강조했다. ⓒ 이희훈


3년 전 꼭 이맘때다. 2020년 3월 중순께 기자는 영국 런던에서 케임브리지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을씨년스러운 런던 날씨는 코로나19 초기 영국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장하준 교수는 직접 차를 몰았다. 교직원 파업으로 우리는 케임브리지 인근 전통적인 영국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먹었던 '피쉬앤칩스'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영국에서 그동안 먹었던 '피쉬앤칩스' 가운데 가장 맛났기 때문이다. 물론 장 교수의 추천과 '식초와 함께 먹어보라'는 조언도 한 몫 했다. (관련기사: "세계 대공황 가능성... 이 기회 새로운 사회 시스템 만들어야" )

학교 구내식당이든, 런던 시내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아시아계 식당이든, 그와의 대화에서 음식은 빠지지 않았다. 자연스레 나눴던 음식과 재료 이야기는 훗날 우리에게 근사한 레시피와 함께 '경제'를 연결시키는 도구가 됐다. 사실 그가 음식과 경제를 연관시켜 책을 쓰겠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전부터 들었던 터. 이미 지난 2018년 런던에서 식사를 하면서, "새 책 준비하시냐"고 했을때, 그는 "예전부터 음식 이야기를 경제와 묶어서 쓰려고 했는데…"라고 답했다. 


그리고 진짜 음식 이야기를 들고 왔다. 지난 2014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이후 10년 만의 새책이다. 마치 오래된 숙제라도 끝낸 기분일까. 장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말 길고도 복잡한 스토리를 가진 책"이라고 했다. 그는 정말 독자에게 진심이다. 책에 묻어난다. 장 교수는 이야기한다. "시민들이 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경제의 95%는 상식"이라고 했다. 이는 그의 오래된 주장이며, 신념에 가깝다. 아예 그는 "경제학자를 믿지 말라"고도 했다.(관련기사: 장하준, 경제학을 쏘다 )

"음식은 미끼일뿐, 내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장하준 런던대 교수가 10년만에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내놓았다. 사진은 장 교수의 저서들. ⓒ 김종철

 
그의 생각은 이번 책 서문에서 '마늘' 이야기와 마지막 부분의 '경제학을 더 잘 먹는 법'에 잘 드러나 있다. 경제학이 소득이나 일자리 등의 좁은 의미의 학문보다는 훨씬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한다. '근본적인 부분'은 바로 '민주주의'다. 그는 "시민들이 경제를 모르면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는다"고 했다. 

윤석열 시대 1년여를 지나면서, 매주 서울 한복판에선 수많은 시민들이 다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지난 3월 말 그와 서울 서초구 <스페이스 다온>에서 마주 앉았다. 우리는 그의 말대로 음식을 '미끼'로 두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더 나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번 책은 그가 런던대로 자리를 옮긴후, 지난해 10월께 영국에서 먼저 나왔다. '에더블 이코노믹스(Edible Economics: A Hungry Economist Explains The World)'라는 제목이었고, <가디언>을 비롯해 영국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장 교수는 이미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해, <사다리 걷어차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유력 경제학자로 인정받았다.

영국의 유명 정치 매거진 <더뉴스테이츠맨> 칼럼니스트 '존 그레이'는 장 교수를 '신자유주의에 대한 최고의 비평가'라고 말할 정도였다. 물론 이번 책을 두고, 영국 일부 보수 성향의 언론에선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스스로 '괴상한 책(a strange book)'이라고 규정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음식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고 해야죠. 대신 오래동안 생각해왔던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조금이라도 경제학을 모르면 민주주의가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게다가 요즘같이 시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선 더 더욱..."
 

장하준 런던대학교 교수 "경제는 정치이고, 경제는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 이희훈


그는 영국 왕실마저 관광수입 운운하며, 경제적 효과를 자신들의 군주제를 유지하는 논리로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음식과 재료를 가지고, 각종 논쟁적인 경제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18가지에 달하는 각종 음식과 재료를 둘러싼 역사적인 사실과 배경, 다양한 개인 경험담까지 끄집어내야 했다. 

그가 경제학과 민주주의를 연관시켜 설명하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다. 바탕에는 "경제는 정치이고, 경제는 정치와 분리될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과거 애덤스미스나 리카도가 경제학을 말할때는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경제학'이었다. 20세기 들면서 이른바 주류경제학이라고 일컫는 신고전주의학파는 '경제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어려운 숫자와 학문으로 장벽을 세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특히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 논리가 경제에 개입하면 안된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미 경제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는 마치 보통 시민의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하는데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전문 용어와 복잡한 수학 공식과 통계를 들먹이는 것으로 정치와 사회, 경제를 분리시키는 것은 정치혐오를 불러오고, 결국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과거 19세기 노예를 사고, 아동 노동이 허용됐지만 지금은 아니죠. 당시엔 노예와 아동 노동이 경제에 포함됐지만, 지금 노동유연화를 말한다고 이를 도입하자는 말은 없잖아요. 아동 노동이 옳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금지한 거죠."
 

"69시간 개편은 미개한 개념" 
 

장하준 런던대학교 교수 "주 최대 69시간 노동은 18세기나 19세기에 있을 법한 미개한 개념이다" ⓒ 이희훈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 최대 69시간 노동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때부터 강조해 온 '자유'와 '시장'에 왜곡된 편견을 정책적으로 드러내 보였다는 것이다. 과거 1970년대 칠레의 군사정권 피노체트 정부 예를 들어가면서,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문화적 자유의 차이를 분명하게 따져야 한다고 했다.(관련기사: "69시간 개편 경악... 일본 전략에 말려들어선 안돼" )

자유시장주의자들의 핵심적인 가치인 경제적 자유는 소위 자산가 또는 자본가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자산가가 될 수 있고, 돈 벌어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리가 공평한 시스템 아니냐고 하는데, 그거야말로 정말 잘못된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자유를 말할 때는 그 자유의 내용이 무엇인지, 누가 그것을 누릴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69시간 노동할 자유라고 하면서 거기에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결국 비정규직으로 임금을 제대로 못받는 사람들이거든요. 삼성 직원들이 갑자기 주 69시간 일하겠다고 하겠어요?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지만, 대상은 뻔하거든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갖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역사적으로 노동시간을 늘려서 경쟁력을 올리겠다는 나라는 없어요." 

그의 손은 탁자 위 종이컵으로 움직였다. 메말랐던 목에 물을 적시고 말을 계속 이었다.
 
"정말 아주 18세기나 19세기에 있을 법한 미개한 개념이예요. 일할 수 있는 자유에서 인간은 두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자신 스스로의 자유의지와 구조적인 상황인데, 1905년 미국 뉴욕주가 제빵 공장에서 하루 최대 10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제한하니까(이것도 말이 안되는 시간이지만), 미 대법원에서 노동자의 일하고 싶은 자유를 뺏는 법이라고, 위헌이라고 판정했어요. 지금 윤석열 정부와 같은 논리죠."


그는 또 거리에서 강도를 만나는 사람의 사례를 들어가면서, 진정한 선택적 자유의지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경제적 구조로 인해 위험하고 장시간 노동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장 교수는 "윤 대통령이 제대로 된 사회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대통령이 하지 않았다면 주변 측근들이라도 배웠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윤석열 시대를 살아가는 법
 

장하준 런던대학교 교수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까지도 모두 실리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교를 챙기는데, 왜 우리만 혼자 나와서 마치 분신 자살하는 것같이 하는지…"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이희훈

 
그동안 장 교수와 이야기에서 단골메뉴는 경제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때도 그랬고, 지난 코로나19 이후 대공황에 버금가는 위기에 각국이 대응을 모색할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백년에 걸친 서구 중앙은행의 역사상 유례없는 저금리 기조와 그에따른 금융불균형과 부작용에 대한 경고는 그대로 재현됐다. (관련기사: 코로나 시대, 장하준이 던지는 화두 4가지 /  "MB 경제팀, '나쁜 관치'만 기억...대공황 버금가는 위기상황 올 수도" )

또 선진국 중심의 자국 이기주의에 치우친 보호무역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비판도 여전했다. 그는 "원래 미국이라는 나라가 철저히 실용주의에 입각해서, 자기 이익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나라"라며 "사실 무슨 반일 반중이라고 하는데, 솔직하게 힘센 나라들 다 싫다"고도 했다. 

특히 최근 한미일 안보동맹 강화에 따른 무역불균형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했다. 장 교수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까지도 모두 실리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교를 챙기는데, 왜 우리만 혼자 나와서 마치 분신 자살하는 것같이 하는지…"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안보이슈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결국 미국이나 중국 모두 경제적 이해관계를 완전히 끊기 어렵다는 것. 또 일본도 역사적으로, 경제구조적으로 한국과 전혀 다른 측면을 강조하면서, 대외무역관계에서 실리적인 접근이 아쉽다고 했다.

높은 물가와 경기침체 속에 정부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대규모 감세와 규제완화를 밀어붙였다가 금융위기와 국민적 저항에 물러났고, 윤석열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는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지금 걱정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적으로) 생산성으로 더 높이고, 기술혁신도 하면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가고, 보다 나은 사회로 가야죠. 그런데 갑자기 1970년대도 아니고, 국민소득 3만불 넘는 나라에서 그런 식으로 노동시간 늘리겠다는 나라는 역사상 없었어요."
 

장하준 런던대학교 교수 ⓒ 이희훈

 
좀더 그의 말을 들어보자. 

"결국 기술과 연구개발, 사람에 대한 투자밖에 없죠. 이것을 하려면 직장에서 해고될 위기에 있어도 걱정을 안하는 나라를 만들어야죠.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잘 하잖아요. 최소한 사회안전망, 복지체계를 만들어야죠. 유럽은 주 35시간으로 가는데… 경력단절 안되고, 임금차별도 안 받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정부가 나서서) 해줘야죠. 무슨 이상한 군 면제 대책 같은 것 말고."

그의 생각은 어찌보면 당연하고도 상식적인 것이었다. 그동안 그가 강조해온 보편적 복지 국가와도 맥이 닿아 있다. 장 교수는 "다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다. 이 또한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의 바람은 상식적이었고, 당연한 것들이었다. 2023년 3월 우리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너무 중요한 이야기들이었다. 
 
덧붙이는 글 장하준 교수와의 대화는 문화공간 <스페이스 다온>에서 장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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